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크게 벌리고 온 몸에 힘을 잔뜩주고 견디어야 하는것 말고도, 엉망인 내 치아가 걱정을 넘어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있어서 치과는 편치가 않다. 이젠 틀니를 해야할 상태란다. 그것도 서둘러서 말이다. 희망수명이 지난 지금 치과치료가 꼭 필요할까. 내일이라도 부르시면 가야하는데, 큰돈들여서, 곤역스러운 일을 감당하면서 까지 꼭 그래야하는지 결심이 안서고 있다. '내일이라도 부르시면'이 문제다. 그 내일이 언제일지 모르니까. 만일 그 내일이 10년후가 될수도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루를 살아도 잘 씹어먹고 사는게 중요하긴 하다. 그런데, 틀니가 영구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몇년, 혹은 아주 짧은 기간에 또 다시 해야할수도 있으니까. 하나님이 주신 자연치아는 거이 영구적이었다. 관리를 소흘해서 충치에 썩고 망가지는 실패를 하고 있을뿐이지만 더러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신의 치아를 잘 사용하고 있다. 하긴 오직해야 오복중에 하나로 꼽힐까. 오늘은 치과엘 간다. 잇몸치료와 작은 어금니 하나를 뽑기위해서다. 흔들린지가 오래다. 많이 참고 참았다. 더는 어찌할수가 없어서 드디어 결심을 한 것인데,,, 사실은 지금부터가 문제인 것 같다. 멀쩡한 니가 하난들 있을까. 몽땅 뽑고 몽땅 틀니를 해버릴까. 충동적인 순간인들 왜 없겠는가. 어느 제벌이 병상에 누었을때, 지금 이순간 가장 바라는게 있다면 뭐가 있느냐는 질문에 ' 비빕밥 한그릇' 먹고 싶다였다고 한다. 그게 잊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게 실감이 난다. 꼭꼭 씹어서 먹을수 있는게 얼마나 큰, 그리고 소중한 행복인데 그것마저 잊고 살았던 것이다. 사실 행복이 뭐그리 대단한데 있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손도손 웃고 웃으면서 사는게 행복이다. 그걸 잊는게 우리들이다. 실상 그리 안타갑게 바라는 것들은 허상일뿐인데,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불쌍한 인생들이다. 이제라도 진정한 행복에 감사하며 마무리 할수는 없을까. 허탄한 것들에 마음쏟으며 방황하는 것도 멈추면 어떨까. 이 나이가 되고서도, 이미 다 알고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돌이킬 생각도 없는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진짜와 가짜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짜에 현혹되어 있다면 진짜를 아는게 무슨 소용인가.. 구름 사이로 하늘이 파랐다. 미세먼지가 없어서 먼 산도 잘 보인다. 이런 세상에 먼지를 이르키고 있는것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발전을 부축이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걸 온전히 누리는 것은 오히려 소수의 부자들이다. 그리고 그 부자들의 꽁무니를 열심히 뒤쫒고 있는 우리 다수의 무리들은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종말이란 말이 없던때는 없었다.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로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때부터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분도 있긴하다. 나는 종말에 관심이 있던가. 그냥 하루를 살기에도 버거운 내게 종말 같은것은 오거나 말거나 였다. 오히려 나 혼자서 당하는 작은 어려움보다는 다 함께 당하는 큰 시련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는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내일은 딸과 점심 약속을 했다. 나는, 요일이나 날짜를 자주 혼동하는 중이다. 월요일 다름이 화요일인것은 아는데,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가는지 자꾸 건너뛴다. 한칸만이 아니라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껑충거리는 것 같다. 9월이 시작된게 엇그제인데 어느세 하순이다. 9월이 다 뭐야. 올해도 벌써 다 가고 있는것 아닌가. 인구의 대다수가 77-8세면 다 간다는 통계는 어떻게 된것일까. 나는 대다수에 포함되지 않았단 말인가. 오래 사는게 더이상 축복이 아니라 재앙인 시대다. 두발로 걷고, 숨을 쉬며 먹고 마시고 배설하며 일상을 사는게 감사인것은 틀림이 없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지금 사람인가.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 젊어서조차 사람답게 살지 못했는데, 지금 세삼스레 따질일은 아닐수도 있다. 아니, 아니다. 젊어서까지 그랬으니, 이제라도 사람으로 살길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것 아닌가. 창밖의 꽃이 예쁘다. 자리를 잡은듯 하다. 나는 물을 주었을 뿐이고 자라고 꽃이 피게 하신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만이 주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