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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州時溥書
崔致遠
六月十六日 某는 白僕射足下하노이다
特辱長牋하고 仍移公牒에 細詳來旨하니 頗涉多端이라 有同戲以前言하니 無乃驚於衆聽가 雖倚兵強力壯이라도 其如作僞心勞라
6월 16일 모는 복야(僕射) 족하에게 아룁니다.
특별히 긴 서한을 보내고 공문서를 보내심에, 상세히 그 내용을 살펴보니 매우 복잡다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방금 한 말은 농담이라는 말과 비슷한 점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지 않겠습니까? 비록 강장(强壯)한 병력에 의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괴로울 것입니다.
* 희이전언(戲以前言):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이 되어 예악(禮樂)을 가르치는 것을 공자가 보고 웃으면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고 말했다가, 자유가 정색으로 반문하자, 공자가 “얘들아, 언의 말이 옳다. 내가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다.〔二三子 偃之言是也 前言戲之耳〕”라고 말한 내용이 《논어》 〈양화(陽貨)〉에 나온다. 언(偃)은 자유의 이름이다.
且泗州는 舊隸仁封이나 新標使額은 因非郡守專輒이요 蓋是朝廷栺(指)揮라 爲在頃年에 獨全忠節하여 遂編名於防禦하고 永傳賞於驍雄이라
또한 사주(泗州)는 예전에 귀진(貴鎭)에 예속된 것이지만, 사액(使額)에 새로 표시한 것은 본시 군수가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라, 대개 조정에서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주가 지난해에는 홀로 충절을 온전히 하여, 마침내 방어(防禦)에 편명(編名)하고 길이 효웅(驍雄)에게 상(賞)을 전하였습니다.
近者에 久結隣讎하니 盖遵國典하며 獨行直道하고 固守危城하며 甞膽爭先하고 斷頭非苦하니 此亦古人云 寧爲忠鬼언정 不作叛臣之義也라
그런데 근자에 이웃끼리 원수를 맺게 되었으니, 대개 국법(國法)을 준수하며, 홀로 곧은 도를 행하고 위태로운 성을 고수하면서, 와신상담(臥薪嘗膽)에 앞을 다투고, 머리가 끊어져도 괴롭게 여기지 않으니, 이는 또한 옛사람이 말한 “차라리 충성스러운 귀신이 될지언정 배반하는 신하는 되지 않는다.”라고 한 뜻입니다.
* 상담(甞膽): 춘추 시대 월(越)나라의 제2대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와 싸우다가 크게 패하여 회계산(會稽山)에서 굴욕적인 화의(和議)를 체결하고 귀국한 뒤에 20년 동안 섶나무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보는 ‘와신상담(臥薪嘗膽)’한 끝에 부차를 죽이고 오나라를 멸망시켜 회계의 치욕을 씻은 고사가 있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 斷頭非苦: 차라리 죽을지언정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유장(劉璋)의 장수인 엄안(嚴顔)이 파촉(巴蜀)을 지키다가 장비(張飛)에게 사로잡혔는데, 장비가 어째서 항복하지 않고 감히 항거했느냐고 묻자, 엄안이 “우리 주에는 머리가 잘리는 장군이 있을 뿐, 항복하는 장군은 있지 않다.〔我州但有斷頭將軍 無有降將軍也〕”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36 蜀書 張飛傳》
况于尙書ㅣ 有定國恩威하고 有栗磾武勇하여 自安疲俗하고 甚洽群情하니 每將句踐簞醪를 均沾無黨하고 不獨臧洪薄粥하고 分啜有餘라
하물며 우상서(于尙書)는 정국(定國)의 은위(恩威)가 있고 율제(栗磾)의 무용(武勇)이 있어서, 스스로 피폐된 풍속을 안정시키고 민심을 흡족하게 하였으니, 매양 구천(句踐)이 한 단지 술을 치우침 없이 골고루 맛보게 하고, 장홍(臧洪)이 묽은 죽을 여유 있게 나누어 마시게 한 것과 같습니다.
* 우상서(于尙書): 우도(于濤)를 가리킨다. 《계원필경집》 권9에 〈사주 우도 상서에게 보낸 글〔泗州于濤尙書〕〉 2편이 실려 있다.
