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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OSMU’와 시조 문학의 위상성
4차 산업혁명 시대 문학의 위기와 기회
김정배 평론가
1. 문화 텍스트의 재매개화와 재문맥화
가끔 디지털 매체나 문학 콘텐츠 관련 강연을 하게 되면,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One Source Multi Use’이다. ‘OSMU’라는 약어로 표시하기도 하는 이 말은, 하나의 소재를 다른 장르에 적용하여 새로운 파급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전략의 일종이 다. 하나의 원천 콘텐츠가 원작 자체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각 매체의 특성과 쓰임에 따라 2차적으로 가공되어 독립적인 매체의 구 조를 형성한다. 협의적 개념으로는 콘텐츠의 재생산을 의미하지만, 광의적 개념으로는 문화상품 및 다양한 문화 콘텐츠 개발까지 그 의미를 확장한다.1) 물론 문학 텍스트 혹은 2차적으로 가공된 모든 문화 콘텐츠의 형태가 OSMU의 사례를 적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OSMU를 통해 2차 저작물로 재생 산되는 그 과정에서 본래 문학이 지닌 순수한 가치는 오히려 더 확 장되기도 한다. 더 많은 독자의 다양한 소통을 끌어내기도 한다.
1) www.fxis.co.jp 참조.
OSMU의 핵심은 해당 분야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접근되기도 한다. 관건은 원작의 작품성과 가공된 콘텐츠의 새로움이 어떻게 서로 상보하고, 나아가 그 균형을 맞춰가는지에 달려 있다. 문학의 관점에서는 범박하게나마 ‘재매개화’와 ‘재문맥화’의 가능성으로 재확인된다. 먼저, 재매개화는 수많은 사회 환경의 변화와 접촉을 시도하면서, 그 목적을 끊임없이 변화시킴을 의미한다. 거듭되는 접촉을 통해 대상에 대한 새로운 앎이 더해지고, 그 앎이 그 문화를 향유 하는 대상에도 번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문화적 정수에 물들게 됨을 상기한다. 태초 시작과는 다른 새로운 지향점이 하나의 의미로 더 추가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재문맥화는 단순한 의미의 전이가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문화의 힘을 특징짓는다. 하나를 막고 다른 것을 트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2) 문학의 텍스트가 어떤 맥락과 소통의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본래 텍스트가 지니는 그 의미와 쓰임이 크게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OSMU의 재매개화와 재문맥화를 설명할 때마다 드문드문 언급하는 텍스트가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집이자 동아시아 상상력의 원천이라 불리는 『산해경山海經』이다. 『산해경』에는 우리가 조금은 낯설어할 수 있는 ‘저인국低人國’의 인어 아저씨가 등장 한다. 인상만 놓고 보면 스포츠머리를 한 중년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텍스트의 재매개화와 재문맥화의 의미를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된다. 인어 아저씨의 이미지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문맥을 우리 스스로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독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어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에 대한 의식의 도전이자, 작은 문화 충격이 되기도 한다.
2) 전동진, 『포에톨로지』, 문학들, 2020, 570~573쪽 참조.
2. 인어 아저씨의 등장
사람 몸에 물고기 꼬리가 달린 인어人魚에 대한 상상은 기원전 1,000년경 아시리아 신화까지 거슬러 오른다. 아시리아 신화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먼 옛날 ‘아타르가티스’라는 아름다운 여신이 살 았다고 기록한다. 아타르가티스는 한 목동을 사랑했는데, 실수로 그를 죽이게 된다. 아타르가티스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바닷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게 된다. 이때 아타르가티스가 물고기로 변해 인어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도 널리 알려진 전설이다.
