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좋은 날 여수와 함께
조정자
잦은 봄비가 내리면서 아침과 낮의 기온차가 양극을 달린다. 문학기행이 있는 날이다.
1년에 두 번! 아들의 어울한마당과 겹치는 일이어서 고민을 아침까지 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내 것으로 만들자! '라는 생각이 똘똘 뭉쳐지자, 깨어나는 아침이 밝아졌다.
8시 50분까지 가려면, 집에 있는 남편과 아들의 아침과 점심까지는 준비를 해놓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몸이 바쁘게 움직여졌다.
역에 도착하니 그래도 시간 전에 도착을 해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여수는 내 기억에 두 번째 만남이 되는 것 같다. 큰아이 7살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26년 전 향일암 일출을 보았던 기억이 아득하게 수채화처럼 문득 지나간다. 선생님들께서 오시기 시작하고, 박스에 담긴 음료와 과자류도 함께,
여행은 늘 설렌다. 그것도 기차여행은 더더욱!
KTX 순천행 기차에 탑승을 했다.
나의 옆좌석 선생님은 이 시인님으로 온화하신 성품과 더불어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신 분으로 문학기행 중 나를 깨우고 새로운 문학 이정표를 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오고 가는 기차여행이 나에게 열린 문학의 장으로 다가온 것이다.
행운이다!
여수역에 도착했다.
여수는 바다와 늘 함께여서인지, 시간이 흘러도 그 모습 그대로 동안이다. 나는 세월 속에 염색약에 의지하며 흰머리 감춘 이순의 여인이 다 되어 다시 찾았다.
기억 속 여수는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풍광이 또다시 가슴을 뛰게 한다.
아무튼 집에서 나와 여행이라는 시간 속에 빠져들면 나이도 잊고 소속도 잊어버리고 나만 살아있다.
우리는 3팀으로 나누어 택시를 타고 오동도로 달렸다. 여수 길은 언덕 길이 많아서인지 뒷좌석 가운데에 앉은 나는 매번 좌충우돌이다. 그래도 앞좌석 뒤에 손잡이가 특이하게 눈에 뜨였다. 이곳 지형을 생각하고 기사님이 승객을 배려한 마음이 걸려있는 듯 든든하게 잡고 갈 수 있었다.
오동도 입구에 도착했다. 좀 멀리 오동도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한 달 전 붉은 꽃 붉게 물들어 꽃망울 뚝뚝 떨구어 버렸을 터, 이제는 그 흔적조차 없어 아쉽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이곳을 지나치면 다녀갔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오동도가 속삭이는 동백 이야기이며 겨우내 다녀간 바람 소식까지 들을 수 있어 여수에 발 디디고 서있는 순간이 실감이 났다. 시인들이 노래하는 여수와 바다와 바람도 같이 들을 수 있었다.
오동도의 봄
마경덕
햇살이 멸치 떼처럼 튀어 오르는
여수의 바다는 은빛이다
은사를 목에 두른 봄바람이
먼바다를 건너오면
태풍에 머리 감은
기름진 동백은
쪽을 찐 여인처럼 눈부시다
입술 붉은 꽃을 머리에 꽂고
이곳에서 길을 잃어도 좋겠다
어둑한 시누대 숲 허리춤을 붙잡고
섬이 운다
꽃그늘에 묻혀
사나흘
가버린 사랑을 앓아도 좋겠다
*마경덕시인의 '오동도의 봄' 전문
바다의 윤슬과 바람과 붉은 동백에 흠뻑 취한 시인의 모습이 느껴진다.
나무 한 그루에 한두 송이 동백이 우리를 여태 기다렸던 것인지, 붉은 동백은 목이 길어진 모습으로 우리를 마중한다. 반가움에 때늦은 동백꽃을 누군가가 늦 동이라고 말하자, 이 시인님은 시적 표현이라고 반색을 하시며 무심한 나를 흔든다.
아쉬운 오동도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4인조 한 팀으로 택시를 타고 여수 거리를 가르며 손가락 안에 든다는 맛집 한일관에 도착했다.
건물의 규모도 크고 정갈한 식당은 많은 손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들이 잘 나누어져 있어서, 여유로운 가운데 계속해서 바뀌어 나오는 해산물 멍게 새우 연어 회 등등 ......, 먹거리 향연에 흠뻑 빠져들어 맛볼 수 있었다. 연이은 시식은 바닷속에 빠져들어 그들을 만난듯했고 든든한 포만감으로 오후 한나절 나른한 봄기운에 긴장이 풀린듯했다. 그래도 다음 여정인 케이블카를 타러 돌산공원으로 씽씽 달려가야 한다.
