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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쌀쌀함과 따뜻한 쓸쓸함’에 대하여
강병철(소설가)
이젠 단단해졌다고
혼자서도 설 수 있다고 다짐하는데
아직 엄마가 없는 세상은
두렵기만 해
하얀 찔레꽃 만발하면
엄마 보러 갈게
- 「원망과 그리움 사이」 전문 -
전라북도 부안과 변산의 중간 어디쯤, 저 멀리 호숫가 끄트머리 외딴 초가집이 배경일 것 같다. 수평선 너머 지워진 불빛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 소년 혼자 검은 천에 폭삭 덮일 때까지 지켜보던 고즈넉한 자리이다. 그 60년대, 운명적 상흔을 외롭게 달래며 훗날의 자양분 삼으려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모자(母子) 둘만 달랑 정겹게 살아가던 그 움막이 공간이다.
벌겋게 달아오르던 저녁놀의 잔흔일까, 별들이 우수수 쏟아져 움막 지붕을 덮으면서 강산이 몇 차례 바뀐 지금까지 설움의 촉수에 시달리는 건 구천으로 옮기신 모친 때문이다. 무엇이 이 건장한 사내에게 ‘엄마가 없는 세상은 두렵기만 해’라는 쓸쓸한 문장을 생산하게 만들었을까. 그리움의 본질은 무엇이고 등허리 기대고 싶던 실체는 제발 무엇이기에 이 초로의 사내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원래 그랬다. 『걷는 시인 김우식』이란 지난 시집 제호처럼 종교 같은 어머니를 심장에 담으면서 스치는 일상을 접맥시키곤 하는 문장이다. 늘상 낮은 자리만 찾는 습(習)이 체화된 몸피도 그 유년의 연장이었으니.
월평사거리, 후미진 비닐 포장 안
코뚜레처럼 등이 굽은 할머니
봄 햇살 콕콕 쪼아 먹으며
드러난 잇몸으로 환히 웃고 앉아
갓 캔 옷순과 방풍나물을 팔고 있다
- 「떨어지는 혹은 아름다운」 -
고가도로 차창으로 재빨리 스치는 오솔길을 놓친다면 좋은 시를 쓸 수 없는 이유이다, 언덕 저편 후미진 자리에서 노랗고 빨갛게 터지는 들꽃 사태 그 아래 뿌리털로 달라붙는 무수한 입자를 잡아내는 ‘시인의 눈’이 필수 조건이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이 아니라 논두렁 옆에서 지켜보는 ‘옹달샘 눈동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첨단 AI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그 심장박동이 더욱 짙고 적확하고 그렁그렁해야 한다. 김우식 시인 만이 풀어낼 수 있는 과제가 어렴풋이 보여서 조급할 수 있으나 더 섬세하고 절절하게.
그래서 그가 거니는 갑천이나 월평동, 중리시장 뒷골목까지 모든 배경들을 가슴에 품는 것이다. 사월의 시장통 후미진 골목길의 홍매화 등불도 당연히 놓칠 수 없다. 방풍나물 파는 할머니의 잇몸 틈새로 봄 햇살도 심어주면서 ‘흔들리는 것이 어디 눈빛뿐이야’라는 문장을 잉태시킨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사람살이의 일체가 길’이라고 말했던가. 기실 그의 체화된 감성은 오랜 퇴적으로 두터운 겹을 이루었으니 지난 시집에 상재했던 이별과 만남도 그 연장이고.
헤어진다는 것은
또 다른 버리지 않을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
봄비 한 차례
바람 한 점 막을 수 없는 만년교 밑으로
나를 떠나고 내가 떠나보낸 사람들이
하나둘씩 흘러나온다
- 「걷는 시인 김우식(제 3시집에서)」 - 부분
그는 걷는다. 강진, 변산, 금산이나 동박새 우는 가우도, 유달산 아래 목포항 아니면 계족산 진입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갈대의 흔들림을 타고 걷고 메마른 찻잎에 머물던 안개에 싸여 걷는다. 그러던 입춘 어느 날 수목원에서 지난날의 상처를 소환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기억될 따뜻한 눈물이었을까’ 회한에 잠기니 때로는 그 고독이 ‘곧 다가올 새봄의 힘’이 되기도 한다.
