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뉴스타임지 인문학산책)/2026/06/
양파와 함께 눈물을 ‘양파주점’
--양철북을 위한 노래(2)
이민숙
그 양파주점, 손님들은 대개 사업가, 의사. 변호사, 예술가, 무대 배우, 저널리스트, 영화인, 유명한 운동선수, 그리고 주정부나 시청의 고관들로서 요컨대 오늘날 인텔리를 자처한 사람들이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부인이나 여자 친구, 아니면 여비서나 미술 공예가, 때로는 남자 정부까지 데리고 와서는 조잡하게 천을 깐 상자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쉬무(양파주점 사장)가 황금빛 양파 무늬의 숄을 걸칠 때까지 소리를 낮추어, 아니 고생스러울 정도로 목소리를 억누르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어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의도는 좋았지만 이야기는 주변에서만 맴돌았던 것이다. 마음 속에 쌓인 것을 풀고 싶고, 가슴을 활짝 열고 토로하고, 속 시원하게 말하고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고, 피가 흐르는 진실을, 벌거벗은 인간을 보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실패한 인생 경력이라든지 파괴된 부부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충 오가고 있었다... ... ...
손님들은 이처럼 양파 주점 안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한참 동안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주인이 손님들 앞에 다시 나타나자, 일동이 앞서보다 더욱 환호하며 얼마만큼 구원이라도 받은 듯이 [야아]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 도대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그러나 반전! 어느 덧 양파주점 주인 쉬무의 손에는 바구니 하나 들려있고 바구니는 청색과 황색의 바둑판 무늬가 있는 천으로 덮여있었으며 그 천 위에는 돼지와 물고기 모양을 한 작은 도마들이 놓여있었다. 그건 그 많은 손님들에게 나누어줄 테고, 그때 쉬무가 지은 미소는 ‘진품으로 추정되는 모나리자를 묘사한 것을 다시 묘사한 미소 같았다’고 작가 귄터 그라스는 쓰고 있다. 그리고 나서 모든 사람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바구니를 덮은 천을 벗겨낸 그 사이! 또 하나의 천이 나타났는데, 그 위에는 얼핏 알아볼 수는 없지만 식칼들이... ...
“자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바구니로부터 천을 벗겨낸 그는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며 분배를 했는데... ...마치 마음씨 착한 자선가처럼 손님들에게 나누어준 것은 양파! ‘그가 걸치고 있는 숄 위에 약간 추상화된 채 황금색으로 염색되어 있는 것과 같은 양파, 같은 구근류이긴 하지만 튤립 구근이 아니라 가정주부가 사들이는 보통의 양파, 채소상 아주머니가 파는 양파, 농부 아저씨라든지 농부 아주머니 혹은 처녀 농사꾼이 심어서 수확하는 양파, 네덜란드 2류 화가들의 다소간 충실하게 묘사되어 있는 양파... ...
그렇게 쉬무는 양파를 손님들 사이에 다 분배하고 마침내 모두가 양파를 앞에 두게 되었는데 들리는 소리라고는 원통형 철제 스토브가 타오르는 소리와 카바이드 램프가 노래하는 소리... ...마침내 쉬무의 “드십시오 여러분!” 이것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 사람들은 양파 껍질을 벗겼다. 양파에는 일곱 겹의 껍질이 있다고 한다. 신사 숙녀들은 식칼을 가지고 양파의 껍질을 벗겼다. 첫 번째 껍질, 세 번째 껍질, 블론드색 껍질, 황금빛 껍질, 적갈색 녹이 슨 껍질, 말하자면 양파빛의 껍질... ... 먹을 것 하나 없는 곳, 요리는커녕 도대체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이곳 양파 주점! 이 특별한 술집은? 썰어놓은 양파는?
양파가 썰어질 무렵부터 그들은 슬픔이 수두룩하게 깔렸음에도 불구하고 울 수 없었던 ‘눈물 없는 세기’라고 명명될만한 그 시대의 울음을 울고 또 울고 조심스럽게 울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슬픔이 해내지 못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양파는 인간의 둥그런 울음을 자아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울고 마음껏 울고 염치도 없이 울고... ...눈물은 흘러내려 모든 것을 떠내려가게 했다. 비가 왔고 이슬이 내리고 수문이 열려버리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여하튼 제방의 범람처럼 눈물이 흘렀음에도 정부로서는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는 ‘이 강의 이름’은 무어란 말인가?