* 정국(定國): 우정국(于定國)이니 한선제(漢宣帝) 때 정위(廷尉)로 발탁되자 옥사(獄事)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그의 판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원망하지 않는다.〔民自以不冤〕”라는 평을 받았으며, 원제(元帝) 때 관동(關東) 지방에 몇 년 동안 잇따라 재해가 발생하자 상서하여 자신을 탄핵하며 승상(丞相)의 직위를 고사(固辭)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漢書 卷71 于定國傳》
* 율제(栗磾): 우율제(于栗磾)니 북위(北魏)의 무인으로, 무예가 뛰어나고 흑삭(黑矟)을 잘 썼으므로 남조(南朝)의 송 무제(宋武帝)인 유유(劉裕)로부터 흑삭공(黑矟公)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태무제(太武帝) 때에 혁련창(赫連昌)을 토벌하여 공(公)의 작위를 받았다. 《魏書 卷31 于栗磾列傳》
* 구천단료(句踐簞醪):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칠 적에, 어떤 사람이 순주(醇酒) 한 단지를 바치자, “왕이 그 술을 강의 상류에 붓게 하여, 군사들이 하류에서 마시게 했다.〔王使人注江之上流 使士卒飮其下流〕”라는 기록이 한(漢)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고열녀전(古列女傳)》 권1 〈초자발모(楚子發母)〉에 나온다.
* 장홍박죽(臧洪薄粥): 후한(後漢) 말에 장홍이 원소(袁紹)의 공격을 받아 성안에 식량이 고갈되었을 때에, 주부(主簿)가 내주(內廚)의 쌀 3두(斗)를 죽으로 끓여 올리자, 장홍이 혼자서는 먹을 수 없다고 탄식하고는, “이를 묽은 죽으로 만들어 대중이 나누어 마시게 하였다.〔使作薄粥 衆分歠之〕”라는 기록이 《삼국지(三國志)》 권7 〈위서(魏書) 장홍전(臧洪傳)〉에 나온다.
固當散三年之儲하여 充一日之費하며 寡能敵衆하고 安可待勞하니 豈比於築室反耕과 杜門却掃者哉잇가
진실로 3년 동안 비축한 물자를 분산(分散)하여 1일의 소비에 충당하며 적은 병력으로도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고, 편히 휴식한 군사로 피로한 적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 집을 짓고 물러나 경작을 하는 자나 대문을 닫고서 정원의 길도 쓸지 않는 자에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 散三年之儲: 참고로 《삼국지》 권7 〈위서 장홍전〉의 〈답진림서(答陳琳書)〉에 “3년 동안 비축한 물자를 꺼내어, 1년 동안 사용할 밑천을 삼는다.〔散三年之畜 以爲一年之資〕”라는 말이 나온다.
* 築室反耕: 장기적으로 둔전(屯田)할 계책을 세우고 머무는 자라는 뜻이다. 춘추 시대에 초(楚)나라가 송(宋)나라를 공격할 적에, 신숙시(申叔時)가 초왕에게 “이 근처에 집을 짓고 거기에 물러나 경작하고 있으면, 송나라가 반드시 명령대로 따를 것이다.〔築室反耕者 宋必聽命〕”라고 건의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宣公15年》
* 杜門却掃者: 세상과 인연을 끊고서 오직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자라는 뜻이다.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이 “대문을 닫고서 정원의 길도 쓸지 않았으며, 산업은 돌보지 않은 채 독서만 일삼았다.〔杜門却掃 棄産營書〕”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魏書 卷90 逸士列傳 李謐》
忽覩來示云 泗州ㅣ 獨阻淮河하고 自牢城壘하며 使四方多阻하여 諸道莫通하며 而又每於朝廷에 妄爲訕謗이라 今有城中將校ㅣ 潛來計圖하며 請 少振兵戎이면 卽便期開泰者라하니이다
지금 보낸 글월을 보건대, “사주가 유독 회하(淮河)를 가로막고 성루(城壘)를 고수(固守)하면서, 사방의 길을 차단하고 제도(諸道)가 통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또 매번 조정에 제멋대로 비방을 늘어놓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 성안의 장교가 몰래 찾아와 상의하며 청하기를 ‘조금만 군사 작전을 벌이면 이 난처한 사태를 곧바로 타개할 수 있다.’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大凡人事는 莫若自知라 足下去年에 忍儁不禁하고 求榮頗切하여 蹔奮橫行之氣하여 果成順守之權이라 是以로 累受國恩하고 遠膺藩寄하니 豈可尊身忽物하며 是己非人하며 偶致嫌於藺生하고 終歸過於季氏아
대개 人事는 자신을 아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습니다. 족하(足下)가 去年에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영달할 욕심이 간절한 나머지, 횡행(橫行)하는 기세를 잠시 떨쳐 순수(順守)하는 권세를 과연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은혜를 누차 받고 멀리 번진(藩鎭)의 책임을 맡게 되었으니, 어찌 자기만 높이고 상대방은 무시하며 자기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해서야 되겠으며, 유독 인생(藺生)에게 혐의를 돌리고 끝내 계씨(季氏)에게 잘못을 돌려서야 되겠습니까?
