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는 흔히 표의문자라고 하는데, 글자 자체에 훈(訓)과 음(音)을 다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의 경전인 ‘사서(四書)’등 동양 고전을 공부를 하다보면, 한문으로 된 문헌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에도 한문 공부를 처음 하던 무렵에는 문헌에 있는 문장을 해석하는데 전전긍긍했지만, 공부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문장에 담긴 의미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던 것 같다. 저자 역시 고전 연구를 하면서 한자의 음과 훈을 통해 사고하는 습관이 저절로 얻어지고, 이를 통해 한자를 통해 그 의미를 천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한자로 읽는 인간학’이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하게 되었으며, 이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는 모두 60개의 한자를 4개의 주제로 나누어, ‘인간의 도리’와 ‘인간됨’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책의 내용은 지극히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간됨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책의 방향을 미리 제시하고 있다. 제1부는 13개의 한자를 통해, 교만함이 결국 자신을 망치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제2부는 14개의 한자의 의미를 풀어내면서, 이기적인 삶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제3부는 모두 19개의 한자를 표제어로 삼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성찰적인 삶의 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제4부는 14개의 한자와 함께,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수치심을 모르는 교만한 사람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제 1부에서는 ‘부끄러울 치(恥)’로부터 시작해서, ‘예(禮)’자에 이르기까지 13자의 한자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한자의 형성 원리 중에서 뜻과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들을 결합시켜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형성문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따라서 해당 글자의 형성 원리를 이해한다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를 이러한 한자의 원리를 원용하여, 표제어의 자의를 먼저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부끄러울 치(恥)’자에 대한 자의를 풀이한 부분을 보기로 하자.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 부끄러우면 대개 얼굴이 붉어지는데, 얼굴 중에서도 특히 귀가 붉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 이(耳)’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는 ‘부끄러울 치(恥)’ 자는 이렇듯 부끄러움을 느낄 때 사람의 심리 상태가 얼굴에 나타나는 현상을 취해 만들어진 한자입니다.”
이밖에도 표제어로 제시된 모든 한자들에 대해서 이러한 방식으로 글즈의 형성 원리와 자의를 설명하고 있다. 한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설명 방식이 적지 않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자의의 설명과 함께, 다양한 전거를 통해 표제어의 주제에 맞는 고사나 <논어> 등 유가의 경전 내용들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표제어는 다만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소재의 역할을 할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의와 전거를 통해 논의를 전개하고, 각 항목의 말미에서는 표제어를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한자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도 저자의 설명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해당 글자와 함께 전거가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쉽게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매 항목의 말미에 제시된 주제들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면서, 저자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고자 한다는 다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상 표의문자인 한자는 같은 글자라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향은 매우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자의 뜻을 통해 어떠한 내용으로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통해 결국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60개의 한자를 4개의 주제로 나누어 글을 쓰겠다는 것에서 이미 저자의 의도가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배려심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제2부에서는 14개의 한자를 통해,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인정머리 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1부에서는 다소 신선하게 느껴졌던 서술 방식이, 2부에서도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도덕적인 내용과 교훈 위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표제어인 한자만 보아도 그 글의 방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책의 제목을 <인간도리>라고 정해서, 개인적으로는 끝내 그러한 방식을 탈피하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고 생각된다. 또한 2부에서 제시된 ‘미워할 오(惡)’자는 ‘악할 악(惡)’자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미워하다’라는 주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다수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거를 인용하는 부분에서도 간혹 조선시대의 자료나 인물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대부분 중국의 역사적 인물이나 고사를 위주로 인용하고 있다는 점도 도드라지게 보였다고 생각된다.
이상으로 1부와 2부의 내용은 타인들을 향한 경계를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면, ‘고단한 삶 앞에 흔들리는 나 자신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제3부는 저자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읽혀졌다. 그래서인지 모두 19개의 표제어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지극히 교훈적이고 당위적인 내용들을 통해서 스스로 삶의 자세를 다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위적인 내용은 어쩌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그것을 실천하며 살기는 정말 쉽지 않다고 하겠다. 특히 3부에서는 표제어와 함께 그와 대비되는 글자(예컨대 성쇠(盛衰)처럼)를 제시하면서 글을 풀어나가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 여겨졌다. 아마도 상대되는 두 가지 글자(혹은 개념)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대해서 자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여겨졌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에, 결국 4부의 제목처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1~2부에서는 타인에 대한 경계를 제시하고, 3부에서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내용 다음에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 논하는 4부의 구성은 매우 짜임새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공동체의 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좀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4부에서는 14자의 표제어를 통해서, 이러한 주제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자를 공부하다 보면 특히 그 음과 훈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통해 다른 이야기로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표제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된 각종 전거들이 나에게는 익숙한 내용들이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리라고 여겨진다. 인문학의 본질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과 삶의 문제를 헤아리는 것에 있다고 할 때,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삶의 문제로 연결시킬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옥의 티’이기는 하지만, ‘구용지(口容止)’를 ‘구용지(九容止)’(189면)로 표기하는가 하면 ‘오상(五常)’을 ‘오상(伍常)’(214면)으로 표기하는 등의 오자가 눈에 띄기도 했다. 한자와 관련된 책에서 한자의 오자가 발견되었다는 점은 편집을 할 때 더욱 신경을 써야할 점이라고 여겨진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