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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실록에서 마주친 기록을 중심으로, 유정기와 신태영 부부의 이혼 소송에 대한 전말을 소개하고 있다. 가부장제가 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던 18세기 초반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의 사회적 처지와 강고한 남성중심적 체제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법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부인인 신태영을 집안에서 내쫓고, 그로부터 14년 후에 조정에 이혼을 청구한 유정기의 사연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이혼에 관한 조항이 없기에 조정에서는 이를 물리쳤으나. 유정기의 친구인 임방이 사헌부 장령의 신분으로 다시 유정기의 이혼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임방은 그들에 관한 조사도 필요 없으며, 부인의 행실이 문제가 되었기에 이혼이 무조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를 둘러싼 조정에서의 지리한 공방 속에 결국 당사자들을 신문한 끝에, 부인의 예법에 어긋난 행동 뒤에는 남편이 비를 첩으로 삼아 발단이 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를 근거로 두 사람 모두 유배형에 처해지게 되었지만, 남편인 유정기의 사후에 다시 이여라는 인물이 유정기의 이혼을 청하면서 조정에서 재론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이전과 같이 이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과정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남편 유정기와 그 주변 인물들의 ‘찌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가문까지 나서 다수의 남성들이 이혼을 성사시키려고 매달렸지만, 자신들이 지닌 논리의 허약함이 들춰지고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끝났던 것이다.
이 책의 1부와 2부에서는 10여년에 걸친 두 차례의 이혼 소송의 전말을 다루고, 3부에서 이 사건이 지니는 의미를 저자 나름의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남성이 처가에 ‘장가를 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부계제가 확립되고 여성이 ‘시집을 가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조선사회가 부계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결혼제도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비록 부인인 신태영도 유배를 당하고 처벌을 받게 되었지만, 이혼 소송을 제기했던 유정기와 그 가문도 이후에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의 부제를 ‘유교적 가부장제가 삼킨 조선 여성, 목구멍의 가시가 되다’라고 붙인 이유일 것이다.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여성의 정절만을 강요하며 열녀의 탄생(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을 부추기던 사회적 분위기와 그 의미를 짚어낸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이 사건은 무엇보다 비첩을 들이며 부인에게 성실하지 못했던 남편 유정기가 가부장제의 권력에 취해, 여성을 축출하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결국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에 실패한 남성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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