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아침 8시에 민어회라니.
맑은 민어탕에 통통한 갈치구이, 월남쌈과 야채샐러드, 제주고사리 취 명이나물,
호박전과 메생이전,직접 만든 도토리묵......
기억해내기 어려울만치 20여가지 모두 순수자연산이다.
아침밥상으론 너무 과한 진수성찬을 받고보니 조식을 먹지않는 나도 젓가락이 절로 들어진다.
조식이 중요한 여행객은 뱅디가름을 완전 강추!
주인어머니의 제주정착성공담을 들으며 서둘러 나와
오늘밤 묵을 온평리에 있는 '수하라839'게하 주인에게 베낭을 맡긴다.
베낭 운반을 위해 고맙게도 와주신것이다.
이틀간 메고 다니면서 클럭을 수시로 이용할만큼 힘들었는데 베낭만 안메도 하늘을 날것처럼 가볍다.
셋째날인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올레2코스 걷기를 변경하여 가까이있는 섭지코지를 가기로했다.
여행은 날씨에 민감하다.
올레리본을 좇아 걷지않는게 불안하고 심심한듯했으나
그것도 잠시 제주의 변화무쌍한 풍경에 환호성을 지르며 걷는다.
아무도 없는,
심지어 차도 안다니고,
예쁘기 그지없는,
한적한 제주길을 다 차지하며 걷는다는걸 상상해보라.
소리 지르지않을수없다.
섭지코지는 올레길에 포함되지않고 비껴가는 곳이다.
붉은 오름과 따로 난 길이라는 뜻으로 십수년만에 다시 찾은 셈인데 여전히 설레고
절벽 끝의 아찔함에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진다.
벼랑 끝의 등대를 오르는데 비가 한 두 방울 내리더니 세찬 바람이 내 몸을 날려버리겠다는듯 몰아친다.
그래도 굴하지않고 준비해간 우산이 뒤집혀져도 기어코 등대 등정(?)
드넓은 바다를 막힘없는 파노라마뷰로 즐긴다.
날씨가 좋으면 사진도 찍고 더 머무르겠지만 가깝고 접근성 좋은 피닉스리조트쪽으로 내려와
내 취향인 부지 내 카페에서 비를 긋는다.
비가 와도 싫지않고 여행의 묘미라 생각하니 즐겁기만하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전투적으로 걷기만 했을텐데 덕분에 잠시 쉬기도하고
부지 내 유민미술관에서 경로 30% 할인 적용을 받아
아르누보의 유리공예전시를 도슨트없이 둘러 보았다.
오디오가이드는 무료제공 받고 미술관 최고의 포토존에서 일출봉을 새롭게 다시 본다.
어디서건 고개를 돌리기만해도 흠칫! 일출봉이 똬악!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50선 중 1위라지만 이쯤되면 진짜 스토커가 따로 없다.
봄비치곤 많은 양이 그치질않고 내려 콜택시로 온평리 부근에 내리니 신기하게도 비가 그치고
더없이 맑은 하늘에 기분이 상쾌하기 이를데없다.
건너 뛴 2코스 중에 탐라건국신화의 발상지 혼인지가 있다.
제주 신화의 시조인 고,양,부 삼신인이 지금의 완도쯤인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맞이하여
혼인을 치뤘다는 연못을 말하는데 여유롭게 둘러볼수있게 잘 가꿔져있고 전통혼례도 치룰수있어 인기가 좋다고한다.
하나의 입구에서 세개로 나눠져 삼인이 신방을 차렸다는 신방굴을 들여다보니
원시시대에나 가능했던 주거형태다.
허기야 4300년전이니까.
느긋하게 온평리마을을 한바퀴 돌고 수하리839 (상호에 숫자가 붙는다면 십중팔구 지번이다)
게하로 가니 소규모긴하나 호텔 못지않는 멋진곳이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용천수공원 쉼터 앞에 위치한 넓은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난드르흑돼지구이집에서
맥주도 마시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것이 사달이었을까.
맛집이라고 게하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을
안그래도 3일간의 쉼없는 발걸음으로 잔뜩 성이 나 있을텐데
구두나 다름없는 뮬을 신고 다녀와선지 막판에 발바닥이 붓고 아프다.
작년에도 그랬었는데 올해도 그러는걸보니 나는 다리는 멀쩡하지만 발바닥이 문제인성싶다.
조식이 훌륭한 집이라는데 코로나로 인해 일정기간 운영하질않아
이른 시간에 주인의 배웅없이 길을 나선다.
일찍 나오느라 인사도 못드리고 갑니다 잘 쉬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문자를 남기고 편의점에서 각자 선호하는 요기를 하는데 전화가 와서 후일도모대화를 나누고 걷기 시작이다.
