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5
9. 호질(虎叱)(박지원) 줄거리
산중에 밤이 되자 대호(大虎)가 부하들과 저녁거리를 의논하고 있었다. 결국 맛 좋은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낙착되어 범들이 마을로 내려올 때, 정지읍(鄭之邑)에 사는 도학자 북곽(北郭) 선생은 열녀 표창까지 받은 이웃의 동리자(東里子)라는 청상과부 집에서 그녀와 밀회하고 있었다.
과부에게는 성이 각각 다른 아들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이들이 엿들으니 북곽 선생의 정담이라, 필시 이는 여우의 둔갑이라 믿고 몽둥이를 휘둘러 뛰어드니, 북곽 선생은 황급히 도망치다 똥구렁에 빠졌다. 겨우 기어나온, 즉 그 자리에 대호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어 머리를 땅에 붙이고 목숨을 비니 대호는 그의 위선을 크게 꾸짖고 가버렸다. 날이 새어 북곽 선생을 발견한 농부들이 놀라서 연유를 물으니, 엎드려 있던 그는 그 때야 범이 가버린 줄을 알고 줄행랑을 쳤다.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한문 소설, 풍자 소설
성격 : 풍자적. 우의적. 비판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제재 : 양반의 허위 의식
주제 : 양반계급의 위선 비판. 양반의 도덕적 허위의식을 풍자적으로 비판
이해와 감상 1
이 작품은 위선적 인물을 대표하는 북곽과 동리자를 내세워 당시의 양반 계급, 즉 다수 선비들의 부패한 도덕관념을 풍자하여 비판한 작품으로, 도덕과 인격이 높다고 소문난 북곽(양반 계급)은 결국 '여우'같은 인물이요, 온 몸에 똥을 칠한 더러운 인간이며, 끝까지 위선과 허세를 부리는 이중적인 인간임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그 정절로써 천자와 제후들에게까지 우러름을 받는 과부의 다섯 아들이 모두 성이 다르다고 비꼰 것은 겉모습, 혹은 세상의 평판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음을 통렬히 풍자한 것이다.
이해와 감상 2
‘호질(虎叱)’은 다음 작품인 ‘허생(許生)’과 함께 연암의 제 2기작이며, ‘양반전(兩班傳)’?‘허생’과 더불어 연암의 대표작으로 손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씌어진 시기는 이 권 첫머리의, ‘정조대왕 4년 경자년 음력 칠월’이라는 구절에서 1780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연암의 ‘열하일기’ 중 ‘관내정사(關內程史)’에는 연암이 이 글을 입수한 경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연암이 중국 옥전현(玉田縣)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끌려 심유붕(沈由朋)의 점포에 들어갔는데, 그때 벽에 붙어 있던 작자 미상의 절세기문(絶世奇文)이바로 ‘호질’이라는 것이다. 연암은 동행한 정 진사(鄭進士)와 이것을 베꼈는데, 객사에 돌아와 보니 정 진사가 베낀 부분은 오서(誤書)와 누락된 부분이 많아 자신이 조금 손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위장에도 불구하고 심유붕과의 문답이나 기타 정황으로 미루어 ‘호질’은 연암의 자작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옥전현 점포에서의 하룻밤마저도 연암이 창조한 무대인 것이다. 국내의 수많은 위학자(僞學者)들을 신랄하게 공격한 내용 때문에 이런 위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한편으로는 ‘호질’의 소설적인 재미를 배가시켜 주는 훌륭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호질’에서 가장 주된 주장은 썩은 위학자들에 대한 공격이다. 인륜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아부에만 눈이 먼 세 마리 창귀(?鬼)들의 행실, 나라의 이름 높은 선비로서 과부 동리자와 간통하고 달아나다가 호랑이를 만나서 온갖 아첨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 북곽 선생의 행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연암은 호랑이의 입을 빌려‘유(儒)’는 ‘유(諛)’라고 잘라 말하며 이들 위학자들에게 가슴이 후련해지는 질타(叱咤)를 퍼부은 것이다.
이 작품은 소설적인 구도면에서도 당시의 다른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즉, 호랑이를 주체로 한 부분과 북곽 선생을 주체로 한 부분이 독립적으로 전개되다가 어느 한 시점에서 접목되어 작품의 주제를 완성하는 독특한 구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작품의 분량과 당시 일천했던 구성력에 비추어 대단히 획기적이고도 수준 높은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은 애당초 ‘관내정사’에서 이 글을 절세기문이라 자찬(自讚)했고, 또 귀국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읽혀 배를 잡고 웃게끔 만들겠다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장담은 헛된 것이 아니어서, 당시 ‘호질’의 인기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허생’보다도 오히려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호질'의 풍자
이 작품에서는 표리부동한 위선적 인물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북곽 선생'과 '동리자'이다. 이들은 모두 조선 사회가 숭상하는 인간상들이다.
우선, 북곽 선생은 도덕과 인품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동리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우'로 오인되어 도망치다가 분뇨 구덩이에 빠진다. 군자인 체하던 그가 사실은 여우처럼 간교하고 분뇨처럼 더러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를 농부 앞에서 여전히 도덕 군자인 것처럼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가 끝까지 위선과 허세를 부리는 표리부동한 인간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한편, 동리자는 정절이 곧기로 평판이 자자한 열녀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녀에게 성이 다른 다섯 명의 아들이 있다(아버지가 다른 다섯 명의 아들). 이는 겉모습, 혹은 세상의 평판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음을 통렬히 풍자한 것이자, 당시 양반 계층의 부도덕성을 꼬집은 것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