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영화 싫어하세요? <아이 엠 샘>(성은애) (3)
영화깨나 봤다는, 혹은 머리에 먹물이 좀 들었다는 사람들은 대개 '예쁜 영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처절하고 각박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의 마음씨와 그(녀)가 보여주는 사랑이 예쁘고 따뜻하여, 보면서 감동의 눈물(아니면 콧물이라도...-.-;;;) 한두줄기 흘려줘야 하는, 적어도 그런 반응을 유도하도록 만들어진 '착한' 영화들 말이다.
이런 인간들은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조작'에 넘어가서 헛된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그 감동의 눈물은 그냥 시간이나 때우는 배설행위가 되어버린다고 여긴다. 진짜 감동은 그런 통속적인 이야기에 휘말려 흘리고 마는 눈물따위가 아니라고, 진정한 감동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서 자신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해주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바꾸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 속에는,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통속적인' 이야기가 주는 감동, 혹은 재미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스스로 그에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냥 그런 감정 쪼가리따위를 피하거나, 아니면 그런 건 천박하고 유치한 것이라고 스스로의 취향을 '훈련'시킨 것이리라.
왜냐면, 일단은 살면서 통속적인 이야기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들, 남녀간의 사랑,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좋은 넘과 나쁜 넘, 배신과 음모 등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설사 판에 박힌 듯 팍팍한 현실과 판에 박힌 듯 아름다운 주인공을 대비시켜 일시적으로나마 후자에게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드는 통속적인 감수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특이한 취향의 소유자가 있다고 치자. 그래서 그 통속적인 이야기가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할지라도, 화면에 드러나는 '몸'의 움직임이 주는 기쁨, 아름다운 색채의 화면과 귓전을 자극하는 음악, 이런 '감각적인' 즐거움에 무감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통속적인 '예쁜 영화'들은 바로 그런 것을 무기로 하여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거참, 사람들이 눈물짜는 얘기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가을에 사람들 휴지깨나 버리게 했다는 <아이 엠 샘> 역시 그저그렇게 안 봐도 뻔한 통속적인 이야기에 속한다. 지능은 낮으나 착한 심성과 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샘, 너무나 깜찍하고 예쁜 딸, 그런데 그 두 사람을 가만 냅두지 않는 세상, 도저히 떨어져 살 수 없는 두 사람, 자신만만하고 스마트하며 외모도 그럴듯하고, 그러므로(!?) 당연히(!) 싸가지 왕재수 밥맛인 변호사 리타 해리슨(주차 미터기 체크하는 아름다운 리타 + 고독해보이는 멋진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서서히 '바보' 샘에게, 아 글쎄, 감화씩이나 받는 리타. 그리하여 샘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고, 나아가서....어여쁜 엔딩.
나는 샘보다 가방끈은 길지만, 도대체 부모로서 샘보다 나은 점이 있기는 한가...하는 반성, 그리고 눈앞에 아롱거리는, '다이아몬드를 가진 하늘의 루시' 역을 맡은 다코타 패닝의 깜찍한 얼굴. '어, 마돈나 남편이네...?'하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언제부터인가 명실상부한 명배우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전혀 부족함 없는 션 펜의 연기. 아, 그리고 영화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는 비틀즈의 노래들.
그러나 통속적인 스토리에도 급수는 있는 법. 솔직히 말해서 <아이 엠 샘>은 빈틈없는 구성과 인물 설정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샘과 그의 상대역인 리타 해리슨을 션 펜과 미셸 파이퍼 아닌 다른 배우들이 그만큼 연기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물론 간간히 (사실은 꽤 여러 번) 인물의 실감을 깨버리는 이상한 대사가 나오는 대목도 있는데, 그건 작가의 잘못이지 배우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일곱 살 어린애인 루시가 하는 행동이며 말은 영 애 같지 않아서 사실 좀 거슬린다. 거 애가 너무 똘똘하고 야무지면 괜히 밉더라...-.-;; <집으로...>의 미운 일곱 살 상우랑 비교해 봐도 실감이 확실히 떨어져서, 통속적인 스토리에 필수적인 감정적 몰입을 방해한다. 이 역시 어리버리한 아버지 샘과 똘똘하고 예쁘고 천사 같은 딸이라는 구도를 내세워야 '동화'같은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계산이 인물의 실감에 대한 고려를 앞질렀기에 나온 결과이다.
