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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5
9.호질(虎叱)
박 지 원
호랑이는 지덕문무(知德文武)를 겸비하였고, 자애롭고 효성이 지극하며, 슬기롭고 어질고 용맹하기로 이름이 높아 하늘 아래 당할 상대가 없다.
그러나 비위(狒胃)1)는 호랑이를 먹고, 죽우(竹牛)2)도 또한 호랑이를 먹으며, 박(駮)3)도 역시 호랑이를 먹고 산다. 또한 오색사자(五色獅子)4)는 큰 나무가 서 있는 산꼭대기에서 호랑이를 먹고, 자백(玆白)5)은 날아다니며 호랑이를 먹고 표견6)도 날아다니며 호랑이와 표범을 먹고, 황요(黃要)7)는 호랑이와 표범의 염통을 꺼내서 먹는다. 활(猾)8)은 뼈가 없으니 호랑이와 표범이 삼켜도 뱃속에서 그 간을 먹는다. 추이(酋耳)9)는 호랑이를 만나기만 하면 갈가리 찢어서 먹는다. 호랑이는 맹용10)을 만나면 눈을 감고 감히 바라보지 못하는데, 사람은 맹용은 두려워하지 않되 호랑이는 두려워한다. 그러니 호랑이의 위엄은 그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호랑이는 개를 먹으면 취(醉)하고11) 사람을 먹으면 신(神)이 된다. 호랑이가 한 번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倀鬼)12)는 굴각(屈閣)이 되어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는다. 굴각은 호랑이를 남의 집 부엌으로 이끌어, 호랑이가 그 집 솥귀를 핥으면 주인이 배고픈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밥을 지으라고 말하게 된다.
호랑이가 또다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이올(彛兀)이 되어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는다. 이올은 높은 곳에 올라가 사냥꾼을 살피며, 만약 골짜기에 함정이나 은밀히 장치된 화살이 있으면 먼저 가서 그 기관을 못쓰게 만든다.
호랑이가 세 번째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육혼(鬻渾)이 되어 호랑이의 멱살에 붙는다. 육혼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친구의 이름들을 자꾸 불러댄다.
호랑이가 창귀에게 말하기를,
“날이 저물려고 하는데 어디 가서 먹을 것을 얻을꼬?”
라고 하니 굴각이 대답하기를,
“제가 미리 점을 쳐 보았는데 뿔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날개를 가진 것도 아닌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놈이 걸릴 것입니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되 비틀비틀 드문드문 걷는 걸음,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 그것을 제대로 감추지도 못하는 그런 놈입니다.”
이올이 말을 받아,
“동문(東門)에 먹을 것이 있으니 그 이름을 의(醫)13)라고 합니다. 입에는 온갖 약초를 물고 있어 살과 고기가 향기롭지요. 서문(西門)에도 먹이가 될 만한 것이 있는데 그 이름은 무(巫)14)라고 합니다. 온갖 귀신에게 아첨하여 날마다 목욕재계(沐浴齋戒)하여 고기가 깨끗하지요. 바라건대, 이 두 가지 중에서 골라 잡수시지요.”
라고 했다. 호랑이가 수염을 곤두세우고 얼굴빛을 엄하게 만들며 말하였다.
“의(醫)라는 것은 의(疑)와 같으니 그도 의심하는 바가 있어 여러 사람을 시험하니, 해마다 남을 죽이는 수가 수만 명이나 되지. 무(巫)라는 것은 무(誣)15)와 같으니 신을 속이고 백성을 현혹하니, 해마다 남을 죽이는 수가 역시 수만 명에 이른다네. 그래서 사람들의 분노가 뼈에 사무쳐 금잠(金簪)16)이 되었으니 그 독(毒)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야.”
육혼이 말하기를,
“숲에 가면 고기가 있는데 어진 간과 의로운 쓸개, 충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순결한 지조를 가졌습니다. 악(樂)을 머리에 이고 예(禮)를 신고 다니며, 입으로는 백가(百家)17)를 읊고 마음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꿰뚫는바, 그 이름을 석덕지유(碩德之儒)18)라고 합니다. 등살이 두둑하고 몸이 기름져서 다섯 가지 맛19)을 함께 갖추었습지요.”
호랑이는 눈썹을 곤두세우고 침을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짐(朕)20)이 더 듣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창귀들이 앞을 다투어 호랑이에게 추천했다.
