어떤 졸업식?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다.
아내다.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았어요.”
“곧, 갈께.”
직장에 알리고 병원으로 갔다.
달리는 차속에서 광명진언을 외웠다.
장인 어르신은 시골에서 낳고 자랐다.
결혼 후 도회지(천안)로 이사했다.
가난이 지겨워서다.
처음엔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으셨다.
비료대신 인근의 학교에서 인분을 퍼다 주기도 하였다.
농사는 잘 되었고,
몇 년이 지나 작은 가게를 얻어 구멍가게를 열었다.
돈이 모자라 물건은 한 개씩만 준비했고, 팔리는 대로 다시 채워 넣었다.
덕분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내에 있는 도매상에 다녀와야만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시간이 흐르자 가게의 물건은 넘쳐났고, 손님들로 북적댔다.
몇 년 후에 가게 건물을 사고, 그 자리에 건물을 지었다.
현재까지 이 건물에서 살고 계셨다.
이후에도 건어물가게, 문구도매상, 부동산 사무실....
올 봄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셨다.
늘 자신 있으셨고, 정직하셨으며, 부지런 하셨으며, 정의로우셨다.
병원에 도착하였다.
병상에 누워계셨고,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었다.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장모님은 애써 눈물을 참고 계셨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했다.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영안실에 안치 후, 장례절차를 물었다.
불교식으로 하고, 4일장(?)을 하며,
장지는 선산이라고 큰 처남이 대답한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빈소가 꾸며지고,
중앙에 영정사진을 모셨다.
촛불과 향도 피웠다.
술도 한잔 올리고, 절을 했다.
정식으로 고인에 인사를 드린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자꾸 손으로 가슴을 치게 된다.
고인이 억울함이 있어 그렇다 생각했다.
짐작되는 일이 있다.
장례를 모시기 전에 풀어드리고 싶었다.
물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고인 스스로 억울함을 풀고 가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영적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드리고, 기도하면
고인 스스로 알아차리고,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조문을 받느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지만
틈나는 대로 광명진언을 외우며,
모든 것은 허망하며, 정해져 있는 바도 없고, 생각하기 나름이니,
미련두지 말고, 모두 다 용서하시고, 편하게 가시라 반복적으로 말씀드렸다.
조문객의 발길이 끊어진 늦은 밤
광명진언과 천수경을 읽어드리고,
지장보살과 비로자나부처님께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둘째 날
오후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염습을 하고, 입관(入棺)을 하였다.
가족들, 특히 딸들이 목을 놓아 운다.
이제 마지막이니
울지 말고
마지막 모습을 잘 봐두라는 말로
진정시키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운다고 돌아가신 분이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차라리 울기보다는
고인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도록 기도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장례지도사가 땀을 뻘뻘 흘린다.
약간의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김영란법이 시퍼렇게 살아있어 고맙다는 말만 했다.
다시 빈소에 와서 조문을 받았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마음이 편안하다.
이제 영가가 스스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생각했다.
저녁에 큰 아이가 구석에 앉아서 편지를 쓴다.
고인과 함께 했던 일을 회상하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어서 손주들과 아들, 딸들이 모두 편지를 썼다.
조문객이 뜸한 늦은 밤에 쓰고, 또 썼다.
이렇게 고인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날.
오전엔 조문객들이 많지 않았다.
상주들은 편지를 돌려 읽으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죄책감이나 아쉬움, 슬픔으로 괴로워하지 않았고,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쌓였던 감정들이 해소된 듯했다.
오후가 되자
다시 문상객들이 몰려온다.
상주들은 조문을 받고, 인사하기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밝은 표정으로 문상객을 맞으며 인사를 한다.
더 이상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가끔 웃음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상주들이 밝아지니 조문객들도 편안하게 인사를 나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란 졸업이다.
삶이란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다.
배울 것이 있어 학교에 입학했고, 다 배우면 졸업을 한다.
그리고 더 배울 것이 있으면, 상급학교에 진학을 한다.
영혼도 배울 것이 있어
삶이란 학교에 입학을 하고, 다 배운 이후에 졸업을 한다.
만약에 더 배울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 입학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졸업을 축하하듯
삶이란 학교에서 충분히 배움을 얻고 졸업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서 축하할 수 없었다.
마음으로 축하를 해드렸다.
그리고 배울 것이 아직 남아 있다면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하여 좋은 배움을 얻으실 수 있도록 기원했다.
아미타 부처님, 비로자나 부처님, 지장보살님께 빽도 썼다.
넷째 날
아침에 빈소를 떠나, 평생을 사시던 집에 잠시 들러서 장지로 갔다.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고,
영구차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가시는 길을 살펴드렸다.
산 아래에 미리 준비된 꽃상여와 함께
선소리꾼의 구성진 선창과 상여꾼들의 합창은 고인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장지에 도착하니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나 있었다.
하관시간을 맞추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 무덤 안을 깨끗하게 정화시켰다.
