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힘든 그리움 같은 거
노여움 같은 거, 그만 잊으라는 듯
새마을호는 건성으로 세상 속을 가로지르며
낡고 초라한 기억의 驛舍들을
빠르게 후진시킨다. 그러면서 한결 안락한
지정석에 오랜 격정으로 덧난
지난 세월들을 털썩 주저앉힌다
그러나 잔정에 붙들린 세속의 날들이여
우린 아무것도 뿌리치지 못해
이렇게 끌려가듯 멀리 떠나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아니 모른 체하는
심연의 고속 열차에 피해가듯 몸을 맡긴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그 슬픔과
절망의 넓이만큼 너른 초여름의 들녘
오후 6시의 창밖으로 틈입한
한 아낙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논바닥에서 허리를 꼿꼿이 편다
그 막막한 생의 한가운데로 집중되는
폭염을 머릿수건 하나로 막아내며
흘끗 고개를 돌린다
에잇, 잡것들 뭐가 그리 심각해
야유의 손사래라도 보낼 듯한 그런 얼굴로
논풀들을 힘껏 강둑으로 내던진다
그까짓 해묵은 상처 같은 거
치욕 같은 거야, 한낱 엄살이고
사치라는 듯 상행선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문득 거대한 비유로 부풀어오는
만경평야 한구석을 지켜 서 있다
그리하여, 삶엔 어떤 기적도
지름길도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아직도 이곳엔 얼마든지 변하면서
또 변하지 않는 중심이라도 있다는 듯이
그렇게 오래 진흙탕에 붙박혀 서서,
[중심은 변하면서 또 변하지 않아]
화자는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다. "견디기 힘든 그리움 같은 거/노여움 같은 거, 그만 잊"기 위해서. 젊음의 한 때, 시대를 짓눌렀던 반역의 무리에 격정으로 저항했거나 아니면 숨죽이며 지켜보았거나 아니면 두려움에 떨면서 골방에 숨었거나...그 세월에 대한 기억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열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락한/지정석에 오랜 격정으로 덧난/지난 세월들을 털썩 주저앉"히고 초여름의 들녘을 가로 지른다. 마치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처럼. 그러나 어찌 "건성으로 세상 속을 가로지르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화자는 그 화인(火印)과도 같은 기억으로부터 "아무것도 뿌리치지 못해/이렇게 끌려가듯 멀리 떠나가고 있"다.
그 "슬픔과/절망의 넓이만큼 너른 초여름의 들녘"을 가로지르는데 화자를 깨우치는 하나의 풍경. "막막한 생의 한가운데로 집중되는/폭염을 머릿수건 하나로 막아내며", "그까짓 해묵은 상처 같은 거/치욕 같은 거야, 한낱 엄살이고/사치라는 듯" 진흙탕에 붙박혀 서 있는 한 아낙의 표정은 화자에게 충격과 반성으로 다가온다. 그 농부 아낙이 준 깨우침은 "아직도 이곳엔 얼마든지 변하면서/또 변하지 않는 중심"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역사에 대한 관념적 인식, 아직도 패배주의를 떨쳐내지 못한 지식인의 심약함에 던지는 민중의 통렬한 '야유의 손사래'가 만경평야 넓은 벌판으로부터 울려 퍼진다. 더욱이 시인이 그 만경평야가 동학혁명의 근거지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