* 인준불금(忍儁不禁): 대본에는 ‘忍携不禁’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으로 보아 ‘携’를 ‘雋’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동문선》 권57 〈답서주시보서(答徐州時溥書)〉에는 ‘儁’으로 되어 있다.
* 嫌於藺生: 염파(廉頗)가 인상여(藺相如)에게 사감(私憾)을 품은 것을 가리킨다. 염파는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장군이다. 인상여가 재상(宰相)에 임명되었을 때, 그가 승복하지 않고 화를 내면서 인상여를 만나기만 하면 모욕을 가하려고 계속 시도하다가, 국가의 일을 우선하고 사감은 뒤로 돌린다는 인상여의 말에 감복하여, 가시나무 매를 등에 지고 인상여를 찾아가서 정중히 사과하며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 歸過於季氏: 노(魯)나라 계환자(季桓子)의 상(喪)에 그 아들인 계강자(季康子)와 임금인 애공(哀公) 두 사람이 상주(喪主)가 된 고사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오늘날 두 사람의 상주가 있게 된 풍습은 계강자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今之二孤 自季康子之過也〕”라고 비평한 말이 《예기》 〈증자문(曾子問)〉에 나온다.
其於淮河久阻하고 道路不通은 皆因貴府出兵이요 不是泗濱爲梗이니 是非可辯하여 遠近所聆이라 去歲夏初에 早蒙侵伐에 呼蟻群於漣水하여 拒虎旅於淮山이라 比緣將援親仁이면 難逃善戰에 爰謀薄伐하여 用救倒懸이라
회하(淮河)가 오래도록 막히고 도로가 통하지 못하게 된 것은, 모두 귀부(貴府)가 출병했기 때문이지 사주가 가로막았기 때문이 아니니, 옳고 그른 것을 원근(遠近)에서 모두 듣고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초여름에 사주가 침략을 당하자, 연수(漣水)의 개미 같은 군대를 불러 모아 회산(淮山)의 범 같은 군사를 막게 되었습니다. 이에 가까이 지내는 좋은 이웃을 지원하려면 정의의 전쟁을 피하기가 어려움에 잠시 군사 작전을 전개하여 다급한 처지를 구해 주려 하였습니다.
君은 異荀吳하여 莫振受降之譽하고 僕은 慙呂布有虧解闘之言이라 泗州는 以實奏陳이니 豈爲謗讟가
그대는 순오(荀吳)와 달리 항복을 받는 영예를 떨치지 못하였고, 나는 부끄럽게도 여포(呂布)처럼 싸움을 화해시키는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주는 조정에 사실대로 아뢰었을 뿐이니, 이것이 어찌 비방한 것이겠습니까?
* 荀吳: 춘추 시대 진(晉)나라 평공(平公) 때의 대부이다. 그가 고(鼓)나라 도성을 포위했을 때, 고나라 사람이 아무리 항복하겠다고 간청을 해도 의리에 입각해서 받아들이지 않다가, 성안의 식량이 고갈된 뒤에야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여 입성(入城)한 뒤에,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고나라 군주만 데리고 돌아갔던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昭公15年》
* 呂布有虧解闘之言: 원술(袁術)의 장군 기령(紀靈) 등에게 쫓겨 위급해진 유비(劉備)가 여포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여포가 기령 등에게 “나는 단지 싸움을 화해시키기를 좋아한다.〔但喜解鬪耳〕”라고 하고는, 영문(營門)에 창을 세우게 한 뒤에, “내가 한 발을 쏘아서 맞히면 제군은 모두 화해하고서 물러가고, 못 맞히면 여기에 남아서 결투하라.〔一發中者諸君當解去 不中可留決鬪〕”라고 하였는데, 과연 정통으로 맞히자 제장(諸將)이 감탄하며 물러갔다는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7 魏書 呂布傳 張邈》
僕也ㅣ 雖慙知己나 甞敢薦賢하고 亦曾錄詔寄呈하니 必合垂情見悉이라 誰料旣踰望始하여 飜起釁端하고 甲兵繼興하여 壃場頻駭아
내가 비록 지기(知己)가 되기에는 부끄럽지만, 일찍이 그대를 현능(賢能)하다고 천거하였고 또 조서 내용을 기록하여 보내기도 하였으니, 반드시 관심을 갖고 잘 이해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당초의 소망과는 달리 흔단(釁端)을 자꾸 일으키는가 하면, 군사를 계속 동원하여 강역(疆域)을 자주 놀라게 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所云 泗州城中將校ㅣ 頻來計圖나 此乃巧飾虛辭라 遍行長牒이라도 盡知譎挑하리니 孰肯詭隨아 朝廷以足下身處雄城하고 刃多餘地라하여 委催綱運하며 兾濟權宜라
그대가 말하는 사주의 성중(城中)의 장교(將校)가 자주 와서 꾀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헛말을 교묘하게 가식(假飾)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장문의 글을 지어서 두루 보낸다 하더라도, 모두가 궤변(詭辯)스럽게 도전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니, 누가 기꺼이 속아서 따르겠습니까? 조정에서는 족하가 웅대한 성(城)에 처하고 무력이 넉넉하다고 해서, 강운(綱運)의 일을 위임하며 적절히 조처하도록 기대하였습니다.
