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지만,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자연의 매개체로 동심은 행복했다. 겨울 마다 내리는 풍성한 눈과 처마 끝 고드름, 기우뚱 걸린 겨울 해의 넉넉한 미소가 온 누리를 데울 때쯤 마루 에 걸터앉아 추녀 끝 낙숫물따라 상상의 나래로 몽롱했던 한낮의 정취, 어디 그뿐이었을까. 앞마당 장독대 옆 골담초 가지가 시린 계절을 감내하며 새봄을 꿈꾸듯, 미세 먼지란 이름조차 생경했던 깊은 겨울의 맑고 투명한 쪽빛 하늘처럼 고왔던 유년의 순수성, 이 모두가 내 어린 시절 겨울을 상징하는 그림이련만, 내 손 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적 풍경이 되어버렸으니. 문명의 이기에 밀려난 시대적 정서는 오로지 기억 속에 잔존하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거 같은 추억일 뿐인데. 문명의 발달에도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자연에 머무는 시선은 신비감과 경이감, 그리고 외경심으로 그 느 낌의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 길섶의 풀 한 포기, 공중을 선회하는 새 한 마리조차도 야생 세계는 명확하 지 않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간주해왔음도 사실이다.인간의 지능과 노력으로 구축된 탄 탄한 최첨단의 과학이란 실체조차 인간의 삶을 벗어난 생물체의 이면은 베일에 싸인 외형보다 훨씬 더 복 잡한 생태계를 구성함에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았음에도 정작, 자연생태계가 인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의 정확한 분석은 이미 구시대적 이야기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환경요건의 중요성을 깊이 수긍하는 우 려보다 언제나 인간의 욕망이 우선함이란 것이다. 먹이사슬 최정점을 고수하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유발된 수많은 난제가 생활 깊숙이 녹아 있는 현상을 모를 리 없는 현대인의 삶이지만 그 어떤 규칙적인 노력으로도 산업화 이전의 땅덩어리로 환원하게 한다는 것은 감불생의, 인간이 원시로 되돌아가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이산화탄소 증가에 의한 온실효과가 지구온난 화의 부작용을 부추기고, 산업화의 부산물로 부유하는 대기 오염은 지구촌 곳곳에 기상이변을 촉진케 하여 급기야 재앙을 초래하는 환경적 변화가 지구촌 어디인들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그린란드의 빙산이 쉼 없이 녹아내리고 북극곰들의 생태계가 위협 받는 일련의 모든 이변이 분명 자연생태계에만 국한 된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