여타 인어와 관련한 전설은 그리스 신화나 아일랜드 전설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과 ‘세이렌’은 바다의 요정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인어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의 전설에 등장하는 ‘메로’라는 인물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캐릭터가 있는데, 부산 앞바다 동백섬의 인어다. 동백섬의 인어는 ‘나란다국’ 에서 온 황옥공주로 우리에게 전승된다. 황옥공주는 무궁국의 은혜왕과 혼인하였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진다. 여수 앞바다의 거문도 신지끼 인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우리나라 대표 단골 인어 중 하나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인어의 모습을 언급하면서도 우리는 가끔 인어를 ‘공주’ 혹은 ‘여성’으로만 한정시킨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남성으로 묘사된다. 세이렌의 경우에는 우리가 전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 그 자체다. 아일랜드의 메로는 특이하게도 여성과 남성 둘 다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산해경』 속 저인국의 인어는 트리톤과 같은 남성이다. 특이한 것은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해내남경海內南經」에는 저인국의 인어 아저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저인국이 건목의 서쪽에 있는데 그들은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이고 발이 없다(氐人國在建木西, 其爲人人面而魚身, 無足).”3) 저인국은 말 그대로 인어가 모여 사는 나라다. 저인국의 인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양의 인어공주처럼 소수의 예쁜 인어로만 묘 사되지 않는다. 저인국의 인어 아저씨는 일반적인 가정의 평범한 가장의 모습으로 형상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비단을 짜고 그것을 육지로 팔러 다니는 다양한 생계형 인어 말이다.
사실 『산해경』은 상고시대의 사실적인 백과사전쯤으로 분류된다. 후세 사람들은 이 책을 기이한 내용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책 속의 많은 이야기에 대해 독자 스스로가 내용의 사실 여부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의 영역이라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 라면, 이런 애매모호한 것들이 오히려 독자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 할 수 있는 OSMU의 주요소재가 되기도 한다.
3. 밈Meme과 리좀Rhizome
시조 문학의 다양성과 독자와의 소통을 가늠하는 자리에서, 뜬금 없이 중국 『산해경』 속 저인국의 인어 아저씨 이야기로 글을 도배하는 이유는 사실 단순명료하다. 대부분의 문학 텍스트가 디지털 문화로 확장되고 진화되는 이 시기에 시조 문학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이 시대에 대응해 왔고, 어떠한 내용으로 시조 문학의 위상성을 회복했는지에 대한 우문愚問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아둔하고도 범박한 문제의식은 넓게는 한국 문단 전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시조 문학 자체에 한정 지어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그동안 전통적인 시조 문학 텍스트를 독자가 어떻게 향유하고, 그것을 현대적인 관점에 맞게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는 사실 앞으로의 시조 문학의 미래를 담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정밀하게는 이제 시조 문학은 ‘개념’이나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시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산해경』의 인어 아저씨의 사례를 언급하고자 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챘겠지만, 저인국의 인어 아저씨는 디지털 문화 혹은 SNS가 활발하게 진행된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고 재해석된 대표적인 한류 문화 콘텐츠 중 하나이다. 2012년 가수 싸이는 자신의 6집 앨범 ‘싸이6甲(싸이육갑)’을 세상에 선보인다. 2년 만에 컴백하는 자리에서 그는 새 앨범 표지를 공개하였는데, 소위 대박을 터트린다. 물론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소비자를 한눈에 사로잡은 것은 앨범의 커버 이미지로 사용된 저인국의 인어 아저씨이다. 『산해경』의 인어 아저씨가 그대로 오마주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질문 하나를 던져볼 수 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 일’의 미국 진출과 성공 신화가 과연 우연에서 비롯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과거 많은 음악비평가의 입을 통해서도 진단된 바 있듯, 원천 소스 혹은 원작품의 활용이 디지털 매체 혹은 SNS나 대중매체를 향유하는 계층에서 얼마나 파급력을 갖는지를 알려주는 대표 사례 중 하나이다. 여기에 덧붙여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밈meme과 리좀Rhizome이다. 우선 밈은
“비유전적인 방법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문화의 요소 나 형태”로 요약된다. 생물학적 현상 중 하나의 핵심이 되는 복제자의 개념을 다양한 문화 요소에 적용하여, 문화를 전달하는 제2 의 복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기본적으로 밈은 문화진화론을 이루는 두 가지 하위 조류 중의 하나로 설명된다. 그만큼 밈의 현상이 주도하는 문화진화론에서의 입장에서는 문화를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큰 정보로 인식하기도 하며, 나아가 교육 및 모방 혹은 여타 사회적인 소통과 전달을 통해 다른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습득할 수 있는 다양한 자기 복제의 콘텐츠로 정의하기도 한다. 하나의 문학 텍스트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어떻게 확보하고 확장해 나가는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 는 사례이다. 따라서 밈은 한 사람이나 집단에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으로 전달될 때, 그 가치가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하게 된다. 어느 한 계층이나 부류가 그 텍스트를 단순하 게 장악하거나 소유하지 않는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도출시킨다.
