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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의 일대기를 영웅적 관점에서 서술한 시를 일컬어 영웅서사시라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고구려의 건국 시조인 동명왕의 일대기가 수록되어 있지만, 내용면에서 가장 풍부한 분량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고구려의 문인 이규보가 한시로 쓴 장편 서사시 '동명왕편'이다.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되어 있는 '동명왕편'은 서문과 오언시를 포함하여 1400 여자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유학자인 이규보는 당시에 전해지고 있었던 동명왕에 대한 내용이 처음에는 '황당하고 기괴하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 <구삼국사>를 얻어 읽어보니 '귀(鬼)가 아니라 신(神)이요, 환(幻)이 아니라 성(聖)'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그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규보가 이 작품을 짓기로 한 것은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고장임을 천하에 알리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전하기 위해 시를 지었다고 하였다.
이 작품은 크게 3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첫 번째 부분에서는 중국의 신화적 인물들에 대해 논함으로써 동명왕의 탄생 신화가 중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부분은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유화와만나 결연을 이루고 주몽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주몽의 탄생과 부여에서의 시련, 그리고 남으로 내려와서 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을 생동감있는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부여에 남겨져 있던 주몽의 아들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도 첨가되어 있어, 해모수-주몽-유리에 이르는 3대의 행적을 두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자는 동명와의 자취가 사실임을 밝히면서, 왕도정치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언급을 덧붙이고 있다. 이 작품을 지었을 당시에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 하에 있었던 터라, 이규보는 동명왕의 일대기를 그려냄으로써 민족 의식을 드러내고 중국 중심의 문화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동명왕편>은 한문으로 창작되어 일반인들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이규보의 원전을 근거로 하여, 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문체로 번역되어 있다. 굳이 원전을 찾지 않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익한 자료로 역할 하리라고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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