사이, 그것은 품을 수 있다는 말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의 온기를 담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있지
- 「스웨터 같은」 부분 -
공간을 꽉 채운 사람 냄새로 칼바람을 막아내니 그게 ‘틈새의 여유’이다. 헐렁해진 사이로 마파람 침입하기 전에 재빨리 따뜻한 공간을 확보해내는 것이다. 그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의 미나리 다듬는 소리에 빠지고 수천 권 책을 쌓은 듯한 채석강 절벽 너머 붉은 낙조도 배치하면서 아주 잠깐 안도감도 찾는다. 그 여유가 지난한 사연 이후 체득된 낙천적 성정의 자산이다. 들뢰즈식으로 ‘몸으로 다가오는 존재론적 감각으로써 과거의 현재의 깊이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물론 안다, 깊이 알고 있다
대전 아줌마의 삶의 강물이
아무리 태연하게 흐르는 듯 보여도
검푸른 어둠이 찬바람 속에 스며들 때
홀로 좌판을 지키는 일은
참으로 눈물겨운 싸움이라는 것을
- 「중리시장 엘리지」
‘대전 아줌마네 집’ 간판 밑바닥으로 겨울 묘목이 쌓여있다. 문틈 주방에 선 그미 표정에서 외숙모의 애잔한 웃음을 오버랩시키면서 파랑새 한 마리 날리기도 한다. 달빛으로 물새의 깃털이 스미면서 정겨운 협주곡으로 어우러지니 시인의 행보마다 오케스트라 공연장이 된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밤마저 이불처럼 포근하니 이게 김우식표 문장의 힘이다. 독특한 감각과 사유 언어로 사물의 존재 방식을 ‘시인만의 리얼함’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후배 김석영 수필가는 그의 문장을 ‘변화와 생성의 원리에 근거한 길의 철학이자 걷기의 존재론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는 시인에 대한 평가이자 급변하는 지구촌 시대 문학인들이 자리 잡아야 할 정신적 지표이기도 하다.
천변 가득 붉은토끼풀들의
싱그러운 정사(情事)
생명력 넘치는 왁자지껄 유월의 신음소리에
갑천은 지금 풍요로운 임신 중이다
- 「유월애(六月愛)」 부분 -
옥잠화 논두렁에 왜가리 하나가 등장하니 그의 성정이 뭐 하나 놓칠 리 없다. 그렇게 늦봄의 생명으로 새들이 둥지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다. 절벽이나 습지에서 꽃을 만나고 사자에게 목을 물려 피 흘리는 발밑에서도 움트는 새순을 놓치지 않고 기어이 집안까지 껴안고 간다. 모가지 기다란 백로의 고독으로 왜가리까지 동반자가 되니, 그게 사유요 철학이다.
아직 그 분홍빛 사랑이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구나
나는 누군가에게 기억될
따뜻한 눈물방울이었을까
- 「입춘날」 부분 -
‘이렇게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다행이지’
사내의 어깨 너머 좌판 누이들의 장탄식 앞에서 시인 혼자 전신주처럼 요지부동 서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길 건너 환경미화원의 빗자루로 포동한 아침을 열면서 언 땅으로 덮이기 전에 묻을 것들을 찾아낸다. 더러는 대전역 쪽방촌 철거장에서 봉사를 마치고 순대에 소주 한 잔을 돌리는 연민의 여유도 보인다. 정갈한 침묵을 씻어내는 손길이고 싶어 요지부동 가지 사이로 무거운 짐을 비운 후 겨울 햇살도 품게 되리라.
그런데 도깨비밥풀처럼 겨드랑이에서 떠나지 않는 게 있으니 바로 십수 년 전 ‘천상의 소풍’을 떠난 어머니이다. 강산이 한 바퀴 변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변치 않는 망자에의 사모곡이 그것이다. 시인은 이성적 분별로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물의 존재 방식을 감각적 충실성으로 보완하고 재현한다. 그의 글벗 황인철 시인이 ‘서른여섯 백합처럼 흰 얼굴로 기억되던 엄니가 살구꽃 지던 봄날 먼 나들이 떠나셨다’고 술회했으나, 기실 그보다 훨씬 진하고 애절하니.
바쁘게 시작해야 할 하루의 무게가
당신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진다
아직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을 것만 같아
투명한 유리 위를 망설여 쓰다듬어봅니다
- 「사진」 부분 -
출근길 넥타이 매다가 또 눈이 꽂혔다. 사진 속 서른여섯 젊은 엄니의 ‘밥은 먹고 다니냐’ 소리에 몸이 쟁쟁 정지된 것이다. 그랬다. 그미는 생전에도 망자가 되는 날까지 한지붕을 덮었고 떠난 후에도 영원히 함께 가는 중이다. 그렇게 구천에 계신 모친의 기(氣)를 받아 하루의 자양분으로 시베리아 거친 바람도 헤쳐 나갔다는 풍모이고.
