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한조각 희망이 살아있기만 하다면 덜 고달프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살아만 있으라는 말 또한 희망을 얘기하는 것일거다. 살면서 늘 희망인 사람도 있긴 할까. 반대로 희망일수 없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우린 어떤 선택도 없이 이땅에 왔다. 국가도 집안도 부모도 우리의 선택은 아니었다. 어쩌면 공평하게 마구 흩으러저 있을수도 있지만 가끔은 복권에 당첨된듯 좋은 부모며 국가를, 그리고 시대까지도 최고의 천운을 갖고 나오는 사람도 있을게다. 그런 사람을 부려워 하기보다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않았음을 다행으로 알아야 하지않을까. 여자는 사람 취급도 못받았던 시대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천민의 굴래는 여전하고 허리를 반으로 접어 인사를 해야하는 인습은 진행형이다. 어쩌면 중심 사회에서 빗겨나 변두리에 얼쩡거린 삶이 더 평안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것인가.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평탄할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할게다. 풍파의 한가운데서 질풍노도의 삶은 아무나 사는게 아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인가. 내가 다행으로 여겨지니 이것 또한 다행아닌가. 월요일이다. 커텐으로 지목하고 창문에 걸었는데, 더 추어지기전에 커텐 빨래를 하는게 좋을것 같아서 빨래중이다. 이불 호창으로 사용했던 홋이불을 커텐으로 지목하고 내심 만족했는데, 밝은 불빛에서 다시보니 누렇게 찌든때가 변색되어 있었다. 참으로 지지궁상이다. 왜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있는지도, 그걸 꼭 다시 사용하려고 고집하는지도 설명이 안된다. 곧 갈거라고? 그 곧이 언제인데? 어쨌거나 머지 않았다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머지않는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5년후 혹은 10년후가 될련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오래있게되면 울아들 딸 괜찮지 않을탠데,,,ㅎㅎㅎ 옛말에 쪼그리고 앉은손님 3일 간다는 말이 있다. 마치 곧 갈듯 편히 앉지도 않고있다가 가는대도 3일이나 걸렸다니, 지금 나도 그런것인가. 되도록이면 사지않고 살려고 한다. 놓고가면 아까우니까. 내가 어렸던 시절만해도 돌아가신 어른들 물건 다 그냥 사용했다. 옷가지까지도 대부분 불에 둘러다가 들여왔다. 태우거나 하는 물건은 극히 일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건도 귀했던 탓이겠지만 그보다는 전혀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애정했던 것일까. 지금은 아주 냉혹할 정도다. 물건이 넘처나서겠다. 나는 좋은 물건은 없다. 오늘 당장 버려도 아쉬울것 없을 정도다. 그리고 우리딸, 엄마가 쓰던거라고 애정할 사람도 아닌것 안다. 그럼 잘된것 아닌가. 뭔가를 사서 낭비하는 것 보다는 아껴서 돈으로 남길수 있다면 오히려 요긴할듯 하다. 아이들 아이스크림 값이라도 하면 더 유익할태니까.ㅎㅎㅎ. 단 하나 남은 문을 열고 닫는게 이렇게나 더딜가. 두렵지 않는것은 아니다. 특히나 "잘 살았느냐"는 물은엔 어떻게 답할지 막막하다. 인생은 단 한번뿐인 기회였는데, 최선을 다했냐는 물음엔 얼굴을 들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것 아시잖아요. 구르는 재수하나 없었던 내가 얼마나 힘들었지는지 아시잖아요." 라고 답할수가 있을까. 이나마 살아온것은 은혜였다. 그분은 항상 너무 멀리 계시다고, 그분에겐 나 말고도 80억이 넘는 인생들이 있다고 기죽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분은 아주 가까히 계셨고, 늘 나를 살펴주고 계셨다. 이제, 언제고 부르시면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하며 오늘도 파이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