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의 꿈 / 남상진

멸치의 꿈남상진 이 바닥에서 나는잔챙이라 불린다한 때는반짝이는 물결무늬 옷을 해 입고힘차게 파도를 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덩치가 산만한 고래를 보고 난 뒤부터 이내 기가 죽었다그나마고만고만한 동류들이 있어 견디고 있는 중이다 물속 세상에서거센 해류를 거슬러 오르는 것은살아있음을 증명해 내는 일식탁에 오르기 전까지온몸의 근육을 키워뼈대 있는 존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 그 한 가닥 희망을 안고물속에서스스로 소실점이 되는 생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끝내고래가 되지 못하는 내가살아남는 법은속으로 스며들어깊은 맛을 내는 종족으로이름을 얻는 것이다----애지문학회 사화집 {문어文魚}에서   멸치는 청어목 멸치과로 정어리와는 친척관계이며, 먹이사슬의 최하단계에 있는 만큼 그 천적들이 무척이나 많다고 한다. 돌고래, 고래, 바다표범, 물개, 바다거북, 문어, 오징어, 해파리, 대게, 가다랑어, 상어, 수많은 바닷새들이 그것이며, 이것은 거꾸로 멸치가 수많은 천적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것이 된다. 먹이사슬의 구조는 자연의 질서이며, 따라서 어느 종과 종의 서열과 비교우위를 논할 수가 없다. 상어에게는 상어의 생리와 그 삶이 있고, 바다표범에게는 바다표범의 생리와 그 삶이 있다. 고래에게는 고래의 생리와 그 삶이 있고, 멸치에게는 멸치의 생리와 그 삶이 있다. 요컨대 멸치가 소멸되고 고래가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가, 아니면, 고래가 소멸되고 멸치가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멸치와 고래가 다같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종과 종들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이며, 이 먹이사슬의 구조는 무척이나 잔인해 보이지만, 그러나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거룩하고 정교하게 자연의 질서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다.  남상진 시인의 [멸치의 꿈]은 이 자연의 질서와는 무관한 인간중심주의의 노래이며,‘멸치의 꿈’이 기껏해야“깊은 맛을 내는 종족으로/ 이름을 얻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삶의 바다에서 잔챙이로 불리고,“한 때는/ 반짝이는 물결무늬 옷을 해 입고/ 힘차게 파도를 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덩치가 산만 한 고래를 보고 난 뒤부터 이내”그 꿈을 버렸던 것이다.“그나마/ 고만고만한 동류들이 있어 견디고” 있지만, 그러나 “물속 세상에서/ 거센 해류를 거슬러 오르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해 내는 일/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온몸의 근육을 키워/ 뼈대 있는 존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바라는 마음뿐이었던 것이다. 요컨대“한 가닥 희망을 안고/ 물속에서/ 스스로 소실점이 되는 생//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끝내/ 고래가 되지 못하는 내가/ 살아남는 법은/ 속으로 스며들어/ 깊은 맛을 내는 종족으로/ 이름을 얻는 것”뿐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머리도 남상진 시인이고, 꼬리도 남상진 시인이다. 멸치의 깊은 맛에 반하고 멸치가 없으면 못 사는 인간이 남상진 시인을 통해서 멸치의 존재와 그 생애를 제멋대로 변주하고 왜곡시킨 것이 [멸치의 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있고, 고래는 기껏해야 인간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 멸치는 잔챙이이고 더없이 불행한 존재인데, 왜냐하면 덩치가 산만 한 고래를 피했더니 이 세상에 더없이 사납고 잔인한 잡식성 인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멸치가 멸치의 꿈을 인간의 식욕에 맞추고,“온몸의 근육을 키워”더욱더“깊은 맛을 내는 종족으로”인간의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허구이자 가상이며, 승자가, 또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제멋대로 왜곡하고 변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멸치가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가? 아니면, 인간이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가? 자연환경과 생태환경의 파괴자인 인간이 죽으면 모든 동식물들이 축제를 열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멸치는 수많은 생물들을 먹여 살리지만, 인간은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인간이 멸치를 잡아 먹는 것은 자비가 되고, 멸치가 인간에게 잡아 먹히는 것은 하늘의 은총이 된다. 이 인간중심주의가 [멸치의 꿈]을 제멋대로 왜곡하고 변주시키며,‘인간만세의 세상’을 열어나간다.  아아, 멸치여, 멸치여!  이 다음 생에서는 우리 인간들을 사육하고 길들이며, 산채로 잡아먹는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