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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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일기 같은...) / 김정숙
불현듯 언젠가 읽었던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란 시가 생각났다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싶다가도...'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라는 대목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었다
남편...
나이가 이쯤 들고 보니 연인이기보다는 친구에 가깝다
열정은 사그라들었지만 견고한 우정이 생겼다
서로 많고 많은 전쟁을 치르고 나서인지 돈독한 전우애마저 싹튼 것 같다
정말.. 말 못할 연인이 생기면 의논이라도 해질 것 마냥...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는...
그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격정과 분노와 같이 치열한 감정의 극단을 달리던 예전과 달리
온유한 지천명의 문턱에 들어서서 고요해진 얼굴을 한참 보았다
안쓰런 마음에 문득 팔을 당겨다 베어 눕고 등을 토닥거렸더니
남편은 잠결에도 팔에 힘을 주며 꼭 안아 주었는데 눈물이 났다
그렇다, 남편...
사랑이란 말보다는 우정이란 말이 더욱 어울릴 것 같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가장 밥을 많이 먹은 남자이고
수 많은 전쟁 속에서 나를 성장시킨 그 남자
나, 신열 들끓어 신음할 때면 언제건 싫은 내색 없이
들쳐 업어 야간 응급행을 서슴지 않고 밤새워 간호해 주던 남자...
그래.. 이 남자를 위해서라도,
나 비록, 지금 많이 힘들지만 나를 내려놓지는 말아야겠다
일어나자, 몸이여 !
첫댓글 살다보면 연민이 생깁니다.
남편의 약한 면이 눈에 들어오면서 올리려던 목소리를 낮추게 되는 것도 쌓아온 정 때문이겠지요~~
(썜~~내 정보 클릭해서 실명전환 부탁드려요~~~죄송~~ㅎ)
그러더군요...
감정의 극단을 오가며 치열하던 예전과는 달리 친밀감과 .. 어떤 단어로도 성립 안되는
긴밀하고 끈끈한 어떤 것이 형성되어서 질펀한(?) 연민 같은............ (네..바꿀께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