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가 문배마을일 것이다. 마을 자체가 아늑하며 고즈넉한데다가 손잡고 이야기하며 편안하게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기에 발길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리라. 그런데 이곳을 부지런히 넘나들면서 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아는 이가 드문 것 같다. 또한 문배마을과 함께 발길이 닿는 곳이 구곡폭포인데, 이 폭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마도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의 관련성과 그 유래를 안다면 더 의미 있는 산행이 될 터인데 말이다.
춘천시 남산면 강촌에는 ‘문배’라는 독특한 마을이름과 구곡폭포(九曲瀑布)가 있다. 봉화산(736m) 기슭에 있는 높이 50m의 폭포로, 이 폭포의 이름은 언제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지 모른다. 다만 아홉 굽이를 돌아서 떨어지는 폭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폭포로 가기 위해서는 구불구불한 골짜기를 많이 지나가야 했기에 많다는 의미로 아홉이란 숫자를 딴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문배마을로 가는 사람들은 구곡폭포 우측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검봉산(530m)을 등산해서 가기도 하며, 임도를 이용해 걸어가거나 차량으로 가기도 한다. 이 마을에 도착해 보면, ‘참으로 이런 벼랑 위에 이러한 펑퍼짐한 지형도 있구나!’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그리고 문배라는 독특한 마을 이름이 사람으로 하여금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식당이름들이 모두 ‘김가네식당’, ‘장씨네’, ‘신가네’, ‘한씨네’, ‘한씨네집’, ‘촌집’, ‘기돌이네집’, ‘문배집’, ‘강씨네통나무집’, ‘이씨네’ 등으로 토속적인 이름들이어서 더욱 정겹다. 이뿐인가. 음식들 역시 오리백숙, 오리볶음탕, 옻닭백숙, 토종닭백숙, 닭복음탕 등으로 듣기만 해도 입맛을 돋우며, 도토리묵, 더덕구이, 두부찌개 등의 안주와 동동주가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이 마을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문배나무가 많아서 붙여졌다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이라도 문배주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곳에서 빚은 동동주는 집집마다 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또한 이곳 지형이 전체적으로 거룻배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는 관정을 설치 않고 구곡폭포로 흘러드는 물을 식수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곡폭포의 이름과 문배마을의 이름에 대해서 문헌으로 증명된 적은 없었다. 여기에 많은 의문을 지니고 있었는데, 옛 문헌에 실마리가 될 만한 내용을 발견하였다. 이 문헌에 근거하여 보면, 구곡폭포는 문폭(文瀑)이란 이름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 문헌은 을미년(1896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춘천 의병의 선봉장이었던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 1852~1930)의 「습재집(習齋集)」이다. 이 문집의 「문폭유거(文瀑幽居)」, 「문폭잡영(文瀑雜詠)」이라는 시의 제목에 ‘문폭’이란 지명이 보인다. 특히 「문폭유거」에서 문배마을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시를 분석하여 보면 문배마을과 구곡폭포와의 관련성과 지명의 형성을 알 수 있다. 「문폭유거」[「국역 습재선생문집」1 (시(詩))1877년 지음, 60쪽] 시 중에서 문배마을과 문폭에 관련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곳에 문폭이 있으니 [此地有文瀑(차지유문폭)]
깊어서 은거하기 매우 좋구나 [窈窕何其幽(요조하기유)]
골 안은 맑은 날도 천둥치듯 소리나며 [洞裏晴雷殷(동리청뢰은)]
물보라는 햇빛으로 오색 무지개를 만드네 [日下丹霞浮(일하단하부)]
사시사철 풍경을 찾아다니며 [四時訪風景(사시방풍경)]
거닐면 마음이 설레고 [??意難收(상양의난수)]
계곡 물 따라 끝까지 가보면 [逐流到窮源(축류도궁원)]
마을이 평지에 펼쳐진다 [有村開平疇(유촌개평주)]
샘물은 달고 토지는 비옥하며 [泉甘而土肥(천감이토비)]
산은 거룻배처럼 둥글게 둘러쳤다 [山環似巨舟(산환사거주)]
이 시는 구곡폭포와 문배마을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먼저 문폭이 나오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문(文)’은 보편적으로 ‘글월, 글자’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문채, 아름다움, 빛나다’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위의 시와 연관을 지어보면 ‘문폭’이란 ‘채색으로 아롱진 아름다운 폭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아름다운 폭포 등[背 : 등 배] 쪽 평지에 샘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거룻배 모양의 마을이 있었으니, 바로 문배마을인 것이다.
결국, 문배마을은 문배나무가 많아서 문배마을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헌상으로 문폭의 뒤쪽(등)에 있다고 해서 문배(文背)라 불렸던 것이다. 구한말까지 군지나 읍지에서도 등장하지 않은 춘천의 경승지 구곡폭포는 이처럼 '문폭(文瀑)’으로 불리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구곡폭포라고 불린 것 같다.
이제 구곡폭포인 문폭과 문배마을의 의미와 유래를 알았으니, 이곳을 찾을 때마다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자연의 아름다움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어김없이 봄은 오고 있다. 화창한 봄날이 올 때면 많은 분들이 구곡폭포와 문배마을 찾을 것이다. ‘문폭에 은둔하여 살며[文瀑幽居]’라는 시 중간부분에
살아가며 풍족하지 않아도
친구들 서로서로 도와서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여름엔 베옷 입고 겨울이면 갖옷 입으니
끝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또한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리
라고 당시의 소박한 마음을 피력했다. 구국의 염원을 안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던 이소응 의병장이 이곳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이 아름다운 강산을 꼭 지키겠노라고 다짐했으리라.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겠다’고 술회한 춘천 의병장의 ‘나라를 되찾고 지역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도 함께 느낀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사진1-구곡폭포, 사진2-문배마을, 사진3-문배마을_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