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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는 사전에 ‘한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 백수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잉여인간처럼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급변하고 있고, 더 이상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취업을 하기 위해 각종 시험에 뛰어드는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이 늘어나고 있고, 도서관을 비롯한 각종 학원에는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로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정책을 통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애쓴다고 하지만, 이미 사회 구조가 바뀌어버렸기에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저자는 이미 ‘백수의 시대’에 접어든 ‘청년 백수’들에게 백수로 살 수 있는 건강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청년 영ㄴ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백수로 누리는 삶을 조선시대 지식인인 연암 박지원으로부터 배울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백수라고 여기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가장 활발하게 강연을 하고 책을 쓰면서 살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의 삶이 결국 백수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백수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백수는 노동과 화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려는 계획 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일컫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부모로부터 자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 이들도 결국 과도한 소비와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이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경제력이 커지면 그만큼 소비에 대한 욕구도 증가하고, 끝내 소비와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는 과도한 소비와 화폐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밥벌이와 자존감’이라는 제목의 1장에서, 저자는 박지원이 젊어서 우울증을 겪었듯이 현대의 청춘들도 결코 ‘푸르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청춘예찬’이라는 수필을 통해서 우리는 청춘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청춘 시절을 행복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여겨진다. 결국 우리의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라 하겠다. 취직과 부자가 되는 것 등 우리의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키면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한때 ‘부자되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각광을 받던 시대가 있었다. 과연 우리는 부자가 되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대답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자는 먼저 자신의 삶을 당당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기 삶의 매너지가 되자!’는 조언을 남기면서,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노동이 아닌 활동에 뛰어들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은 늘 주위에 벗들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삶을 ‘우정론’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곤 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나면 ‘바쁘게 사는 것이 좋지’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건네는 경우가 있었다. 바쁘게 살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풍토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바쁘지 않고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꿈을 꾸지 말라고 조언한다. 꿈을 꾼다는 것은 결국 사회적으로 성공을 원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한때 ‘인맥 관리’가 강조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경향에서 완전히 탈피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휴대폰에 담긴 전화번호의 수나 SNS의 팔로워 수에 의해 그 사람의 능력치가 결정되는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의 전화번호 수나 SNS의 팔로워 수가 그 사람의 사회적 능력의 척도를 증명하는 것일까? 자신이 어려움에 처할 때 그들 모두가 진심으로 위로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감과 소통을 전제로 하는 친구 맺기를 권유하고 있다. 불안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평소에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을 수 있고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 한다. 저자는 그것을 위해서 ‘우정의 기예를 연마하자’라는 조언을 남기고 있다.
지금도 한국 사회의 경제 문제의 대부분은 ‘집값’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평생의 과제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고,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에서 ‘건물주’가 가장 많은 답변이 나왔다는 사실은 그러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현실에서 백수로 살기 위해, 저자는 ‘집에서 탈출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길을 통해서 삶의 목표를 세우고, 살아가는 방식을 탑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2장의 제목은 ‘집의 시대에서 길의 시대로 –청춘은 유동한다’이다. 이미 핵가족의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이기에, 가족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확대시키는 것이 외롭지 않게 살 수 잇는 방안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미 공짜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공유 경제’가 존재하고, 삶의 핵심이 노동과 화폐가 아니라 관계와 마음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행과 글쓰기는 그 결과 얻어지는 부수적인 산물이자, 백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속적 성공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저자는 백수들에게 ‘노마디즘으로 무장하자’고 조언하고 있다.
백수들의 생활은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는 공부에 있다고 보고 있으며, 4장에서 ‘배움에는 끝이 없다 –네버엔딩 쿵푸!’를 외치는 것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여전히 대학의 학과 선택의 기준은 취업에 유리한가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취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과 세계에 대한 탐구로서의 공부를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저자가 속한 ‘감이당’에서 실시하고 있는 ‘고전 100권 읽기에 도전’하는 것이라든지, 자기 스스로의 계획을 세워 책을 읽고 공부하는 방법을 찾도록 권유하고 있다. 공부는 결국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그것을 위해 말하기와 글쓰기가 핵심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반복에서 생성으로 –지혜의 파장에 접속하자!’고 제언을 하면서 끝맺고 있다. 결국 정규직으로 살기 힘든 시절에 누구나 다 정규직을 위해서 뛰어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를 권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그 과정에서 끝없이 죄절을 맛보며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던지는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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