2011년도 ‘대전작가회의’의 『작가 마당』 19집 출판기념회에서 그해 신간을 출간한 작가들의 축하 자리였으니 15년 전이다. 필자도 무대 아래 객석 후미에서 그들의 표정을 의례적으로 응시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주례사 비평과 꽃다발이 오가던 몇 번째인가 웬 중년의 시인 하나가 마이크를 잡을 때까지 기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 후리늘씬 사내가 ‘첫 시집 『이팝나무 아래 서다』를 어머니 무덤에 바치겠다’며 소회를 밝히다가 돌연 눈물을 펑펑 흘리니 돌발 사태이다. 이미 몇 차례 안면을 트면서 조금은 편안해지던 즈음에 ‘엥?’ 하는 어리둥절 표정으로 집중되었던 그 젠틀한 사내가 바로 김우식 시인이다.
그는 키가 크고 호방한 만능 운동가이다. 건장한 체격으로 축구나 배구, 농구, 심지어 신경 세포의 차원이 다른 당구까지 섭렵했으니 지상의 모든 둥근 공만 잡으면 펄펄 날아다닌다. 수영과 걷기는 물론 케이지에서 벌이는 격투기에다가 반상의 바둑까지 섭렵했으니 조물주의 불공평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수십 성상을 보내면서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강의하던 즈음이다. 김희정 시인 등을 만나면서 2005년 ‘대전작가회의’에 가입하면서 필자와 몇 차례 술잔도 돌리면서 ‘헹님’ ‘아우님’으로 소통도 했던 것 같다. 그 후 『아침 숲에 들다』와 『걷는 시인 김우식』을 발간하면서 ‘한성기 문학상’을 수상한 후 이 『시월의 정오』가 네 번째 출산품이니 늦깎이 문단 이력으로는 그런대로 탄탄한 도정인 셈이다.
그러나 그건 현재 거울에 비친 모습이고 그의 ‘사고무친 무녀독남’ 유년의 설움이 시문의 근원이 된다. 어느 날 찾아온 예전의 지아비와의 하룻밤으로 세상에 태어났으니 달랑 ‘모자(母子) 집안’의 운명이 그것이다. 외삼촌들의 십시일반으로 지어준 초가집 한 채에 몸을 담고 신새벽부터 저물녘까지 혼자 몸의 노동으로 아들을 키웠단다. 그래서일까, 시인과 단독으로 처음 술자리를 가졌던 그 겨울날 엄니의 사연으로 나를 당혹시키기도 했다.
품팔이 귀갓길에 풀빵 봉지 풀어낼 때마다 기뻐서 팔짝팔짝 뛰는 외동아들을 즐거움으로 삼던 천사표 모친이다. 그렇게 허기 채우며 몸피 키우다가 딱 한 차례 봉다리를 깜빡 놓치고 왔더니.
“풀빵 안 가져왔대유?”
볼멘소리에 서러움이 북받쳐 모친 혼자 부엌에서 흐느끼셨으니 천상 ‘한국의 여인’이다. 공납금 못 내 집으로 쫓겨왔다가 자전거 타고 가정방문 하는 담임 선생님과 몇 차례 상담으로 모면하던 질곡의 유년이 있었으니.
감꽃은 피고 소쩍새는 울어대건만
4월, 먼 길 떠나신 엄니는 언제 오시나요
감꽃 주우며 함께 부르던 노래
아직 다 부르지 못했는데요
감꽃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도 함께 흔들립니다
- 「안부」 부분-
그해 4월, 앰뷸런스에 실려 간 후 돌아오지 못하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아파트 이삿짐을 옮긴다. 문득 긴 세월 함께 여몄던 짐보따리를 풀지 못하는 실상이 대못이 되어 아프게 후비다가 휠체어 상태로 세례받으시던 모습에서 예수님과의 겸상을 겹쳐 떠올린다. ‘더 이상 문장을 만들 수 없다’ 설레설레 도리질 치며 알을 깨는 각오로 문장을 다져야 할 참이고.
