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아내 열전(백승종)
백승종, <<조선, 아내 열전>>, 시대의창, 2022.
억센 아내가 좋기야 하지. 그래도 그 횡포에서 연약한 남편을 보호해야 한다 - 실학자 성호 이익이 꺼낸 뜻밖의 주장
조선은 가부장적 성리학 사회였으므로, 모든 아내는 남편과 시부모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허리를 굽히고 살았다고 짐작할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실학자 성호 이익이 전하는 18세기의 사회상은 달랐다. 그때도 안하무인 격인 아내가 적지 않았단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남쪽 지방에 사는 어느 양반의 아내는 성질이 악독하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하루는 어디론가 달아나고 자취를 알 수 없었다. 관청에서는 그 여성이 피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남편을 심하게 고문하였으나 사실관계를 알 수 없어서, 일단 미제의 사망사건으로 일단락하였다. 얼마 후 남편은 다시 명문가의 규수와 재혼하였다. 그런데 그제야 달아났던 아내가 다시 나타났다.
여기서 이익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럴 때 과연 남성의 재혼은 합법적인가, 달아났던 여성과는 이혼한 것으로 봐야 하는가?
아무 죄도 없이 여성이 쫓겨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큰 잘못이 있어도 강제로 이혼할 수 없다면 폐단이 많다는 점을 왜, 무시하는가? 이익은 조선에도 이혼에 관한 합리적인 법률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악처에게 시달리는 남성에게 이혼을 허락하라는 주장을 폈다.
“지금 풍속은 악독한 아내 앞에서 숨을 죽이고 눈을 감는다. 그리하여 황하의 동쪽 기슭에서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사나운 아내가 남편에게 큰 소리로 욕하는 일이 많다.”(이익, <이혼(離昏)>, <<성호사설>>, 제15권)
‘아내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말 흥미로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조선 후기에도 거친 아내에게 억눌려 지내는 남편이 그렇게 많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실학자 이익이 여성을 악마처럼 여긴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는 집안 살림이 잘되려면 아내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익은 자신이 관찰한바, 조선 사회에서는 가정의 주도권이 아내의 수중에 있다고 하였다.
“오늘날 가정을 살펴보건대 그 권세가 모두 안방에 있어, 남편이 강하고 아내가 부드러워 안팎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가정은 열에 한둘도 없다. 그런데 아내가 억세면 남편이 유약하더라도 오히려 가문을 보존할 수 있다.”
심지어 고려의 여성은 발언권이 더욱 강해 조정에서 추진하던 축첩제까지 좌절시킬 정도였다면서, 이익은 고려 시대의 사료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고려사>>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로, 충렬왕 때 국가 재정을 관장하던 박유라는 대신이 중국의 예를 인용하면서 일부다처제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평민까지도 한 명의 아내와 한 명의 첩을 두도록 하되 서자라도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고 본인의 능력대로 벼슬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박유가 제안한 일부다처제는 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주된 목적을 두었다. 그런데 당시의 재상 가운데 아내의 반대를 두려워하는 이가 있어서 이 제도가 도입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익이 판단하기로, 고려 때만큼은 아니라 해도 조선 시대에도 가정의 지배 권력은 아내의 수중에 있었다. 이익은 그러한 상태를 못마땅하게 보았으나,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다행한 점이 있다고 했다. 억센 아내는 생활력도 강해서 식구를 굶기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집안을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이 말이 과연 사회현실에 정확히 부합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대 한국 사회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출처: 백승종, <<조선, 아내 열전>>, 시대의창, 2022.
사족: 우리는 모든 사회 현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위를 누렸고, 그래서 여성은 숨도 못 쉬고 살았다는 식의 주장은 흔히 듣는 말입니다. 그런 집안도 물론 많았을 테죠. 그런데 조선의 내부자인 성호 이익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대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엄처시하에서 고생하는 남편이 대다수였다고 증언합니다. 정말 그말 그대로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여성이 당당한 아내로서, 당당한 어머니로서 집안의 독재자처럼 군림하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첫댓글 집안의 독재자 여성, 왠지 능력있고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