밈의 현상은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 이후 찾아온 팬데믹 현상과 언택트Untact 현상 그리고 MZ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유튜브상에서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으로 K-pop을 선도하는 BTS(방탄소 년단)의 사례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적으로 집약해 낸다. BTS는 2016년 'WINGS'라는 앨범을 크게 히트시킨 바 있다. BTS는 SNS를 기반으로 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세계적으로 알린다. 이들은 단순히 아이돌 그룹만이 가진 스타성으로만 승부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시로 고전문학 작품을 읽고, 원작품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고, 나아가 이를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와 뮤직비디오 그리고 다양한 활동에 새롭게 접목한다.
BTS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속의 많은 내용을 자신들의 작품에 오브제로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BTS는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의 팬덤을 형성하고,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언급한 리좀rhizome의 개념을 자신들이 향유하는 문화 안에서 그대로 수용하고 실천해 낸다. 주지하듯 리좀은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탈 중심’, ‘저자의 죽음’, ‘상호 텍스트성’, ‘다원화’, ‘유동성’ 등의 다양한 개념을 포섭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문화 관념을 넘어 새로운 현상으로의 도약을 시도하게 만든다. 수직적이 고 획일적인 문화의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더 다양하고 개방적인 성격을 가지는 수평적 구조를 SNS의 문화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당긴 다. 이는 BTS 팬(아미)을 수동적인 팬(독자)에서 능동적인 팬(작독자)으로 변환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동시에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단순하게 향유하는 수동적 계층이 아니라, 창작자와 함께 문화를 재생산하는 문화 수행자의 역할을 톡톡히 부여하게 한다.
4. 시절의 노래 혹은 유행가의 부활
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 변하는 것은 늘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늘 변하지 않는다. 제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상황은 변하는 것도 변하게 하고, 변하지 않는 것도 변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의 실제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과 그 태도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시조 문학의 향유 방식이나 변화 요구도 마찬가지라 본다. 이는 이 른바 시절가조인 시조문학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가령, 시조를 한자로 표기하면, ‘시’는 ‘詩’가 아닌 ‘時’가 된다. 익히 알려 졌다시피, 시조時調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줄임말이기 때문이다. 문헌의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시조 사용의 첫 용례는 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 문집 『석북집石北集』의 「관서악부關西樂府」 15에서 발견된 다. 이곳에는 시조에 대해 “일반으로 시조의 장단을 배열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일세(一般時調排長短 / 來自長安李世春).”라고 표기한다. 이 후로부터는 ‘시조’라는 명칭이 종종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시조’라는 명칭의 원뜻은 시절가조時節歌調,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 라는 뜻을 담는다. 엄격히 말하면 시조는 문학 갈래 명칭이라기보다는 음악곡조의 명칭이었던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1920년대 후반 최남선의 「조선국민문학으로의 시조」를 필두로 전개되었던 시조부흥 운동과 더불어 문학 갈래의 한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시조가 ‘시절의 노래’, ‘유행가’라는 말은 엄청난 반성과 시조 문학 에 대한 그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톺아보게 된다. 시조는 현존하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서 문학적인 형식과 음악적인 형식 두 측면 을 모두 아우른다. 하지만 본래 시조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음악성을 저버리고 시조의 구조와 그 정형성만을 규정하려는 문학적 형식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가람 이병기는 1932년 발 표한 「時調는 革新하자」
4)라는 글을 통해 현대 시조의 새로운 혁신론 223 시선과 시선 4) 가람 이병기는 ‘시조는 혁신하자’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실감실정實感實情을 표현하자. 둘째, 취재取材의 범위를 확장하자. 셋째, 용어用語의 수삼數三. 넷째, 격조格調의 변화.다섯째, 연작連作을 쓰자. 여섯째, 쓰는 법 읽는 법.”(이병기, 「時調는 革新하자」, 〈東亞日報〉, 1932. 1. 23~2. 4)
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글은 가람이 시조 창작에 대한 방법론뿐만 아니라, 현대 시조가 어떻게 생활 속의 음악으로서 독자와 새롭게 소통하고 그 저변에 확대될 수 있을지를 고민한 흔적이라 판단한다. 물론 「時調는 革新하자」의 주요 쟁점은 시조 창작의 혁신에 기초한 게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가람이 궁극적으로 방점을 찍었던 지점은 결국 ‘현대의식의 부족’이라는 문제의식과 여러모로 상통한다.
