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말이나 평일이나 다를게 없다. 그럼에도, 이땅에 사니까, 여전히 아직은 살아있으니까, 날짜나 요일이나 자유롭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땐 순간적으로 오늘이 몇요일인지, 혹은 몇일인지 몰라서 당황하기도 하는 이유도 그래서 일게다. 벌써 10월이고 첮 주말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은 아니다. 어제와 별로 다를게 없는, 그냥 연장선상에 있는 하루일뿐이다. 그럼에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날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 될수도 있는 것인가. 가만, 어제는 어떤 하루였지? 뭘 했더라? 금요예배에 참석했고, 밥을 맛있게 먹었고, 감정코치 수업을 받았다. 설교 내용은 거이 기억에 없다. 누가 설교를 했는지도 가물거린다. 이정도면 치매가 의심스럽다. 다행인지 감정코칭 수업 내용은 기억한다. 화산그림을 몇장 보앗고, 내 감정 상태를 화산그림이 그려진 그림위에다가 덧 그려서 표현했다. 나는, 속에서는 불이 여전한 가운데, 감쪽같이 포장을 잘 해놓은 상태를 표현했다. 속에는 여전히 불이 감추어저 있다. 언제 폭팔을 할지도 알수없다. 그러나 걷 모습은 아무렇지않게 잘 마무리 한것처럼 포장을 했다. 내 상태가 이랬다. 누군들 가슴속에 화산이 없겠는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다들 화산을 안고있을게다. 다들 그러고 사는것이다. 아닌가?
한강이란 소설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단다. 실화다. 각설하고 부려웟다. 나는 이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몰랐는데,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한국인이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부렵다는 말 말고는 다른 어떤말로도 포장할수가 없을것 같다. 종씨라니 더 없는 영광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렇듯 꿈을 이루는데, 나는 종말을 기다리고 있다. 내 길 끝에는 과연 천국이 있을까. 은혜로만 간다는데, 내게 그 은혜가 있기는 한 것일까. 춥다. 냉기가 자꾸 몸안으로 스멀거린다. 이 겨울은 또 어찌 견딜수 있을지 걱정이다. 겨울이 오기전에 갈수도 있는데 미리 걱정 말자했는데, 갈 기미는 보이지 않고 겨울은 코앞에 와 있으니 당황해야할까. 자고 일어나지 않는 죽엄을 바랐다. 일상중에 잠시 멈춰서듯 그렇게 홀연히 가는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어쨌던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이런저런 죽엄을 그려보곤 한다. 죽을 사람 여기저기 참 많다. 오래 사는게 더이상 축복이 아닌게 현실이다. 스스로를 감당할수 없게되기 전에 가길 원하지만, 이것도 교만일까. 신의 영역을 감히 건드리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다들 사는게 피곤해 보인다. 멈춰서고 싶은 표정이다. 그럼에도 자동인형이나 되는것 처럼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이미 행복과도 멀고, 즐거움과는 상관없어 보이는데, 어디서 하나님 영광을 찾아볼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이어트가 세상의 흐름인듯 싶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사람 천지다. 좀더 싼듯 싶은 물건앞에 멈칫거리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다. 필요하긴 한데, 필요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능력앞에서 무력할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나를 위해 과일은 사본게 언제더라? 아닌가. 2000천원에 10개넘게 주는 바나나를 몇일전에 산것 맞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싸서 샀다. 말이 안돼는것 같지만 사실이다. 아들 덕분에 이런 저런것들을 먹는다. 호빵도 몇개 집어왔고, 사이니라고 하던가 파란 포도도 한송이 들고왔다. 사이니 포도값이 싸졌다고해서 부담없이 집어왔는데,,, 가격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살수있는 가격은 아니었다. 사고싶은 것들을 부담없이 살수 있으려면 어느정도 경재력이 있어야 할까? 나 한태는 이미 불가능한 것이지만 웬지 씁쓸해진다. 나도 사람으로 살고 있는게 맞나? 사람으로 살아본적이 있기나 한것인지 의문이 든다. 잘산다는 표현을 달리 표현할수도 없어서 물질로 그 척도를 재는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허망하다. 나도 사람인것은 맞는데 사람으로 살지는 못한것 같아서,,,가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이기도 하다. 열매없는 가을이 허망하고 쓸쓸한것은 당연한 것일테지만,,,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