돌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까까지른 절벽은 아니어도 만만찮은 마중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케이블카에 6명이 조를 이루어 탑승을 했다. 둥 떠가는 듯한 느낌 그대로 느껴졌다. ㅎㅎㅎ 입가에 함박웃음은 절로 피워나고, 여수 전경은 파노라마처럼 내 주위를
흐르고 있었다. 탁 트인 푸른 풍광이 내 눈과 가슴으로 밀물처럼 쏟아진다. 지금 순간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나와의 인연들 생각 밖으로 서성이고, 혼자서 팔딱거리는 나만 있었다. 언제라고 이런 순간들이 곧잘 찾아왔겠는가!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기회이어서, 순간이 더 반짝거리는지 모르겠다.
오래도록 또 내 한켠에 자리 잡고 앉아 나를 안위해줄 풍경!
여수와 바다는 베프가 틀림이 없다.
인증샷으로 여수에게 엄지손가락을 쑥 내밀어본다.
뒤쪽 돌산공원으로 나와서 벤치에 앉아, 바다에 기대본다. 무릎이 아파 힘들어하시던 이 시인님도 김 선생님 권유로 다리를 뻗고 바다를 베개 삼아 눕는다. 후미진 곳 고양이 처소에 고양이도 누워 실눈을 그리고 있었고, 나와 김 선생님은 바다가 내준 커다란 쉼터에서 김 선생님의 마을 원두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선생님 근처에 산다는 원두! 선생님께서 시내 나가실 적 눈 쌓인 길을 따르며 배웅 나와서 선생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는 원두의 이야기에,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아련하여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수필가이며 동화 작가인 김 선생님의 마음속에 역시나 생각 생각이 동화처럼 아름다웠다.
아마도 해가 바뀌어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레 먹는 나이를 선생님은 나이를 점령하게 되실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는 곽 선생님의 말씀처럼 여수가 듬뿍 내어주는 햇살을 먹어서인지 나도 멸치 떼처럼 팔딱거린다.
돌산공원에서 다시 다음 마지막 여정인 역 근처 전망대에 올라 커피를 마시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루 여정 길 피곤함을 풀어볼 참이다.
다시 택시에 탑승해서 역방향으로 달렸다. 시간이 지나니 여수가 어깨동무를 해온다
다음에 만나면 모른 척, 처음인 척하지 말란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20층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와아아~~" 탄성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여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빙그르르 둘러쳐진 곳에서 차를 마실 수 있게 의자와 테이블이 편하게 쉬고 있었다. 원래 시멘트 저장고를 예술적으로 리모델링 해서 지금의 스카이타워를 만들었다고 한다.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
여행길 조금은 지친 기운을 풀어주었다. 한쪽에 투명 유리로 20층을 가늠해 볼 수 있도록 바닥에 설치된 곳이 있었는데, 이곳을 몇몇 분들은 잘 걸어가시는데, 나는 생각 생각에 두려움은 커져 한 쪽 발만 슬그머니 내어보다가 다시 빼고 만다.
' 아찔하다.'
그래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해놓았을 터인데, 보이는 높이에 지레 겁을 먹는다.
우리일행은 저 멀리 여수바다를 배경삼아 여수세계엑스포박람회 마스코트인 *여니와 수니 옆에서 찰칵!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다. 손을 흔들어본다.
여수 바다도 같이 흔든다.
다음에 올 때는 여수와 친구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자라났다.
무궁화호에 탑승을 하고 한바탕 좌석의 혼선에서 벗어나, 이제 집으로 가는 좌석에서
아직도, 바다 내음 출렁이는 여수를 행복하게 안고 갈 수 있었다. 생활에서 늘 깨어있는 모습으로 공부를 하고 시를 쓰시는 이 선생님의 시, 서너 편을 들으며 갈 수 있어서 더더욱 금상첨화였다.
5시 40분 남원역에 도착.
우리는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를 하고, 각각이 흩어져 집으로 향했다.
나는 김시인 님의 배려로 같이 동승해서 이팝나무 흐드러져 날리는 남원 시가지를 달리며, 생각밖에 두었던 인연들을 다시 떠올리며 집으로 향했다.
* 여니와 수니 : 여수세계엑스포박람회 마스코트이며,
100년 미래세계에서 온 인류의 희망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