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아작'에서 낸 한국 SF 계간잡지 '어션 테일즈' 창간호다.
제 1호니까 No. 1, No. one을 'no one(아무도 없음)'으로 해석해 주제를 'alone'으로 잡은 것이 독창적이고 좋다.
'어션 테일즈'는 '지구인의 이야기', '지구의 이야기'라는 뜻인데 '지구인이 만든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다.
요즘 한국 잡지들이 월간보다는 계간, 볼륨과 소장가치, 전문성을 높여서 고급화하는 추세가 있는 느낌인데
이쪽도 그러하듯 책이 상당히 크고 두꺼운데다 하드커버 양장본이다. 심지어 각 권마다 시리얼넘버 도장까지 찍혀 있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하드커버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나는 책을 주로 누워서 보기 때문에 하드커버가 불편하다)
흰색에 밝은 파란색으로 디자인한 책 모양새는 아주 예뻤다.
그런데 주워듣기로는 매 호마다 판형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제발 그러지는 말아 주길!
시리즈물이 디자인 일관성이 없으면 책장에 꽂았을 때 너무너무 스트레스 받는다. 소장가치 측면에서도 꽝이라고 생각.
지금이 괜찮으니 후속 권이 계속 나온다면 같은 판형, 어느정도 일관성 있는 디자인으로 해주시면 좋겠다.
계간지, 전문지를 표방하는 만큼 내용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초단편, 단편, 중편 소설 등의 픽션이 주를 이루고 중간중간 인터뷰 특집, 칼럼과 기사, 한국 SF계 소식, 만화 등이 들어 있다.
소설 종류는 한번에 몰아보지 않고 시간 날때마다 천천히 하나씩 읽어보는 중이다.
요즘 SF 장르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어떤 작가 책부터 읽어봐야 될지 잘 모르겠다면 이런 단편들로 시작해도 되겠다.
짧은 이야기인데도 각 작가들의 스타일이 잘 묻어나와 있어 다양한 작품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수록된 내용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고 알차다고 생각했던 것은 심완선 칼럼니스트의 글 'SF와 청소년의 세계'였다.
요즘 서점에 보유하고 있는 책 위치를 바꾸고, 구성을 바꾸면서 성인(일반) 소설과 청소년 소설을 구분해서 꽂아야 할까?
애초에 일반 소설과 청소년 소설의 차이를 뭐라고 해야 할까? 등을 고민하고 있던 터라 반갑게 읽었다.
어린이/청소년 도서의 큰 맹점 중 하나는 이야기의 생산자(작가)와 구매자(부모)는 성인, 대상으로 하는 독자는 어린이라는 점이다.
청소년의 경우 여기서 조금 더 복잡해져서, 더 이상 부모가 권하는 책을 읽지 않거나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조금이나마 자신만의 구매력을 갖추는 나이지만 성인만큼 풍족하지는 않기 때문에
청소년 도서는 생산자(작가)는 성인이지만, 그것이 자기의 소중한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읽고 싶은지
판단하고 구입, 소비하는 것은 청소년 본인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칼럼 첫머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들을 '가르치려고' 하거나,
어른의 시각에서 청소년을 보는 것처럼 '공감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청소년은 이를 읽지 않는다. 아주 어렵다.
칼럼에서 소개한 책들을 읽어 보면서 청소년이 찾고 싶고, 읽고 싶은 책들은 무엇일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또, 잡지 첫머리에 최근 갑자기 뜨거워진 소위 '한국 SF 붐'에 대한 김보영 작가의 에세이도 좋았다.
평범한 독자인 내가 생각해도 '한국에서 SF는 안 나가! 스타워즈, 스타 트렉도 한국에서는 다 망했잖아!' 등의 SF 불모지론이 기세등등하다가, 어느 날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요즘은 한국 SF가 대 인기! 한국의 젊은 SF 신예 작가들!!'을 부르짖는 트렌드에 대해 정확하게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었다. 언제나처럼 작가들은 있었고 그들이 글을 쓰는 것도 같았는데, 무대를 깔아 주는 판이 바뀐 것뿐이라고.
에세이 제목처럼, '당신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장르가 있다'는 아주 감명깊고도 날카로운 지적이다.
'왜 요즘 갑자기 SF가 대세가 됐대?'하고 어리둥절한 사람이라면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읽을 책 목록이 한없이 늘어나는 것도 덤이다)
잡지 내용은 기본적으로 모든 글이 (인터뷰 제외) 2단 구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상당하다.
중간중간 일러스트와 만화 등이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텍스트 양이 상당히 많다고 느껴지는 정도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읽을 수 있겠다.
월간이 아니라 계간으로 만들려는 잡지니까 오래 두고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
아마 잡지 둘러보고, 여기저기서 소개되는 책 중에 궁금한 것들 읽고, 수록 소설이 마음에 드는 작가에 대해 찾아보고...
하다가 보면 계간 기간은 훌쩍 지나가겠지. '한국 SF 전문'인 만큼 다양한 SF 작품과 작가들을 소개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1호가 no one, 'alone'이었으니 2호 주제는 뭘로 잡으려나?
SF니까 당연히 외계가 존재한다고 상정하는, '지구인'이 만든 이야기를 내세우는 잡지 '어션 테일즈'.
2호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 줄지 궁금하다. 한동안은 여기 등장한 추천도서 읽느라 또 바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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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를 두고 오래 고민했지만, 여러 제안 중에 낯선 알파벳의 나열보다 의미 있는 '지구인들이 만든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은 <The Eartian Tales>를 선정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 절반은 외계인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구에서 태어났으면 외계인 여러분도 모두 지구인 아니겠는가. 이처럼 '지구인'이라는 말은 필연코 '외계인'이라는 말을 전제로 하는 법이어서, '지금-여기'와는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지구인들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모아보고 싶었다.
편집장의 말,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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