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아저씨의 가위소리에 잠을 깨곤 했던 때였다. 동향집에 살았다. 언덕빽이 이기도 했다. 해가 돋자마자 창문을 통해 아침 햇살이 비추었었지. 일어나야 할 상항이긴 했는데, 정작 일어난들 할일이 없었다. 남편은 그당시에도 외박을 하거나 술냄세를 풍기며 잠들어 있거나 했다. 나는 남편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할일이 없어 놀고있는 입장이 어떨지 , 그가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었을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결혼한 남자가 경제적 책임에서 무능력한체로 속수무책인게 온통 그 잘못이라고 탓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수 없음에 절망했다. 아침해가 떠오르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강냉이 장사 아저씨의 가윗소리는 마치 내 목을 쥐고 지옥으로 끌고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선물이 아니라 형벌처럼 느껴젔던 시절도 역시 지나가게 마련이긴 했다. 내 인생에 단 한번도 헐거웠던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며 견디었던 것은 뭐였는지 나도 모르겠다. 남편에게서 한판의 역전을 기대했었을까. 아님 혼자서 아이들과의 삶이 두려워서 였을까. 없는 것 보다는 있는게 낫다는 미련도 한몫했고? 나도 모르겠다. 끝까지 가정을 지켜냈다는 다행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안도할만끔 아이들에게 해준것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고군분투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어낸 여인들의 역전기를 들으면 참 존경스럽다.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나마 어머니 덕분에 굶지않고 살았으니 어머니가 안계셨으면 어쩔뻔 했는지, 하나님은 내게 어머니를 주셨다. 절묘한 한순가.아이들도 무탈하게 자라주었다. 그러면 다 주신것 아닌가. 결과물이 하나도 없는 허접하고 별볼일 없는 인생임에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으니 감사한게 맞고 은혜아니면 말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늘은 파랗고 청명하다. 겨울준비로 여기저기 집안을 들쑤시고 있다. 새로 사기보다는 재활용으로 어떻게던 해볼생각이다. 커텐을 할까 싶어서 안쓰던 홋이불도 만저보는 중이다. 이불 솜싸게였던 힌천도 챙겨보았다. 지금은 거이 잊혀졌지만 백결선생이란 분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중이다. 그시절에 비하면 이런 고민은 호강인가. 돈돈거리지 않고 사니 유유자작이 분명하다. 빈둥거리며 지내고 있음도 얼마나 좋은가. 책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읽기위해서는 아마 죽을 때가 없지 싶다. 그런대, 뭘 위한 독서지? 나는 단지 시간을 때우기위해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인데,,, 강냉이 장수 아저씨 가윗소리에 눈을 떴던 그때와 다른게 뭐가 있지? 하나님이 주신 하루를 허송하고 있음에는 같은게 아닌가. 소설책, 더구나 아이들이 읽는 판타지를 읽으며 독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것 아닌가. 노년의 안락함를 허락하신 분께 할말은 더욱 아닌긋 싶은데? 월요일이다. 그리고 하루의 시작인 오전이다. 뭔가 유익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부정적인 생각쪽으로 기운다. 밥값을 못하는 이유중 하나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