그렇다면 가람이 말하는 현대의식의 부족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이미 지나간 과거 의식에 대한 대응 개념이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 낡은 의식에 대한 대응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5) 단순히 기존 전통의 시조 문학의 특징이나 형식만을 고수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가람은 그 당시에도 시조 문학은 끊임없이 자유시와 경쟁해야 함을 강조한다. 표면적으로는 자유시와의 경쟁을 지시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는 시조 문학의 형식을 보다 더 정교하게 회복하고, 오히려 더 유연하게 함으로써 개인 이 가진 진실한 감정의 표현형식(음악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한다. 바로 이 지점이 본래 시절의 노래였던 시조 문학의 재매개화, 재문맥화 혹은 밈의 가능성과 리좀의 확장 가능성을 다양한 음악적 특징으로 타진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5. 시조 문학, 다시 음악을 꿈꾸다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계층은 문화를 향유하고 전파하는 방식이 매우 분명하고 개성적이다. 이들은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5) 이재복, 「가람 이병기의 ‘時調는 革新하자’에 나타난 현대성의 의미」, 우리말글 Vol.52, 우리 말글학회, 2011, 317~318쪽.
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계층으로서 디지털 환경에 매우 익숙하 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특징을 지닌 세대에게 시조 문학은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결론지어 말하자면 본래의 유행가, 다시 말해 트랜디한 노래가 되어야 한다. 시절의 음악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문자 텍스트의 형식과 구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언제든지 시조를 향유하는 독자들이 싸이의 음악이나 BTS의 노래를 부르듯 시조 가락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시조가 옛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대중음악이라는 점을 요모조모 고려한다면, 이제라도 시조 문단에서도 시조를 통한 다양한 음악적 부활을 꿈꾸어야 한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가람 이병기, 「별」 전문
인용한 시는 가람 이병기의 시조 중에서 그나마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별」이라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가람의 이 작품을 시조의 장르로만 한정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대중이 부르는 노래 혹은 시절의 음악으로 더 잘 기억한다. 시조가 음악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정작 시조를 깊게 향유하는 우리는 그 중요한 지점을 자주 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부러 회피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로는 시조는 늘 음악이라고 하지만, 실제 대중과의 소통하는 자리에서는 시조를 음악과 분리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는 인식하고 있지만, 실천에서는 멀어진 계륵鷄肋 같은 존재로 말이다.
시조가 지닌 귀중한 전통음악으로서의 가치는 그 옛날에도 오늘 날에도 매우 소중한 원천 소스가 된다. 다만, 이 시조 문학에 대해 SNS를 주로 활용하는 젊은 세대까지도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는 OSMU의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가수 싸이나 BTS와 같은 예술가 뿐만 아니라, 평범하게 시조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들이 음악을 감상 하듯 시조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슈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트랜디한 문화현상으로 재매개화하고 재문맥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예술로 변용할 수 있는 그 통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이에 대한 처방은 어쩌면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것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시조의 절제된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서 자유롭게 음악과 다양한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다원 예술의 가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누군가 저인국의 인어 아저씨를 세계적인 음악적 소재로 활용하고 있을 때, 정작 시절 음악의 주인이었던 우리만 어리둥절하고 있기 전에 말이다.
김정배 2019년 제18회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평론 등단. 제1회 백인청춘예술대상 수상. 인문밴드레이의 멤버이면서, ‘오른손잡이지만 왼손 그림’ 작가로 활동 중. 원광 대학교 융합교양대학 조교수. 시평집 『나는 시를 모른다』. 비평집 『라그랑주 포인트 에서의 시 읽기』. 포토 포엠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하루』 『사진이라는 문장』, 왼손 그림 시화집 『이별 뒤의 외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