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네 둘째아들이 이번에 승진해서는
외국 가서 몇 년 살다가 올거래드라.
그 집은 자식들이 다 잘돼서
그 어매가 맨날 자랑하느라 바빠.."
엄마머리를 염색하느라 신중을 기하는 내게 엄마는 늘 그렇듯
동네사람 얘기를 전하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말하는 잘됐다는 기준이 뭔데?
돈 잘 벌고 결혼해서 애 두 서넛 키우는 거?
그게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가장 평범한 잘됨인가?"
엄마는 단번에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돈벌이도 시원찮고
게다가 툭하면 아파서 쩔쩔매고
거기에 이혼까지 겹쳤으니
엄마에겐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부족한 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기죽을 사람인가?
사람은 돈이 없을 때 당당하고
돈이 많을 때 겸손하라 했다.
잘되고 안되고 그건 중요치 않다.
내가 행복하냐 안하냐,
중요한 건 그것이다.
"엄마, 나 27살에 아빠 간병하느라 미용실 그만두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쯤 내 이름으로 간판 걸고 미용실 크게 열었을 걸?
근데 나는 그때 아빠를 택한 거
지금도 후회 안 해.
사람은 그때 안 하고 미루면
평생 못하고 건너뛸 그런 것들이 있어요.
그때 내가 아빠를 위해
시간을 내지 않았다면
아마 그 뒤로도 나는 경력쌓느라
간병하는 일은 못했을거야.
덕분에 경력도 단절되고
힘들게도 살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난 당당하고 대견해.
이혼? 그게 뭐 별건가.
이혼해서 자유로웠으니
내가 돌아와서 영도를 돌보고
보내줄 수 있었잖아.
그리고 지금 내가 즐겁게 사는데
왜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럴까?
나를 안쓰럽게 볼 필요 없어요.
나는 지금이 최상이야.
내 맘대로 하고 살잖아."
엄마가 보는 행복의 기준과
내가 직접 느끼는 행복은
확연히 달라
이젠 그저 그러려니 하고
얘기를 끝낸다.
모든 슬픔과 괴로움은
내가 겪어내야 할 과정이었고
거기에서 깨달음이 있었다면
나는 그 삶이야말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걸
가슴 깊은 곳에서 수긍할 수 있으면
엄마의 엄마로서 갖는 안쓰러움도
좀 덜어낼 수 있을텐데
역시 엄마는 옛날분이고,
마음이 여리고,
남들의 시선이 신경쓰이는 분이라..
얼른 염색하고
수박이나 먹자며 얘기를 끝냈다.
내가 다빈에게 젖 먹일때부터 했던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고 멋진 아가씨로 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