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시대 이야기
거대한 솥이었다
천 인분 넘는 밥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속 공고 삼 학년 팔월 십육일
그 뜨겁던 막바지 더위를 안고
나는 철의 시대에 진입했다
원소기호 Fe,
녹는점 1539℃
차가운 고철을 끓여 녹인 쇳물로
긴 사각기둥을 뽑아내는 일이 주된 일과였다
전기로에서 레들로
턴디쉬에서 몰드로 들어가는
쇳물의 유속을 조정하는 일은
삶의 속도를 조율하는 일처럼 어려웠다
쇳물은 밤낮으로 끓었다
주야 맞교대로
하루 열두 시간 일하고
한 달에 팔만 구천 원을 받았다
밤이 문제였다
잠은 오고 쇳물은 살아서 꿈틀거렸다
1620℃가 넘는 그놈을
몰드 속에 붙잡아 두는 일은 잠과의 사투였다
잠은 오고
그놈은 호시탐탐 탈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깜빡 졸았고
아차 한 순간
밖으로 튀어나온 그놈이
그 뜨거운 이빨로 작업복을 물어뜯었다
타오를 겨를도 없이 녹아내리는 살점
안전화 속으로 흘러든 그놈을 빼내려고
미친 듯 다리를 흔들었지만
끈은 풀리지 않고
살 타는 냄새만 바닥에 낭자했다
안전화 끈을
칼로 자르고 보니
꺼낼 발가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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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발표시
철의 시대 이야기 [제 2시집 수록]
젊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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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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