샘이 사는 것만 해도 가뜩이나 짠한데, 딸이라도 이뻐야 딸과 같이 살지 못하는 샘이 더 불쌍해지고, 또한 둘이 절대로 헤어지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더 많이 들고 그럴 거 아닌가. 딸도 아버지 닮아서 어리버리하고, 울 아버지는 왜 저러냐 하며 불만에 가득 차 있고, 사사건건 못 돼먹은 '미운 일곱살' 짓만 하고 그러면 첨부터 이건 얘기가 달라지는 거다.
이런 '예쁘고 착한' 구도 자체가 맘에 안 들면 안 보는 게 신상에 이롭다. 사람들 취향이 각각인지라, 영화 재미있다구 했다가 '머냐...?'라고 쪽 먹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쩝.
그러나 그런 저런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볼만하게 해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틀즈의 음악들이다. 물론 <킬링 필드>에서 최근에는 <밀리언 달러 호텔><로얄 테넌바움><물랑루즈>에 이르기까지 비틀즈의 노래들을 영화에 끼워맞춰 놓은 영화들은 꽤 있었지만, <아이 엠 샘>처럼 전적으로 비틀즈에 기대고 있는 영화는 드물다.
그래서 나는 감히 명명한다. <아이 엠 샘>은 비틀즈 트리뷰트 음반 뮤직 비디오다. 저작권 문제로 원곡을 쓰지 못하고 최근 잘 나가는 이런저런 애덜이 비틀즈 노래를 다시 불렀다는데...원곡의 무게에 쫄려서 확 다르게 가지는 못하고 조심조심...되도록 비슷하게 불렀다.
처음에 핏덩어리 어린아이를 안고 병원 문을 나서는 샘의 황당한 표정 위로 스치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그리고 부녀간의 해맑은 미소 위로 흐르는 "Two of Us", 먼 발치에서 루시를 보고 쓸쓸히 돌아서는 샘의 마음 같은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그리고 아빠를 그리워하는 소녀의 머리 위로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분홍빛 종이새와 함께 살풋 내려앉는 "Blackbird"의 선율, 엔딩과 함께 흐르는 "Mother Nature's Son" 등등..
대사 가운데 불쑥 불쑥 끼어드는 비틀즈의 노래 가사들이나, 유독 비틀즈에 집착을 보이는 샘이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하지 못하고 노래를 빌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다. 도대체 당신같이 모자란 사람이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다그치는 법정에서 당황한 샘이, "Michelle"이라는 노래를 갑자기 들먹이면서 폴 맥카트니가 초반부를 작곡하고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자, 존 레논이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하는 대목을 집어 넣었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더듬거리면서 하는 장면은, 어찌 보면 유치하지만 또한 머릿 속으로 "Michelle"의 바로 그 대목을 상상해보노라면 묘하게도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그야말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듯한 비틀즈의 존재감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워낙 사람이 목석이기도 하고, 또한 '감동 좀 받아라, 응?'하고 들이미는 영화에는 지레 경계심도 가지고 있는 터라, 부녀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면서 가슴 뭉클해지거나 콧물을 닦아내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음악과 주연 배우들의 괜찮은 연기로 졸지 않고 보게 되었던 영화다. 이게 서울서 박스 오피스 1위라는 소식을 듣고, 요즘 영화 볼 게 별로 없구나....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션 펜이나 미셸 파이퍼의 팬이라거나, 마르고 닳도록 들은 비틀즈 음반과 다큐멘터리 등등에 지겨워진 비틀매니아들은 한 번 보심도 괜찮을 듯하다.
첫댓글 난 먹물이 안 들어서인지 예쁜 영화 좋아합니다.^^비틀즈 노래 들으러 영화 보러 가야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