기실 국민학교 때까지는 체격이 크지 않았고 공부만 잘하는 예쁘장한 소년이었단다. 동네 벗들보다 민첩하거나 약삭빠르지도 못했으며 힘도 세지 않았으니 카리스마도 강한 편이 아니었다. 동산에서 나무를 더 많이 긁은 벗들이 소년의 빈약한 구럭을 채워주기도 했다. 딱 하나 공부를 잘했다. 벗들은 참고서 끼고 과외받을 때 헌책과 몽당연필로 글자 수를 맞추었는데 시험 때마다 1등이었으니 특이한 사태이다. 성적표 받으며 함박꽃 웃음 짓는 어머니의 기쁜 표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파고 들었고.
중학교 졸업반 소년이 호서지역의 명문 전주고에 합격은 했으나 돈이 없어 포기했으니 첫 번째 난관이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설립된 경북 구미의 금오공고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입학을 준비한다.
그 학교 입문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중학교당 딱 한 명씩 한정시켰는데 등록금과 숙식 제공까지 혜택의 소문이 퍼지면서 지원자가 넘치는 게 문제이다. 그런데 1등 졸업으로 선택권이 있는 그에게 와야 할 추천장이 다른 학생에게 넘어간다는 소문을 들은 모친에 화들짝 놀란 모친이 학교에 찾아가.
“그건 우리 아들 우식이 거유!”
강하게 항의해서 고등학교를 뚫으니 첫 관문의 돌파이다. 그 학교 신입생이 되면서 전북 부안에서 대구로 넘어가던 두 모자는 기차라는 걸 보았다 한다. 직접 탑승은 아니지만 ‘길으면 기차’와 끝이 안 보이게 뻗은 철로를 처음 구경하는 찰나, 소년은 문득 삶에 대한 신기한 기대를 감지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입학 후 학년당 6개의 호실을 ‘신장 순서’로 배치했는데 큰 편이 아니었던 그가 기숙사에서 밥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으면서 쭉쭉 커서 마침내 키다리들 공간인 1호실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로 편지 한 장이 배달되었는데.
‘아가, 돈 보내니 안 고프게 마음껏 써라. 옴마가.’
분명히 ‘어머니의 필체’로 쓴 소식을 만난 것이다. 한글 미해득이었던 모친께서 유학 간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지면서 글을 직접 배워 마침내 당당하게 안부를 묻는 것이다. 가슴이 벅찬 소년 혼자 옥상에서 펑펑 울었으니.
그래서 배우자를 만났을 때에도 첫 부탁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주세요’였다. 여차저차 얘기를 들은 그의 장인어른께서.
‘5년 동안 도와줄 테니 내 딸을 행복하게 해주게.’
덕분에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니 두 번째 행운이다.
아, 사랑이란 가만히
상대의 고독을 어루만지는 것
내 가난한 슬픔마저 따스히 보듬어 주는
이 깊은 시월의 품 안에서
- 「시월의 편지」 부분 -
그가 사는 갑천의 갈대숲이 고행처럼 곧추선 이유는 작렬하던 여름을 마감한 시월의 여유 탓이다. 작고 소중했던 감성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시인의 가슴을 덮어주니 그게 허허로움을 채워주는 만추의 특장(特長)이다. 장마철 빗방울과 여름 땡볕의 작렬을 견딘 이후의 아주 소소한 휴식 공간에서 희멀건 안개 품에 몸을 푹신 적시고도 싶다. 그런 날은 천변의 순댓집에 목로에 앉아 엄니를 떠올려도 한 줄기 빛처럼 온기로 변신되는데.
지금 시인은 징검다리 건너 물살에 지워진 발자국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하필 갈대의 검은 심장으로 칼바람 몰아치니 굽이굽이 서해로 흐르는 강물의 도정을 놓칠 수 없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수통골 나무들을 보며 ‘나는 언제 저토록 붉게 물들어보았을까’ 하는 회한에 젖는 것이다. 서늘한 감정이입으로 출렁출렁 넘치는 서정성 문장들.
