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말씀
가까이 오세요
한 발만 더 가까이 오세요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여인의 귓속말을
드릴게요
좀더 가까이 오세요
한 발만 더 가까이 오세요
꽃의
맨 처음 피어난 빛깔로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당신에게
당신에게만
가까이 오세요
어지럼증이랑 가슴엣피 같은 것도
다 잊을 수 있게 씻은 듯이
가라앉는
한 옛날의 서러운 사람
향기로운 눈물로 닦아드릴게요
받아들일게요
내가 바치는
이 질그릇에 온전히
소중한 당신의
당신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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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도 세월 따라 많이 변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세계화장실문화총회'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예산을 책정하는 미친놈들도 있습니다. 공중화장실의 변천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여자화장실에 안 들어가 봐서 그쪽 사정은 모르지만 남자화장실, 특히 소변기는 많이 고급화되는 추세에 있지요. 소변기 앞에 다가가 보십시오. 센서가 작동하여 지가 먼저 알고 미리 물을 좌악 흘리지요. 그 앞에 서면 문득 이런 표어도 눈에 들어옵니다. "한 발만 더 가까이 오세요." 눈 높이에 딱 맞춘 거기 상냥한 말과 함께 꽃 그림이나 아름다운 풍경 그림이 담배갑만한 크기로 붙여져 있는 걸 볼 수도 있지요.
더러는 소변기 위에 향긋하게 방향제를 설치한 곳도 있습니다. 가급적 몸의 중심을 소변기에 밀착시켜서 용변을 보아야 바닥에 잔여의 방울을 떨어뜨리는 본의 아닌 불미스런 실수를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처럼 흰 사기 소변기는 문화라는 말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소변기의 소재를 사기라 해야겠지요. 그래서 소변기는 일종의 도자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자기 이전의 것으로 문득 질그릇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봅니다. 질그릇. 좀 투박한 느낌이 있을지라도 여성 성기인 질(膣)그릇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 않은가요.
위와 같은 정황을 될 수 있으면 안 보이게 숨겨두고 엊그제 나는 이런 시를 하나 썼습니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달콤하고 은밀한 사랑의 시처럼 보이지요?
자 그럼 저의 졸시 '꽃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이 해설을 읽기 전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졸시에서 '꽃'이라는 소변기를 곧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면 당신은 시인의 자질이 충분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당신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질그릇. 정말 사랑스러운 여성이지요? 이 시를 한 편의 사랑시로 읽어도 됩니다. 굳이 감춰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읽는다 해도 크게 잘못 읽은 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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