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여천(事人如天)(장경식)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겨라는 뜻으로, 천도교에서 한울님을 공경하듯이 사람도 그와 같이 공경하여 서로의 인격과 예의를 존중하는 윤리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事 : 일 사(亅/7)
人 : 사람 인(人/0)
如 : 같을 여(女/3)
天 : 하늘 천(大/1)
사람은 태어날 때 선과 악, 어느 쪽에 가까울까. 예부터 성선(性善), 성악(性惡)으로 대립했지만 오늘날도 주장은 여전하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는가 하면, 이성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고 행동은 천사와 같다며 인간은 위대한 걸작이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파스칼은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에 사람을 위치시켰다.
철학자들의 결론 없는 주장은 뒤로 하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말은 모두 수긍한다. 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인권선언도 모두 옳다. 평등할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事人)를 하늘과 같이 하라(如天)는 이 말 이상으로 사람을 중시한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민족종교 천도교(天道敎)의 기본 사상인 이 말은 조선 말엽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이 동학(東學)을 창시할 때부터 사람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시천주(侍天主) 가르침에서 나왔다.
여기서 하늘은 사람인 한울님을 가리키고, 사람의 신분이나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바 없이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2대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3대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교주로 체계화되면서 사람이 곧 하늘이란 인내천(人乃天)으로 굳어졌다.
해월 선생이 한 유명한 말을 보자.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하셨다고 말하라(道家人來, 勿人來言, 天主降臨爲言)."
이러한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사람을 하늘같이 여기는 삶인데 그 방식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길러나가는 수행을 통해서만이 한울님을 모실 수 있다는 양천주(養天主), 타인을 신분과 성별에 의해 차별하지 않는 대인(待人), 나아가 사람만이 아닌 우주만물이 모두 한울님이 기화되어 이뤄졌다는 접물(接物)이 그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교리는 모르더라도 사람이 곧 하늘이면 세상 민심이 하늘의 뜻인 것은 누구나 안다.
사람을 하늘처럼 잘 섬겨야 하는 사람은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멋들어진 구호나 공약으로 이 말을 내세워 놓고 정작 실천할 자리가 주어지면 제몫 챙기는 사람이 더 많다.
또 남을 미워하면 내 안의 한울님을 상하게 한다고 여겼던 동학은 농민혁명이 비폭력 평화시위의 근원이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사인여천(事人如天)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이 강조한 인본주의 사상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며 모든 인간을 본질적으로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은 창시자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이어받아 동학의 정신을 체계화하고자 하였다.
그는 불우한 성장 환경으로 인해 유교와 같은 주류 학문을 이론적으로 습득하지 못했던 만큼, 대중들을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동학 이념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는 ‘한울님을 모신다’는 의미의 시천주 사상을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사람이 곧 한울님이니 신분이나 성별 등에 따라 차별하는 바 없이 모든 사람을 한울님처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삶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인여천 사상은 구체적으로 양천주(養天主), 대인접물(待人接物), 삼경사상(三敬思想) 등의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 양천주(養天主)
최시형은 ‘인간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侍天主)’라는 사실을 단순히 자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인식을 실천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한울님을 각자가 길러 나가는 양천주(養天主)를 강조하였다. 단순히 한울님을 깨닫는 것으로는 한울님을 자신의 내면에 모실 수 없으며 한울님을 길러나가는 수행을 통해서만이 한울님을 모실 수 있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적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양천주의 결과로서 인간은 나와 한울님과 우주 자연이 하나임을 온전히 깨닫게 된다. 최시형에 따르면 모든 것의 근본이 하나임을 깨닫는 순간, 나와 다른 것들 간의 차별성이 사라져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양천주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서 향아설위(向我設位)를 제시하였다. 이는 벽을 향해 절을 하는 전통적인 제사 형식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귀신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인간이 곧 한울님과 같다는 원칙이 위배되므로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자기 자신을 향해 제위를 올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대인접물(待人接物)
양천주를 통해 실천적으로 한울님을 자각할 수 있게 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접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이 바로 대인접물 사상이다.
양천주가 사인여천의 근거가 되는 이념이라면 대인접물 사상은 사인여천의 실천적 적용을 위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대인(待人)과 접물(接物)이다.
우선 대인이란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해당한다.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인즉천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을 한울님을 대하듯이 대하며 신분과 성별에 의해 인간을 차별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접물이란 인간과 자연 간의 올바른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 이념이다. 최시형은 사람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주 만물이 모두 한울님이 기화되어 이루어진 결과물이라 여긴다. 따라서 만물을 마치 한울님을 대하듯 존중하고 아낄 것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