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매력에 푹 빠지다
1. 학창시절 즐겨 암송했던 고시조
시조時調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전통성을 유지하며, 생명력을 지녀왔다. 시조가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이라는 일설도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와 고전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고시조를 많이 암송한 편이었다. 종이쪽지에 적어 수시로 즐겨 암송하였다. 그러다 보니 시조를 좋아하게 되었고 시조 감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암송한 고시조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시조가 생각난다.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연시조 「조홍시가早紅 歌」이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ᄂᆞ다.
유자柚子 안이라도 품엄즉 도 ᄒᆞ다마ᄂᆞᆫ
품어 가 반기리 업슬ᄉᆡ 글노 설워ᄒᆞᄂᆞ이다.
—박인로 「조홍시가」 부분
시조의 매력에 푹 빠지다 이 시조는 읽을수록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지극한 효심이 드러난 작품으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노래한 고시조이다. ‘풍수지탄風樹之嘆’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지금도 이 시조를 읊조리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의 「다정가多情歌」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 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다정가」 전문
봄밤의 애상적인 정감을 노래한 시조다. 문신 이조년李兆年이 쓴 사랑의 시다. 사대부가 이런 애틋한 사랑의 시를 썼다는 것은 놀랍다. 또는 이 시조를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성주星州에서 만년을 보낼 때 임금을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다.
대학 시절에는 ‘시조론’ 강의를 들으며 시조에 대하여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시조론’ 강의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공부했다. 그리고 모산 심재완 교수님의 편저인 『고시조 천수선古時調千首選』을 읽고 감탄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심재완 박사님을 존경했고, 교수님의 강의에 흠뻑 젖기도 했다.
2. 시조를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
나는 학창시절부터 시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이후 시조가 좋아서 시조 속으로 들어가 보석을 캐기도 했다.
첫째, 시조는 '전통'을 중시한다. 시조의 형식 중 종장의 첫 음보(첫 구) 3음절은 정형으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물론 기본적인 율격도 지켜야 한다. 이와 같이 시조는 일정한 형식을 유지하면서 민족 정서와 삶의 애환을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어 좋다. 시조의 존재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시조의 매력은 종장에 있다. 종장 3음절의 얽매임이 오히려 창의력을 더해준다. 종장은 긴장과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중요하다. 시조는 절제미와 압축미가 드러나서 좋다. 시조는 감춤의 미학이다. 이는 시조가 지닌 매력이요 시조의 참맛이다. 그래서 나는 시조를 좋아한다.
셋째, 시조는 간결하면서도 폭넓은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어 좋다. 정갈함에 친근감이 더 간다. 일정한 운율과 리듬이 있어 좋다. 시조가 지닌 형식 자체가 좋다. 자유시를 닮아가는 듯하면서도 시조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어 좋다. 그리고 시조를 읽을수록 새록새록 즐거움도 솟아난다. 마치 입맛이 다셔지는 맛깔스럽고 정결한 음식 같다. 어떤 시인은 시조의 형식적 제약 때문에 싫다고 한다. 답보적踏步的이 라고 한다. 그래서 “시조보다 자유시 창작을 선호한다”고 한다.
3. 현대시조에 대한 나의 소박한 생각
현대시조는 전통성의 현대적 발현에 대한 생산물이다. 정형시로 서의 운율을 지키면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자유시 같은 시조도 읽어 본 적이 있다.
요즈음, 서민들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현실 의식을 반영하는 작품이 발표되고 있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쓴 시조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정서와 현대인이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 시적 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 의식이 나타나야 ‘좋은 시조’라고 볼 수는 없다. 표현방법 및 주제의식이 더 확장되면 좋다.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는 자유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의 진솔한 소견이다.
현대시조는 끊임없이 보편적 인간성을 추구하며 미의식의 공감대 를 형성해야 한다. 형식적 제약을 유지하면서 자유로운 시상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독자층의 미적 감각을 다양하게 수용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이 봄날 ‘시조의 매력에 푹 빠지다.’ 이것이 나의 소박한 생각이다. 끝으로, 이호우(李鎬雨, 1912∼1970) 시인의 「개화開花」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 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이호우 「개화(開花)」 전문
이 작품은 1962년 5월 《현대문학》에 발표한 것으로, 이호우 시인의 대표작품이다. 필자가 애송하는 시조이기도 하다. 생명 탄생의 신비, 생명의 존엄성, 자연의 신비에 대한 감동과 희열이 드러난 작품 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는 좋은 작품이다.
이유환 1985년 《현대시학》 추천 등단. ‘대구문학상’ 수상(2021년). 대구문인협회 부 회장 역임.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시집 『異邦人의 강』 『용지봉 뻐꾸 기』 『달의 물방울』.
첫댓글 오랜 산고를 통해 출산한 글 !
자식 같기에 소중합니다.
말 안 듣는 자식은 이리저리 훈계에
어쩔 때는 속상한 매질까지 하곤 합니다.
그래도 내가 출산한 자식이기에 밉든 곱든 가슴으로 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