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색시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건
보름을 훨씬 넘겨서였다.
친정집에 깻모를 내러 간다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아
동네 사람들은 아예 친정으로
가버린 거라며 수근댔다.
그녀의 절절한 사랑얘기야
익히 알고 있으니,
나는 그들 사이에 문제는 없을거라
생각했었다.
"저 오빠 아니면 나 죽어요."라고
그녀가 선언하여 결혼까지 이어졌으니
설마 10년 가까이 살아온 그들이,
아직도 둘은 서로 좋아 키득거린다는 그들이 헤어질 리가 있나?
훗날 들려온 얘기로는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돌봐드리다가 늦어졌다고 했다.
오늘 퇴근길에 폐휴지를 가득 싣고
자전거로 힘겹게 연미고개를 오르는
정태색시를 보았다.
신혼초부터 지금까지
눈비를 마다않고
여전히 폐휴지를 주우러 다니는 그녀.
약골이라 집에서 가만히 앉아 지내는 남편,
우울증과 나태함으로 잘 씻지도 않는 시어머니.
첫아이를 낙태시킨 후 더이상 아이가 생기지 않는 그녀는 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득 낡은 티셔츠의 그녀를 지나치다 든 생각이,
가난하고 지능도 모자라고
사회성도 부족해 누구와 절대 눈 마주치는 일 없이 살아도
'내겐 저 사람만 있으면 돼!' 라는
오직 그 사랑 하나로
그녀는 버티는 게 아니라
기꺼이 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 보여요? 나 안 힘들어요.
나는 다 필요없고
저 사람만 있으면 돼요.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직장?
난 그런 거 필요없어요
저 오빠만 있으면 돼요.)
그녀가 힘차게 밟는 페달이
그런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부시시하게 대충 묶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쓰레빠 바닥이 닳다못해 한 쪽으로 치우친 발뒤꿈치가,
검붉은 얼굴위로 피어난 버짐이어도
전혀 상관않는 그녀의 무덤덤함은
진정 사랑 하나로 살고있는
표본 아닌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