“일음(一陰)과 일양(一陽)을 도(道)라고 하는데 선비들은 이를 꿰뚫어보지요. 오행(五行)이 서로 생기고 육기(六氣)가 서로 베풀어 주는데 선비들이 이를 인도하니, 먹어서 맛있는 것 중에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호랑이의 초연(愀然)한 듯 얼굴빛이 변하여 즐겁지 않은 듯이 말하였다.
“음양(陰陽)이라 하는 것은 본디 한 기운이 변화하는 것이야. 헌데 이것을 둘로 나누었으니 그 고기가 잡스럽겠지. 또, 오행(五行)은 정해진 자리가 있어서 처음부터 서로 생기는 것이 아니지. 헌데 이제 그들은 자(子)․모(母)로 갈라서 짠맛과 신맛으로 갈랐으니 그 맛이 또한 순수하지 않을 것이야. 또한 육기(六氣)21)는 각각 행하는 것이니, 이는 남이 베풀어 이끄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 법이지. 이제 그들은 망령되이 재(財)와 상(相)22)이라 칭하며 사사로이 제 공(功)인 양 과시하는구나. 그놈을 먹는다면 딱딱하여 체하거나 토할 것이니, 어찌 쉽게 소화시킬 수 있겠느냐?”
한편, 정(鄭)23)의 고을에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체하는 선비가 있었으니, 그를 북곽 선생(北郭先生)24)이라고 했다. 나이 사십에 손수 교정(矯正)한 책이 만 권이요, 구경(九經)25)의 뜻을 보충하여 다시 지은 책이 일만 오천 권에 이르렀으니, 천자(天子)가 그 의로움을 기쁘게 여겼고 제후(諸侯)들은 그 이름을 앙모하였다.
그 고을의 동쪽에는 미색이 있고 일찍이 과부가 된 여인이 살았으니 그 이름을 동리자(東里子)라고 했다. 천자가 그 절개를 기쁘게 여겼고 제후들은 그 현숙함을 사모했다. 그래서 그 고을 몇리 땅을 하사하여 ‘과부 동리자의 땅’이라고 하였으니, 이렇듯 동리자는 수절 잘하는 과부였다. 하지만 아들이 다섯이 있었는데 그 성(姓)이 각각이었다.
다섯 아들이 서로 이르기를,
“강북엔 닭이 울고
강남엔 빛나는 별.
방에서 소곤대는 소리
어찌 이다지도 북곽 선생과 닮았을까?”
라고 하고, 형제 다섯이 번갈아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청하기를,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답니다. 오늘밤에는 선생님의 글 읽으시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다. 북곽 선생이 옷깃을 여미고 단정히 꿇어앉아 시를 읊기를,
“병풍에는 원앙새
반짝반짝 반딧불.
가마솥과 세발솥
무얼 본떠 만들었나.26)
흥얘라!”
라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흥(興)27)이었다. 이를 엿보던 다섯 아들은 서로 말하기를,
“《예기(禮記)》에는 ‘과부집 문 안에는 들어가지도 말라’고 했지. 북곽 선생은 어진 선비시라 그런 짓을 안 할 거야.”
“내가 듣기에 정(鄭) 고을의 성문이 낡아서 여우가 구멍을 팠다고 하더군.”
“내가 듣기로는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사람의 모양으로 변할 수 있다는데, 이놈이 반드시 북곽 선생의 모양으로 변했을 거야.”
하고 서로 함께 모의하기를,
“내가 듣기에 여우의 갓을 얻은 자는 집안이 천석꾼이 되고, 여우의 꼬리를 얻은 자는 남에게 잘 아첨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고 하니, 어찌 이 여우를 죽여 나눠 갖지 않을소냐?”
라고 하였다. 이에 다섯 아들이 함께 포위하고 들이치자 북곽 선생이 깜짝 놀라서 도망치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봐 한쪽 다리를 들어 목덜미에 걸친 채 귀신의 춤을 추고 귀신의 웃음소리를 내며 문 밖으로 나가 달음박질치다가, 들판의 구덩이에 빠졌는데 그 안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허우적거리며 기어올라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니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편 호랑이는 이마를 찡그리고 구역질을 하며, 코를 싸쥐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내뱉기를,
“선비라는 놈들 더럽기도 하구나!”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앞으로 기어나와 세 번 절한 후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어 말하기를,
“호랑이님의 덕이야말로 얼마나 지극하신지!28)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帝王)은 그 걸음걸이를 배우고,29) 아들들은 그 효성을 본받고,30) 장수(將帥)는 그 위세를 본받고,31) 그 이름을 신룡(神龍)과 나란히 하시니, 한 분은 바람을 일으키시고 한 분은 구름을 일으키셨습니다.32) 저 같은 궁벽한 땅의 천한 신민(臣民)은 감히 하풍(下風)33)에만 있을 따름이옵니다.”