산신과 토지 신께 고인을 잘 보살펴 주시길 부탁드렸다.
물론 마음으로 했다.
그래서 그럴까?
시신을 안치하는 데, 마음이 아주 평온했다.
장례절차를 마치고
고인께서 생전에 다니시던 절에 49재를 부탁드렸다.
이제 각자 고인을 떠나보내며 다짐했던 마음들을 오랫동안 간직하여
형제들이 화목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첫댓글 장인 어르신의 상례를 치르면서
생각하고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얼굴엔 미소 마음엔 평화
관세음보살 -()-
고맙습니다.
_()_
관세음보살
남희님...
한귀절 한귀절 읽으면서 참된 불자님으로써 마지막 배웅을 잘해드리셨구나 생각이 드네요
이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부인을 낳아주신 아버님
장인어르신과 사위는 백년손님아닐까 합니다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도 않고
하고 싶은것은 살아서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왕생극락을 발원드립니다
남은 유족들도 힘내십시요
고맙습니다.
도화님~
_()_
관세음보살
아마 형제분들이 화목할것 같습니다
불교식으로 정성껏 마지막 졸업식을 잘 해드리셨네요
그런데..죽음이 졸업식이라..생각하니
더 잘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곳으로 가셨을것 같습니다 남희님덕분에 우리 영가님...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전에 듣고
많이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좀 알 것같습니다.
_()_
관세음보살
얼굴엔 미소 마음엔 평화
남희님
삼가고인의 명복을빕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정이님~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남은분들에게 다시한번 무상함을 깨닫게 하여주시고
고인은 편안한곳으로 가셨으리라 봅니다
아들과 사위의 입장
평소 덕이 많으시고 지혜로우신 남희님 덕분에
아마 옆지기 보살님도 더 고마워하지 않았을까요?
큰일 치르고 보면 남는것은 그저 부부밖에는 없는것 같습니다
고인의 왕생극락을 기원합니다 -()-
고맙습니다.
더 잘 살아보도록 노력해 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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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속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땐 철모르는 고3
정신없이 수행한다며 열심히 걸어오다만난
어머님의 마지막 죽음...
은사스님의 마지막 죽음보다 더 아련하고
내가 수행자로써 더 속인보다 몇백배 죄송스럽고...
우울증이 오래갑니다
작년 추석땐
오후에 속가의 가족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반송장 어머님께
절하고 노래부르고 재롱잔치하면 환하게 웃었던 어머님
그추석이 마지막...이 되고
올 추석날 손자손녀들은 더이상 오지 않습니다
죽음앞에서 흩어지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죽음앞에서 참회와 용서로 화합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장례 시다림 염불을 다녀서 누누히 경험한 바입니다
진솔한글 잘보고 갑니다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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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여법하게 장인 어른신의 졸업식을 치르셨군요.
저 역시 친정 어머님 사후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시어머님의 장례식장에서 서로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딸들이 울고불고 우리 엄마 억울해서 어찌 보내냐고..
옆지기가 그러더군요.
잘 보내 드리자고
자꾸 울면 가시는 걸음 옮기시지 못하니 떼 쓰고 울지말고 편안히 가시게 웃으라고 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그 일로 모든 서운한 마음 접고 큰집하고 왕래를 하고 있죠.
남희 거사님의 장인 어르신 졸업식에 많은 것을 배웁니다.
부디 가신분도 남겨진 분들도 편안하시길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무진의님~
늘 건강하시고, 씩씩하게....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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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어떤 졸업식은 언젠가 우리도 졸업식을 거쳐야 하는 인생의 순리인듯 하네요
아직 49기간중이시겠군요
삼가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
고맙습니다.
금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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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
무심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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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졸업식이란 표현이 아주 적절히 와닿습니다.
희노애락의 소용돌이에서 훌륭히 졸업하셨을 겁니다.
잘 죽기 위해 , 그 무엇보다 남기지 않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가 지금 신경쓰고, 내가 지금 집중하고
... 물처럼 인연처럼 내 안에서 흘러나가길...
선사들은 그처럼 초월해서 살았나 봅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기둥처럼 든든한 사위를 믿고
평안한 마음으로 졸업하셨을 것 같습니다.
불자의 도리를 나누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그자리에서 평온함을 또 늘 나누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거사님의 지극한 배웅으로 가신 분도 편안한 마음으로
부처님 품안에서 성불인연 맺으실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사람의 일생은 그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학교 졸업식에 비유 된 가시는 길
거사님 말씀대로
축하 할 일과 슬퍼 할 일 아님을 알기에
평온한 가운데 이별하셨으리라 봅니다
가신 어르신도 남은 유족들도
모두 평온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_()_
고맙습니다
마음이 찌잉하네요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믿음이 없던 시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다시 떠오릅니다.
남희님의 믿음을 다시 봅니다.
고인의 왕생극락 비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훌륭하십니다
저같으면 울고 불고..그러다 지나갔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