* 강운(綱運): 수레나 선박의 편대를 구성해서 대대적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것을 말한다. 운강(運綱)이라고도 한다.
但自戢斂兵車면 必得通流饋輦이온 今則却云 奉朝廷意旨하여 收徐泗封壃이라하며 廣出師徒하니 難窮事意라
단지 족하의 병거(兵車)를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반드시 화물을 운송하여 유통시킬 수 있을 것인데, 지금 “조정의 명령을 받들어 서주(徐州)와 사주의 봉강(封疆)을 접수한다.”라고 말하면서, 군사를 대거 출동시키고 있으니, 도대체 그 의도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必若足下訓戎勇銳하여 報主忠勤이면 何不親揔全軍하여 往殲巨憝하여 早立非常之効하여 以酬不次之恩까 而乃知僕再次西征하고 卽謀北渡하여 便侵泗境하고 來犯淮壖하여 負國家之寵榮하고 搆州縣之患害잇가
만약 족하가 정예부대를 조련하여 임금님에게 충성을 바치려고 한다면, 어찌하여 직접 전군(全軍)을 거느리고 가서 원흉(元兇)을 섬멸하여 비상한 공을 일찍 세우고 특별한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리고 어찌하여 내가 재차 서쪽으로 정벌하려는 것을 알고는, 바로 북쪽으로 건너가려고 꾀하여 사주를 침범하고 회주(淮州)를 침입하여, 국가의 은총을 저버리고 주현(州縣)에 환란을 끼친단 말입니까?
幸其賊勢하며 阻此師期하니 未諭雅懷라 何辜聖奬가 言但繁於枝葉이요 事莫究於根源이라
그러고는 도적의 형세를 다행으로 여기며, 우리의 군사 작전을 저지하고 있으니, 그 마음속의 생각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장려(奬勵)하는 성상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까? 그대의 말은 지엽적으로 번다하기만 할 뿐, 일을 근원적으로 궁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來示又云 比皆廬州․海州ㅣ 皆爲背叛이나 累來投欵하여 不遣措詞者라하여 強謂恩情形於書扎한데 顔雖不厚나 心且何安가
보내온 글에 또 말하기를 “요즈음 듣건대 여주(廬州)와 해주(海州)가 모두 배반했다고 하나, 누차 찾아와서 정성을 바쳤으므로, 조처하라는 글을 보내지 않았다.”라고 하여,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서찰에 일부러 드러내려고 하였는데, 얼굴은 부끄러워하지 않더라도 마음이야 어찌 편안하겠습니까?
彼東海廬江에 偶聚姧惡하여 異端斯起하니 旣非鄭有人焉이요 同氣相求하니 盡是跖之徒也라 足下ㅣ 已居重任하며 不徇危謀하고 自守詔條하며 何煩飾說가
저 동해(東海)와 여강(廬江)에 간악한 무리가 모여서, 괴이한 사단(事端)을 일으켰으니 정(鄭)나라에 인물이 있다고 할 수가 없고, 작당(作黨)하여 흉계를 꾸미고 있으니 모두 도척(盜跖)의 도당(徒黨)이라고 할 것입니다. 족하가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비상한 계책을 운용하지는 않고, 조서(詔書)의 조목만을 고수하고 있으면서 가식적인 말을 어찌 그리도 많이 한단 말입니까?