마을 입구에서 3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고 8시도 안된 이른 아침이라 더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이다~
3코스는 온평폭포구에서 표선해변까지로 A와 B로 나뉜다.
A코스는 오름도 오르고 추천코스지만 20.9 km이고 B코스는 줄창 해안을 따라 14.6 km로 좀 지루할테지만
1시 반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A코스는 무리다.
결국 4~5시간 소요인 B코스로 가는데까지 가볼 생각으로 걷는데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제주 전통의 등대인 첨성대 모양의 도대를 지나
제주 해안선 600여m에 걸쳐 쌓은 석성인 온평 환해장성이 시작된다.
애초엔 삼별초를 막기 위함이었지만 나중엔 왜적을 막는데 쓰였다고한다.
바닷가 자연석을 채취하여 축성한것으로 선조들의 노고가 짐작된다.
신산리카페에서 중간스탬프를 찍고
길가나 담벼락 어디서건 노랗게 핀 가자니아꽃길을 지나니 A와 합류하는 지점이 나온다.
여기까지다.
조금만 더 가면 3코스의 하이라이트인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 나오지만 다음을 위하여 남겨두기로했다.
드디어 신산리마을에서 3박4일간의 올레투어를 마쳤다.
201번 버스로 표선환승주차장에서 내려 121번 공항가는버스로 환승했다.
약 1시간 가량 제주의 중산간도로를 지나는 직통버스로,
잘 찾지않는 길이라 창밖을 내다보는 재미도 있다.
공항4층에서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지난 4일간을 돌아본다.
21코스, 1,2,3코스를 걸었지만 2코스와 3코스는 절반 정도만 걸었을뿐이라
주구장창 걸었던 작년에 비하면 발이 편한 여행이었다.
더없이 멋진 성산일출봉을 눈만 돌리면 볼수있었고 오랜만에 들른 섭지코지, 광치기해변, 지미봉, 말미오름......
혐무암 담벼락과 너무도 예쁜 조합인 유채꽃밭.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바다.
제각기 좋았던 3인3색 게스트하우스.
돌풍을 만나 쉬어가는 페이지 섭지코지.
어느것 하나 실망없이 환희를 안겨준 제주 올레길.
어쩌다 제주를 사랑하고 아끼게된건지 굳이 말하지않아도 다 아는 소중한 자연유산.
눈을 감지 않아도, 떠올리려 애쓰지않아도 나는 지금도 올레길을 걷고있다.
첫댓글 숨가쁘게 달린 제주올레길.
한없이 길어지는 얘기에 나중엔 뉘가 나서 쓰기가 싫어졌답니다.
제가 수다쟁이인걸까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걸보니요.
명품백을 사면 한두번 얘기하는걸로 끝이 나지만 여행은 기회가 될때마다 하게되는것같아요.
여행을 다녀오면 한 며칠간은 쉬고싶다는데
전 벌써부터 올레길을 꿈꿉니다.
계절을 따지지말고 또 갈까요?
마지막 문장~언니도 영화배우네요. ㅎ왕 멋찜^^
김영갑갤러리ᆢ갔던곳 나오니 반갑네요 ㅎ작년 늦가을에 우도서 땅콩차 타고 돌아댕겼었어요~
ㅣ편도 2펀도 자세히 재밌게 글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지금쯤이면 언니 발바닥은 나아지셨지요?
여행의 끝판왕으로 인정 합니다 ㅎ
모든 것이 다 언니와 잘 어울리는데
경로 30% 할인 적용이라니, "다음 중 어울리지 않는 하나를 고르시오"라는 문제에 너무 뻔한 답을 올려 놓은 기분? 여유롭고 만족스런 여행. 글로 따라가는 재미도 좋네요.
수미야~~우리 언제 따라가자 ㅎ
@금세담
@한아 야호
여행의 묘미를 실감나게 마음과 몸으로 느끼는 언니에게 의문도 갖어봅니다.하루 시간의 모든 일정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다니는지,혹은 기억하는지 간단히 메모로 흔적을 남겨놓는지..난 어디를 가도 너무 건성이 아니었나 추억의 여행들을 되새깁니다. 언니 여행담이 비디오,동영상 등으로 촬영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현장감이 다가와요. 그러니 모두들 함께 한 듯 느끼지요. 가고 싶을 걸요.나처럼.^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정말 숨가쁘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여행하신 곳,길들,전 거의 가보지 못한 곳입니다.
*뱅디가름은 저도 꼭 가고야 말 것입니다.
제주올레길,무등산이 질투하겠는데요~
아주 자세한 여행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다녀오시길요~ㅎ 응원ᆢ왜? 허리 아프시니 어서 나아지셔 여행하시라구요. ㅠ
생생하게, 보는것처럼 걷기 같이 하는듯~
잘 읽었어요. 더 가고싶어져요
올레길걷기 희망자 함께 가시게요
지금이 최적기인데요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