호랑이가 꾸짖기를,
“가까이 오지 마라! 구린내 난다! 내 들으니, 유(儒)란 족속은 유(諛)34)하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너는 평소에는 세상의 나쁜 이름은 모두 모아 망령되이 내게 씌웠다. 이제 다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하니 장차 누가 너를 믿겠느냐. 무릇 천하의 이치는 하나 뿐이니 호랑이의 성품이 악하다면 인간의 성품 역시 악한 것이고, 인간의 성품이 착하다면 호랑이의 성품 또한 착한 것이다. 너희들의 천만 가지 말이 모두 오상(五常)35)을 떠나지 않고, 경계(警戒)하고 권면(勸勉)하는 것이 모두 사강(四綱)36)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서울이나 지방의 고을 사이에 코 베이고 발 잘리며 얼굴에 문신을 새긴[文面]37) 채 돌아다니는 자들은 모두 오품(五品)38)을 순종치 못한 자들이로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줄․먹바늘․도끼․톱39) 등이 부족해 날마다 공급하기 바쁘니, 그 악한 짓거리를 멈출 방도가 없구나. 그러나 호랑이에게는 예부터 이와 같은 형구(形具)가 없으니, 이것만 봐도 호랑이의 성품이 어찌 사람보다 어질다 하지 않을손가! 우리 호랑이들은 초목을 먹지 않고, 벌레와 물고기도 먹지 않고, 국얼(麴蘖)40) 같은 퇴폐스럽고 어지러운 것들도 즐기지 않고, 자잘한 것들을 엎드려 먹는 것도 참지 못하지. 오직 산에 들어가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고 들에 나가 말이며 소를 잡아먹을 뿐이고, 일찍이 입이나 배에 누를 입히거나 음식 때문에 송사(訟事)를 한 적이 없으니, 호랑이의 도(道)야말로 광명정대(光明正大)하지 않느냐! 헌데 호랑이가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으면 너희들은 호랑이를 미워하지 않다가도 말이나 소를 잡아먹으면 원수처럼 대하니, 이것은 노루나 사슴은 인간에게 은혜가 없지만 말이나 소는 너희들에게 공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냐! 그런데도 그 태워주고 복종하는 노력과 충성하고 따르는 정성을 저버리고, 매일 도살하여 푸줏간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뿔이나 갈기마저도 남기지 않더구나. 그러고도 다시 우리 먹이인 노루와 사슴까지 침범해서 우리들을 산에서 먹을 것이 없게 하고 들에서도 굶주리게 하니, 하늘로 하여금 그 정사(政事)를 공평하게 한다면 너를 먹어야 하겠느냐, 풀어 주어야 하겠느냐? 무릇 제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생명을 잔인하게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너희들은 밤낮으로 허둥지둥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노략질하고 훔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돈을 형(兄)이라 부르기도 하고41) 장수(將帥)가 되기 위해 자신의 처를 죽이기도 하니,42) 이러고도 또다시 인륜의 도리를 논함은 말도 안 된다. 또한 메뚜기로부터 그 밥을 빼앗고, 누에로부터 그 옷을 빼앗고, 벌을 가두어 그 꿀을 긁어내고 심지어는 개미알로 젓갈을 담가서 제 조상에 제사지낸다고 하니, 그 잔인하고 박정함이 너희보다 더한 것이 있겠느냐? 너희는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한다. 툭하면 하늘을 일컫지만 하늘이 명한 바로써 본다면, 호랑이나 사람이 다 한가지 동물이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아 기르는 인(仁)으로 논하자면, 호랑이․메뚜기․누에․벌․개미들도 사람과 더불어 함께 길러지는 것으로 서로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그 선악으로 따지자면, 공공연히 벌과 개미의 집을 범하고 그 꿀과 알들을 긁어 가는 족속이야말로 어찌 천지간의 큰 도(盜)라고 하지 않겠느냐. 또한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빼앗고 훔쳐가는 족속이야말로 어찌 인의(仁義)의 큰 적(賊)이라고 하지 않겠느냐. 호랑이는 일찍이 표범을 잡아먹은 적이 없다. 이는 제 동포를 해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호랑이가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는 않다. 