* 鄭有人: 춘추 시대 초(楚)나라 영윤(令尹) 자원(子元)이 정나라를 공격하다가 “정나라에 인물이 있구나.〔鄭有人焉〕”라고 감탄하고는, 제후(諸侯)가 정나라를 구원하자 밤중에 퇴각한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莊公28年》
僕累將軍食으로 頻救臨淮는 爲分逆順之蹤하여 令保始終之志라 實以泗州는 曾非杞子之無禮요 亦類展禽之有詞라 每當告急告窮에 唯以行仁行義라 唯望 足下蹔息餘怒하고 深量遠圖하여 且先報國之誠하고 無急伐隣之役이라
내가 누차 군량(軍糧)을 가지고 임회(臨淮)를 구제하려 한 것은 역순(逆順)의 자취를 분별하여 시종(始終)의 뜻을 보전하게 하려 해서인데, 실제로 사주는 기자(杞子)처럼 무례하지도 않았고, 전금(展禽)처럼 말에 조리가 있었기 때문에, 위급하고 곤궁함을 고할 때마다 인(仁)을 행하고 의(義)를 행했던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족하(足下)도 잠시 노여움을 멈추고 깊이 헤아리고 원대한 계책을 세워, 나라에 보답하는 정성을 우선(于先)으로 하고, 이웃을 공격하는 싸움은 서두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 非杞子之無禮: 《춘추(春秋)》 희공(僖公) 27년 경문(經文)에, “봄에 기자가 찾아왔다.〔春杞子來朝〕”라고 하고, “을사에 공자 수가 군대를 이끌고 기나라를 쳐들어갔다.〔乙巳 公子遂帥師入杞〕”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좌씨(左氏)는 “가을에 기나라로 쳐들어간 것은 기자의 무례함을 응징한 것이었다.〔秋 入杞 責無禮也〕”라고 하였다.
* 展禽之有詞: 춘추 시대 제(齊)나라 효공(孝公)이 노(魯)나라 북쪽 변경을 침입하였을 때에, 노나라의 전희(展喜)가 전금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제왕(齊王)과 대화하며 응수하자, 제왕이 사리에 맞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회군(回軍)한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僖公26年》
兼覩詔書奬諭컨대 請與忠武協和하니 足見眷情俾銷微憾이라 在於臣子하여는 合更愼思하니 永將安撫甿黎하여 速自追迴士卒이라
그리고 조서에서 타이른 말씀을 보건대, 충무(忠武)와 협화(協和)하라고 당부하셨으니, 성상의 뜻이 사소한 감정을 풀게 하는 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臣子)의 도리에 있어서는 다시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니, 백성을 안무(安撫)할 방도를 강구하여 속히 군대를 돌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苟或上負君命하고 下違物情하며 隔礙征途하고 侵凌近境하면 則亦難辭借一用試當千이니 必見傷禽易驚 困獸猶闘라 悔須防後요 險已居前이라
만약 위로 임금의 명령을 저버리고 아래로 사람의 마음을 어기면서 출정하는 길을 가로막고 이웃 경내를 침범한다면, 최후의 결전(決戰)을 마다하지 않고서 일기당천(一騎當千)의 군사를 시험하게 될 것이니, 필시 화살 맞은 새가 지레 놀라듯 할 것이요, 궁지에 몰린 짐승이 덤비듯 하는 형세가 될 것입니다. 뉘우치는 것은 뒤에 하는 것을 막을 것이오, 위험한 것은 이미 앞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矧乃泗州는 以抱節爲名한데 貴鎭은 以翫兵爲務하고 泗州則唯遵王化하고 貴鎭則虛搆牒詞하니 以較否臧이면 可知曲直이라 是敢遠申忠告하니 兾絶後誣라
더군다나 사주는 충절을 지닌 것으로 이름이 난 반면에, 귀진(貴鎭)은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일삼고 있는 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사주는 오로지 왕화(王化)를 따르고 있고, 귀진은 첩사(牒詞)를 거짓으로 꾸미고 있으니, 선악(善惡)을 비교하면 곡직(曲直)을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멀리서 충고하는 바이니, 나중에 절대로 무고(誣告)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正當聖主蒙塵未除禍難하여 何忍諸侯列土ㅣ 更起兵戎가 猛發忠言이요 懶爲謟笑하며 勉思大體하여 勿暴小瑕라 必因此日所箴하여 却得後時見謝하리니 幸從誠信하여 無損功名하소서
某官某는 頓首하노이다
성주(聖主)가 몽진(蒙塵)했는데도 아직 화난(禍難)을 제거하지 못한 이때를 당하여 어떻게 차마 제후(諸侯)의 강역(疆域)에서 다시 전쟁을 일으킨단 말입니까? 나는 애써 충고하는 말을 할 줄만 알 뿐, 아첨하며 웃는 일은 하지 못하며 가능한 한 대체(大體)만 생각하여 작은 허물은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해 준 잠언(箴言)을 뒷날 사례할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니, 부디 성신(誠信)에 입각해서 공명(功名)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모관(某官) 모(某)는 머리를 조아리고 아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