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 새로운 국가 AI비전의 의미
정부가 ‘국가 AI 비전’을 본격 추진하면서, 인공지능은 더 이상 산업 혁신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국가 경쟁력과 사회 체계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AI를 활용해 삶의 질을 높이고, 산업과 공공이 함께 혁신하는 나라”라는 비전은 기술의 확산을 넘어 인간과 사회의 공존을 설계하는 청사진이다(교육부, 2024).
그러나 문제는 속도만이 아니다. 기술혁신이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신뢰 위에 구축되지 않는다면, AI 기본 사회는 편리함보다 불안함을 먼저 야기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육이 ‘기술의 사회적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다. 교육은 단순히 AI 기술을 가르치는 기능적 영역이 아니라, AI가 인간의 사고와 가치, 사회적 책임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제도적 기반이어야 한다(한선관, 류미영, & 천종필, 2024).
국가 AI비전 속 교육의 역할: 사회 전체의 학습 인프라 구축
AI시대 교육의 핵심 과제는 ‘모든 국민의 학습 역량을 AI 친화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AI 기본 사회를 위한 교육의 접근 방법을 한국AI교육학회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세 영역으로 제시한다(한국AI교육학회, 2025).
첫째, AI 이해교육(AI Literacy)을 모든 학교 기초 교육과 모두를 위한 평생학습의 기본 역량으로 확립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프로그래밍 교육이 아니라, 디지털 기반의 데이터를 이해하고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인간의 판단이 기술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는 기초 소양 과정이다.
둘째, AI 협력교육(AI Collaboration)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생성형 AI로 촉발된 교육의 비전은 디지털 교과서, 학습분석 플랫폼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AI가 교사와 학생, 지역사회가 함께 학습을 설계하는 공동 지능(Co-Intelligence)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교사는 AI를 경쟁자가 아닌 ‘교육적 동반자(Edu-partner)’로 인식하고, 학습자 맞춤형 피드백과 창의적 수업 설계를 통해 인간 교사의 본질적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
셋째, 교육은 AI 가치교육(AI Ethics & Humanity)을 통해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길러야 한다.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이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추려면, 초·중·고 교육단계에서부터 데이터 편향, 알고리즘 윤리, 사회적 책임에 대한 탐구와 윤리적 태도를 지향하는 교육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기술의 사용 이전에 ‘무엇이 인간다운가’를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AI 교육의 세 가지 접근은 우선, 디지털 사회의 기반이 되는 디지터시(Digitacy) 역량을 키워 AI 사고력으로 신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육의 핵심 학습 이론도 기존 행동주의, 인지주의, 구성주의를 넘어 AI와의 메타협력주의와 공진주의의 방향으로 확장하여 기존 교육 체제를 혁신해야 한다.
[그림 1] AI교육 2.0 모델
-출처: 한선관, 류미영, & 천종필(2024)
기술·인간·사회가 함께 성장하기 위한 세 가지 전환
(1) 학교: AI 기반의 학습 생태계로
AI 기반 디지털 교과서와 맞춤형 학습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학교는 더 이상 ‘지식 전달의 장소’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 탐구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사는 기술의 활용 역량뿐 아니라 AI와의 협력적 태도를 통해 AI 데이터 해석력과 교육설계 능력을 갖춰야 하며,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AI 교원양성·연수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김병찬, 2025).
예를 들어, 핀란드의 Elements of AI 프로그램처럼 전 국민이 수준별로 접근 가능한 온라인 기반 AI 학습 플랫폼을 마련하고, 이를 학제 간, 세대 간 연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핀란드 헬싱키대학교, & Reaktor, 2018).
(2) 지역사회: 모두를 위한 AI 평생학습망
국가 AI비전이 산업과 도시 중심으로만 추진될 경우, 교육격차는 기술격차로 심화된다. 따라서 ‘지역 기반 AI 평생학습망(Local AI Learning Hubs)’을 구축해 국민 누구나 AI를 활용하고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 대학, 공공기관, 기업이 협력하여 지역 특화 산업과 연결된 AI 실습·창업·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AI는 단지 전문가의 기술이 아니라 모두의 시민 역량이 될 수 있다.
