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시간 외 2편
이정은
무반주 새소리에 일상을 제치고
6월 어느 아침을 서둘러 해산한다
농익어
빛나는 나무
자석처럼 끌린다
듬직한 기둥에 움푹 파인 물결무늬
지나온 행적이다
많이 아팠니
아니야
이젠 괜찮아
이렇게 열매 맺잖아
맨 처음
완벽하리라
아니었어 그 자리서
수 계절 버텨내며 삭이고 있었어
담홍빛
툭, 떨군 살구 한 알
환해진다 지상 한켠
마인드 컨트롤
파열음이 들린다 누굴 향한 질책일까
소리를 잠재우러 도서관에 발길 돌려
미친 듯
책을 집어삼킨다
활자의 목마름인가
고립된 사각 틀은 불길을 제어하고
무언의 시위는 마비된 뇌 지배한다
오롯이
안을 들여다봐
조각들이 자글댄다
차오른 불협화음 허한 속 들끓다가
갈피 내면 소리에 서서히 무너질 때
겨우내
꼿꼿이 날 선 솔잎
봄 햇살에 곁 내준다
유리컵 속의 사랑
양파 속 초록 싹이 암팡지게 올라온다
연한 속살 헤집고 햇빛을 방향등 삼아
창가에 오롯한 잎새
싱그럽다 오월처럼
남은 양분 한껏 빨아 다디단 물이 올라
심지가 박혀오고 봉오리 맺을 동안
겹겹이
감싸고 있다
쭈그러든 어미
주고 또 퍼내 줘도 매양 모자란 사랑
내어 줄 준비 하며 물커덩 비어있는
맨 밑에
빈 둥지 같은
실뿌리만 하얗다
사고의 확장과 따뜻한 시선으로 쓰고 싶어
국수를 삶다가 받아 든 낯선 전화, 반가운 수상 소식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아서 촌스럽게 몇 번이나 되물었다. 신인상 공모에 원고를 보냈을 때 ‘고맙습니다’라는 답 메일에 《시조미학》이 참 따뜻한 곳이구나, 나도 일원이 되고 싶었다.
몇 년의 습작 기간은 나를 찾는 시간이었다. 마음이 허할 때 찾곤 하는 도서관, 그곳에서 활자를 마주하며 꿈을 키웠다. 현대시조를 공 부하면서 시조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었다. 자유시처럼 자유롭되 정형화된 틀에서 함축미와 사유를 담는 세련된 멋이 있다. 22학번 새내기 시조 작가로 첫발을 딛는다. 사고의 확장과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 늘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싶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문학의 길을 바르게 이끄는 구심점인 스승님, 은발을 멋지게 휘날리는 문우들, 항상 나를 응원하는 친구들, 상 탔다고 좋아하는 우리 엄마. 그리고 두말없이 엄마 글 쓰라고 컴퓨터를 양보하는 아이들과 무던한 남편. 모두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정은
파주문인협회 회원 파주 시민・학생 문예창작 공모전 대상 제14회 전국가람시조백일장 차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