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있을 때이다. 학생 몇이 모이는 자리에 상담역 비슷한 책임을 맡고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학생들이 열심히 얘기하다가 나를 보고 모두 일어나서 인사했다. 웃으면서 “무슨 중대한 논쟁이 있었어요?”라고 물었다.
한 남학생이 나서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모두가 잘 아는 A님의 아들이 얼마 전 군에 입대했는데, 그 사모님이 ‘우리 아들은 군에 가기는 했어도 B단장 밑에 머물면서 주말이면 가정교사가 되기도 하고 편히 지낸다’고 자랑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그런 일도 있구나!” 부럽다고 했더니 S양이 마땅치 않았는가 봅니다. “남자가 나라를 위해 군에 갔으면 군인다운 책임을 다해야지 그렇게 무책임하고 비겁하게 세월을 보내면 되느냐”고 항의하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웃으면서 “그래, 남자 친구들이 면목이 없어졌구먼! 잘됐네요. 다가올 미래에 S양의 하나만 있는 아들이 입대할 경우 같은 충고를 할 테니까 박수로 결론을 내리지요”라고 했다. 후에 알았다. S양의 아버지가 6·25 때 전사했다는 것이다.
한 학생이 “선생님은 그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었다. 나도 좀 부담스러워졌다. 군대에 갈 두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나무가 자라는 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대나무는 마디마디가 튼튼히 자라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한 마디라도 약해지거나 병들게 되면 그 나무 전체가 쓸모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 인생 아닐까요. 학생 때는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 되고, 군에 가서는 가장 모범적인 군인이 되고, 직장에서는 누구보다도 맡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도 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옛날에도 ‘사내 자식은 군에 갔다 와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했는데요. 군은 그만큼 국민 교육을 책임 맡아야 하고”라는 얘기를 했다.
요사이 계속해서 두 법무부 장관의 가정 얘기가 화제다. 그렇다고 두 특수층 가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과제다.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시한 특수층 자녀들이 부모의 정신을 이어받아 성공한 예가 적은 것 같다고 말한다.
스위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카를 힐티(1833~1909)는 정치 지도자나 재벌의 특수층에서는 부모의 뒤를 계승한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고 정신적 가치관을 물려받은 중산층 가정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그에게서 얻은 교훈은 ‘정신적으로는 상류층,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에 속하는 가정이 좋겠다는 인생관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 의식으로 윤리적 질서와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사명의식이다.
우리는 인격의 완성과 더불어 사회의 건설적 성장을 위한 책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정신을 갖추지 못한 지도층보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중산층에서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지도자가 태어난다.
어제 금요일은 무척 바쁜 날이었다. //에게 전화를 두번이나 받았다. 그 사람의 말이 ㅡㅡ이 싫어한다는 표현이었다. 이 말은 사실 나한테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이 --에게 아부하는 말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공가'는 엄연히 보장된 것이고, 수업에 관해서 그렇게까지 잔챙이 역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다.
서점에서 "죽은 경제학자의~ 아이디어"와 "복자에게"라는 김금희 소설책을 사서 지하철을 타려고 시끄러운 지하 2층으로 나오는데 ○○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렇게 직접 전화를 한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1년을 같이 있으면서 그리 좋게 공간을 달리 한 것은 아닌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너무 진부한가, 내가 너무 서투렀는가, 나의 진심이 다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꽤나 큰 공부를 했다는 생각으로 점점 멀어져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직접 전화가 온 것이었다. 5월 25일인가에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던 터라, 이제는 서서히 멀어져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조금은 굳히고 있던 때였다. 전화를 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추축하건데 자기 주위에 많았던 사람들속에 있을 때는 나의 존재가 거북했는데, 혼자인 지금에서는 내가 생각난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 정도로 이 이쁜 여자가 영리하다는 생각을 진운 적이 없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남자의 심리를 잘 읽어낸다고나 할까.
먼저 잘 지내냐고 물었다. 나야 뭐 잘 지내고 말고가 없잖은가. 이 말은 내가 그곳을 떠나올 때 들었어야 할 말이다. 그 때는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다. 아무튼 나는 싫어도 정든 공간을 떠나가야 되니까. 근데 그런 것들이 생략되면서 아쉬움이 남았다는 것이다. 아마 나를 가장 부담스러워했을 그런 시기였을 것이다. 아마 혼자 공부하는 것이 한달 정도는 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니 자기 주위에 있었던 관심을 나타냈던 많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보니 내가 생각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동안의 나의 관심을 말해주었다. 부곡동을 지나칠때는 생각이 났다는 말, 생일이 9월 며칠이라는 말, 등등. 추석전에는 메일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목소리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제 좀 혼자 생활도 지처가고 두려움도 있을 시기가 아닌가, 한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남은 시간 잘 보내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독서실을 다니고 있다고 하니까.
내가 속으로 기원하는 것은 좋던 안좋던 현재 상황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내 자신에 나중에 만족을 할 수 있다. 남들이 하는 만큼 해서는 안되고 더 하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한번 뵙죠라니가, ㅁㅁ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였다. 에둘러하는 표현인지는 모른다. 조심스로운 것은 이제 마음 정리를 하고 떠나려는 그런 직전에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뭐를 아는 여잔가. ㅁㅁ라는 표현을 기억해야 한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