(3) 사회: 교육-기술-윤리의 다각적 협력 구조
AI 혁신의 속도는 빠르지만, 사회 제도와 윤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기술과 제도, 인간의 윤리를 연결하는 다각적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AI 전문 인력 양성과 동시에, 데이터 보안, 프라이버시, 알고리즘 공정성 등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AI 시민(Artificial Intelligence Citizen)’을 길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교육부, 과기정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하는 범정부 AI 인재·윤리·평생학습 컨소시엄 구성이 필요하다.
교육의 재설계: ‘AI 기본사회’의 패러다임
앞으로의 교육정책은 단순히 AI 교육을 추가하는 수준을 넘어, AI가 내재된 사회에서 살아갈 시민을 위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 교육목표의 재정의: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능의 확장’과 ‘AI와의 협력’, ‘가치의 형성’을 중심으로.
- 교육과정의 재구조화: 모든 교과에서 문제해결, 데이터 이해, 윤리적 판단을 통합하는 AI 융합형 교육과정 운영.
- 교사의 역할 전환: ‘가르치는 자’에서 ‘AI와 함께 학습을 설계하고 적용하며 발전하는 자’로.
- 정책 거버넌스 혁신: 학교, 지역, 기업, 연구기관이 상호 연동되는 AI 교육 플랫폼 거버넌스 구축을 가장 먼저.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지만, 지금 설계하지 않으면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더 이상 남지 않는다. 교육은 기술혁신의 ‘수혜자’가 아니라 AI 사회를 설계하는 주체로서 국가 비전의 중심에 서야 한다.
국제적 연계와 한국형 AI교육 거버넌스
세계 주요국은 이미 교육을 AI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두고 있다. OECD는 AI and the Future of Skills 2030을 통해 “AI사회에서 인간의 판단, 윤리, 협력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라 명시했고, UNESCO는 AI Competency Framework for Teachers에서 “AI를 가르치는 것보다 AI와 함께 가르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OECD, 2023; UNESCO, 2021).
이제 한국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형 AI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교육부 단일 부처의 과제가 아니라, 산업정책·노동정책·복지정책과 연결된 국가적 생태계 조정이어야 한다. 특히 대학과 연구기관은 첨단 기술개발의 현장일 뿐 아니라, 미래 교사와 교육 전문가를 길러내는 핵심 거점이다. 이곳에 AI 윤리·데이터 거버넌스·인문사회 융합 교육센터를 설치해 기술개발과 인문사회교육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AI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사회의 연대성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한국 교육은 ‘AI를 잘 다루는 국민’이 아니라, ‘AI를 바르게 이끄는 국민’을 길러야 한다.
맺음말 - 교육이 곧 국가의 AI 인프라
우리나라 ‘국가 AI 비전’의 성공은 알고리즘의 성능이 아니라 사람의 성숙도에 달려 있다. AI가 인간의 창의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그 설계자이자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교육은 더 이상 AI의 ‘보조적 영역’이 아니다. 교육이 바로 국가 AI 비전의 사회적 운영체계, 즉 ‘인간 중심 AI국가’를 구현하는 핵심 인프라다. 기술이 앞서가도, 인간이 함께 가지 못한다면 그 미래는 공허하다. AI 시대를 여는 진정한 혁신은, 기술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둔 교육의 혁신에서 시작된다.
한선관 교수는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컴퓨터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SW교육과 AI교육을 화두로 삼아, 국내에선 ‘소프트웨어교육’과 ‘컴퓨팅 사고력’에, 미래교육 차원에선 ‘인공지능리터러시’ 및 ‘융합교육’에 진력하고 있다. 인공지능융합전공 주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인공지능교육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한양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초·중등 현장 AI교사 연구협력자로 활동하며, 교육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교육 콘텐츠 개발과 교사 연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