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떠지는 것인지, 혹은 뜨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눈을 뜨는 순간은 내가 알게 된다. 살아있음도, 내가 나인것도. 그런데 잠이 드는 순간은 언제인지 모른다. 뒤척이고 뒤척이다가 어느 순간에 잠이 드는지는 모르고 잠이든다. 죽은것도 그렇겠지만 , 살아있음에 감사하던 안하던 아침에 깨어나면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알게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첫시간을 성경을 읽는다거나 기도로 시작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그리고 엄격한 훈련이 있는 후가 되겠지만, 아마 나처럼 밍그적거리거나 하면서 냉큼 일어날 생각도 안하고 개으름을 피우거나 하면서, 하루를 주심에 감사할 생각도, 감동도 없이 당연한 일상으로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듯 하다. 아니, 나 조차도 하루하루가 은혜라는 것은 알고있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고있다. 무탈한 일상이 기적이고 큰 은혜임을 충분히 알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감사하지도 감동하지도 않음은 그냥 응석이고 투정인가. 이 나이까지 무탈한 삶을 살게하신 것은 감사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두발로 걷고, 숨을 쉬며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모든 일상의 극히 당연함까지 기적이 아닌것이 없을도 잘 알고있다. 90억이 버벅거리고 있는 이때에 무풍과 안온함까지 주시고 계신데 뭘 투정하고 뭘 응석부리려 하는 것인지. 오래 사는것도 재앙이라고? 젊고 젊은 나이에 세상떠난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런 투정이 얼마나 무의미할지 생각해본 적도 없다. 양할아버지는 청소년 나이때 병사하였고, 내아버지는 막 시작된 청년 시절에 비명횡사를 당했다. 그분들 때문에 한가정의 여인들의 운명이 숨도 쉬기 어렵게 되지 않앗던가. 그게 언제적일이라고 오래사는게 재앙이 되고 있는지,,,. 사실 오래라는 기준은 없다. 100세를 넘기고서도 왕성하게 살고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젊은 나이에도 자신을 간수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보면 나야말로 이상한 편견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것인가. 무능한 사람은 다 무가치하다고 폄하하고 있는 것 같다. 1등들만 끝까지 완주할 자격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이다. 어쩌면 내안에 히틀러가 있는 것인가. 아님 또다른 사탄이 진을치고 있는 것일수도 있고. 하루하루가 겹쳐지고 있다. 날짜도 잘 모르는 때도 분명 있다. 아이들이 말하는게 잘 못듣기도 하고, 이해 못하는 말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늙어감인가. 고모들이 그립다. 그럼에도 전화도 안한다. 잘 못듣으신다는 핑개가 그럴듯 하지만 꼭 그것 때문도 아니다. 애벌래들은 탈 바꿈을 한다. 어느날엔가는 나비가 되기도하고 매미가 되기도하고, 새들은 알에서 깨어나면 그냥 새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아니면 뱃속에서 성충과 애벌래 시기를 지난다고 해야할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다가 죽게된다.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외롭고 곤고하다. 손끝도, 머리끝도 아프다. 이게 삶인가. 사랑인가. 사람이 삶이고 삶은 사랑이라고 한다. 모든게 다 지친다. 종교가 더 힘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오래 사는게 재앙이란 말을 자꾸 하고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