또한 호랑이가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서로 간에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관중(關中)43)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백성들 사이에 서로를 잡아 먹은 것이 수만이요, 그에 앞서 산동(山東)44)에 큰 홍수가 났을 때에도 백성끼리 서로 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하지만 백성끼리 서로 잡아먹는 일이 많기로서니 어찌 춘추시대만 할까. 춘추시대에는 덕(德)을 세우겠다며 군사를 일으킨 것이 열일곱 차례나 되었으니, 피는 천 리를 흐르고 엎어진 시체는 백만에 달했다. 그러나 호랑이의 족속들은 홍수와 가뭄을 알지 못하니 하늘을 원망할 까닭이 없고, 원한과 은혜를 모두 잊고 지내니 다른 동물에게 미움을 받을 까닭이 없고, 오직 천명(天命)을 알고 거기에 순종할 뿐이다. 그러므로 무당이나 의원의 간교함에 유혹되지 않는다. 또한 타고난 바탕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까닭으로 세속의 이해(利害)에도 병들지 않는다. 이것이 곧 호랑이의 슬기롭고도 성스러운 점이다. 가죽의 아름다운 문양(文樣)을 보면 그 문(文)을 천하에 과시할 수 있고, 짤막한 병기(兵器)도 없이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만 사용하니 그 무(武)를 천하에 빛낼 수 있으며, 이유(彛卣)45)와 유준(蜼尊)46)에 새겨진 호랑이를 보면 그 효를 천하에 떨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루에 한 번 사냥해서 까마귀, 솔개, 청머구리, 말개미 등과 나누어 먹으니, 그 인(仁)은 이루 다 쓸 수 없는 것이요, 고자질쟁이를 먹지 않고, 47)불구를 먹지 않으며, 상(喪)을 당한 자도 먹지 않으니,48) 그 의(義)도 이루 다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먹는 것을 보면 그 얼마나 어질지 못한가! 덫과 함정으로도 부족하여 새 그물․노루 그물․작은 물고기 그물․큰 물고기 그물․수레 그물․삼태 그물 등을 만들었으니, 최초에 그물을 만든 자야말로 천하에 가장 큰 화를 끼쳤도다. 게다가 바늘이니 쥘 창․날 없는 창․도끼․세모난 창․한 길 여덟자 창․뾰족한 창․작은 칼․긴 창 등이 생기고, 포(礮)49)란 물건이 있어 터뜨리면 그 소리가 화악(華嶽)50)을 무너뜨릴 듯하고 불기운은 음양을 내뿜어 우레보다 더 광포하다. 그것도 부족하여 그 잔학함을 더욱 왕성히 하고자 보드라운 털을 입으로 빨아 다듬어서 아교풀을 발라 끝이 뾰족하게 만들었다. 그 모양은 대추씨 같고 그 길이는 한 치도 채 못되는데, 오징어 거품에 담가 종횡으로 치고 베더구나. 휘어짐은 창 같고, 날카로움은 칼 같고, 예리함은 검 같고, 갈라짐은 극(戟) 같고, 곧음은 화살 같고, 팽팽함은 활시위 같다. 이 병기가 한 번 움직이면 온갖 귀신이 밤중에 곡할 지경이다.51) 서로 잡아먹는 가혹함이 너희보다 더한 자 누가 있겠느냐?”
북곽 선생이 자리에서 떠나 엎드린 채 머뭇거리다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말하기를,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비록 악인이라도 목욕재계하면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52) 궁벽한 땅의 천한 신민은 감히 하풍(下風)53)에만 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하고 숨을 죽인 채 호랑이의 말을 기다렸다.
오랫동안 아무 명령도 없기에 황공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손을 맞잡고 머리를 조아리다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동방이 밝아오는데 호랑이는 이미 가고 없었다.
농부 한 명이 아침에 밭을 갈려고 나오다가,
“선생님, 무슨 일로 아침 일찍 들판에다 절을 합니까?”
하고 물었다. 북곽 선생은,
“내가 들으니 ‘비록 하늘이 높다고 하나 감히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비록 두텁다고 하나 감히 어그러지지 않을 수 없다’54)고 하더군.”
라고 하였다. ―열하일기․관내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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