그들은, 12마르크 80페니히(1949년 그 즈음 화폐가치는?)를 주고 체험한 이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양파를 즐기고 난 후 조잡하게 깐 편안하지 못 한 상자 위에 걸터앉아 이웃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떠한 질문에도 충분하게 대답을 하고, 마치 외투를 뒤집는 것처럼 자신의 속을 뒤집어보였다. 여기까진 그런대로 평안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각설하고,
1949년 11월, 라인 강변의 추운 어느 날 아침, 떠돌이 연주자 오스카와 클레프가 플루트를 연주하다가 그곳에 사는 양파주점의 주인 ‘쉬무’를 만나는데, 그로부터 그들은 가게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손에 양파와 도마와 칼을 쥐어주고 울게 하고 다시 그 눈물을 그치게 하는 기이한 거래를 한다. 양파를 팔기 위해선가? 눈물의 근원을 모르는 채 울고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가슴속 멍에를 풀어내게 하는 양파? 그들은 다만, 울음이 없어진 그 한 세기의 암흑과 도대체 풀어낼 수 없는 가슴 속 슬픔을 울기 위하여 모이고 모이는 사람들? 라인강변의 얼어붙은 인생을 연주하는 오스카! 그는 염려되는 모든 자들, 가장 많이 미치도록 우는 한창 나이의 신사들, 커다란 제분소의 주인, 엷게 화장한 남자 친구와 함께 온 호텔경영자, 귀족 출신의 총대리인 아무튼 작가는 수없는 선남선녀들을 나열한다. 그들은 갈수록 흐느낌에 엄습 당해 자신들의 발작적인 행위에 오히려 광분하고 말았던 것인데 급기야는 말도 안되는 스트립쇼 수준으로 나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옷을 벗어던지고 찢어발기고 씹어삼키기까지... ...눈물을 참았던 사람들의 눈물 광기, 슬픔이라는 광기가 양파 주점을 폭발시키지 않을까, 작가 귄터 그라스는 그 아수라장의 슬픔을 통해 울 수 없는 세상은 울음으로 해결되어야 함에도 방치된다면, 모두가 정신을 놓을만큼 커다란 비극의 한 공간으로 진행하고 말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양파주점’은 그리하여 슬픔의 탈출구, 억압을 풀어내는 눈물강의 역할을 하는 상상의 공간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 공간의 주인공들은 ‘전쟁 속 핏줄을 잃었을 뿐 아니라 평화로웠던 라인강변은 쉴 곳 없이 떨고있는 얼음장벽’의 극한 장소로 변해버린 그 시대의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의 주인공인 셈이다.
슬픔아 눈물아 일상을 도둑질해버린 전쟁아
울고 싶다 뒤집어보이고 싶다
이 엉켜버린 음극도 양극도 서로를 외면한 가슴
피아노를 치고
그냥 눈 마주친 날의 사랑을 하고
오스카야 북을 울려라
그들의 광기를 잠재워라 하룻밤 사이 모든 옷을 벗고
소박한 도덕도 찢김 당해버린 사람들,
아 비릿한 동심이 설명해줄까? 오줌을 싸며 감정도 어찌할 줄 몰라
어린 날의 그 보듬을 수 없는 어리숙한 눈물에 휩싸인 어른들을 위해
평범한 고백으로 마음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게
그냥, 너의 냉정한 북을 울려라
눈물은 흘리고 싶을 때 흘리고
어느 날 평안한 시간을 찾아 서로를 위무하며
산다는 건, 라인강의 평화로운 흐름처럼 그래그래 해야 한다는 걸
풀어보자 오스카야 우리 사랑하는 오늘을 펼쳐보자
뭐 어렵다고? 아니야 너의 그 냉정한 눈빛으로 감싸안아보자
너를 괴롭히던 저 정상인들의 가슴 속 눈물
이제 우리 함께 용서하고 울어보자
비범도 평범도 하늘 아래 그리 다르지 않음을,
권력이여 버려라 그 탐욕을! 제발 살아가게 하라 울고 싶은 저 사람들을,
오스카야 그렇게 너의 사랑 보여주었구나!
--<양철북을 위한 노래 2> 전문/이민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