쌀쌀함
피부 위 얇은 파편
바람
스치고 사라진 자리만 남긴다
쓸쓸함은 빈자리를
더듬는 뒤늦은 그림자
손끝
말하려다 흩어지는 의미
온도 조각들
바닥에 흩어져
하루의 모양을 짓는다
나는 그 사이
빠져나온 숨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듯
밤은 천천히 닫혔다
- 「쌀쌀함과 쓸쓸함에 대하여」 전문 -
그가 사는 곳은 대전의 갑천 근방이다. 대전 지하철 ‘반석 → 판암’의 단일노선 중간쯤 그가 사는 정부청사역 3번 출구에서 경찰서 오른쪽 담을 타고 몇 차례 꺾고 건너다가 돼지갈비나 파전집, 노래방 간판 지나 은행 골목 24시간 현금인출기가 보이는 아파트이다. 그 진입로 근방 눈 부시는 시월의 천변 물줄기에서 쪽빛 문장의 행간을 만나니, 이젠 됐다. 인생 후반부에 진입했으니 폭풍우 이력을 내려놓고 걷고 쓰고 마시고 읽으면 된다. 그래서 ‘쌀쌀함’은 스친 온기 사라진 얇은 피부가 되고 ‘쓸쓸함’은 빈자리 더듬는 뒤늦은 그림자가 된다. 오늘도 갑천과 수통골, 월평동이나 변산까지 걷고 또 걸으니, 아리고 시리다.
다시 대전 둘레길에서 묵은 가지와 검푸른 흙빛을 찾아낸다. 태양이 풀어진 끈처럼 흘러내리는 저물녘이다. 그리고 굽은 내리막길에서 생의 무게를 진 노인의 아슬아슬 살얼음판과 결코 멈출 수 없는 발걸음을 소환한다. 그렇게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의 문장이 나무와 돌이 되면서 누군가에게 사무친 눈시울로 변신한다. 헐벗은 유년은 자물쇠에 채우고 마음의 밑바닥 마른 모래알들을 바다로 이동시킨다. 그때마다 쏘가리와 빙어의 비늘 터뜨리는 폭죽에 잡혀 몸을 정지시킨다.
고된 품팔이 노동에 평생을 바치며
단 한 번도 이 시계를
손목에 차시지 않았나 보다
사랑하는 외아들, 짐처럼 느껴졌을
나 때문에 당신은 허기진
좁은 길만 묵묵히 걸어가셨구나
- 「시계」 부분-
그의 서러운 회고담이 부러울 때도 있다. 술에 취해 밥상을 엎는 부친이 없었으므로 저물녘까지 모친만 기다리는 애잔한 서정성에 체화되었리라. 먹거리 때문에 치고받고 싸우는 형제가 없으니 ‘나 홀로 고독’이 더 아늑해지는 심성도 만들어졌다. 비싼 색연필 대신 몽당연필로 준비해도 성적이 오르는 총기도 있다. 어머니의 젖을 만지며 잤다는 그의 소회에서 나도 유년의 기억을 끌어낸다. 김 시인처럼 어머니의 젖을 만진 기억이 없는 것은 줄줄이 태어난 동생들에게 가슴을 양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명이 시인은 ‘그의 시집은 펜더믹에 지친 우리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선물로 다가온다’고 평했다. 영혼의 갈등이 조제한 문장들에 숨어있는 울컥을 퍼올리기 때문이다. 나도 동의한다. AI를 넘어 AGI가 수천 년 이어진 문장의 질서를 흩트리는 격변의 경계점에 직면하면서 더욱 격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의 시는 기계적 정보와 조직으로 조직화시키는 쌀쌀한 문장이 아니라 언 땅을 헤치고 대궁 세우는 쓸쓸한 상사화처럼 체화된 문장이다. 때로는 그 쓸쓸함이 아늑한 온기로 안심시키는 온화한 성정이 되고.
그런데도 시인을 떠올릴 때마다 수수로움이 겹치는 사유는 무엇일까, 종합청사 뒷골목 선술집에서 문득 안경 너머 눈동자 반짝이며.
‘형과 아우가 됩시다. 나는 피붙이 형이 없어요.’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의 지난(至難)한 행보나 우물쭈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인생의 7부 능선을 오르는 그에게 ‘더 느리게 걷기’를 울컥 주문하고 싶어진다. 가다가 쪼그려 앉아 앉은뱅이 노란 민들레 번지는 봄 하늘도 품어보고 뿌리털 깊숙이 숨겨진 자리까지 투영하는 혜안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와 걸친 소주 몇 잔으로 공주행 막차를 타면서 ‘또 하나의 눈’으로 지켜주고 싶은 이유이다. 그의 ‘낙천적 표정과 한이 서린 심장’의 오랜 간극을 허물기를 간곡히 응원한다. 시인 스스로 풀어야 할 깊은 과제가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