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바늘을 내 귓속에 밀어넣어 고막을 뚫어버렸다. 그런 고통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나마 근사값을 찾는다면 1999년 여름, 승합차에 치었다가 회복될 때의 처음 한 달이 비슷했을까. 고막이 뚫리는 고통은 형언할 길이 없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머리 속에서 소리가 났다. 요란하게 입맞추는 소리 같았다. 귓속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왔다. 마치 엉뚱한 구멍에서 눈물이 나오는 듯했다. 물론 그때쯤에는 올바른 구멍에서도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들고 불신의 눈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까 간호사가 진찰대의 상담 1/3이 덮이도록 깔아놓았던 헝겊을 내려다보았다. 헝겊은 흠뻑 젖어 큼직한 얼룩이 남아 있었다. 가느다란 덩굴손을 닮은 누런 고름도 보였다.
의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됐다. 잘 참았다. 스티브. 이젠 다 끝났어.”
다음주에도 어머니는 택시를 불렀고, 우리는 다시 귓병 전문의을 찾아갔고, 나는 또다시 옆으로 누워 흡수용 헝겊에 머리를 얹어야 했다. 의사는 이번에도 알코올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고 -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냄새만 맡으면 고통과 질병과 공포를 떠올리게 된다 - 이번에도 그 기나긴 주사 바늘을 끄집어냈다. 그는 이번에는 아프지 않다면서 나를 안심시켰고, 나는 한 번더 믿어주었다.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바늘이 귓속으로 들어올 때는 조용히 있었다.
정말 아팠다. 거의 지난번 못지않게 아팠다. 머리 속에서 쪽쪽거리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이번에는 거인들이 입을 맞추는 듯했다 (시쳇말로 ‘핥고 빨고 야단이었다’).
“됐다.”
치료가 끝나자 간호사가 말했다. 나는 흥건한 물과 고름 속에 누워 울고 있었다.
...
나는 또다시 머리맡에 기저귀가 깔린 진찰대에 누워야 했고, 어머니는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어쨌든 나는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다) 잡지책을 들고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가 다시 풍겼고, 의사가 잣대만큼이나 길어 보이는 주사 바늘을 들고 내 쪽으로 돌아섰다. 그는 이번에도 그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고 ‘이번만은’ 정말 안 아플거라고 말했다.
여섯 살 때 그렇게 고막이 뚫리는 고통을 거듭거듭 당한 뒤부터 나는 확고 부동한 인생 철학 하나를 갖게 되었다. ‘나를 한 번 속이면 네 잘못이다. 나를 두 번 속이면 내 잘못이다. 나를 세 번 속이면 우리 둘 다 잘못한 것이다.’ 귓병 전문의의 진찰대에 세 번째로 눕게 되었을 때 나는 악을 쓰고 몸부림을 치면서 한사코 버텼다. 마침내 간호사가 대기실에 있던 어머니를 불러왔고, 두 사람은 의사가 주사 바늘을 꽂을 수 있도록 나를 꽉 붙잡고 있었다. 그때 내가 지르던 길고 요란한 비명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어쩌면 내 머리 속의 어느 깊은 골짜기에는 그 마지막 비명 소리가 아직도 메아리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