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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이 작품을 낳는다 - 안유환
예술이 왜 필요한 것인가? 인간이 생각한 것을 그대로 펼치고 꿈꾸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다면 예술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볼 수 없고, 계획한 것이 불가능의 벽에 부딪치면서 인간은 문학과 예술을 창안해내었다. “인생이 유한하고 역사에 불가능이 있는 동안 예술은 인간에게 필수의 위안이며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억압 없는 행복임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환상이라는 형태로 이 불가능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행동이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말이다. 성취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정신이 인간을 예술의 세계로 이끌었다.
문학인의 시선은 높은데 보다는 낮은데 머물고 승리자보다는 실패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병주는 “역사는 결과에 중점을 두는데 반해 문학은 과정에 무게를 둔다”고 전제하고 “역사가는 성공자와 승리자에게 중점을 두지만 문학은 좌절한자, 패배한자를 중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역사가는 나폴레옹을 기록하지만 문학인은 장발장을 등장시킨다.”고 말했다. 문학은 실패를 딛고 성공의 자리로 진입하거나 좌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 문학은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마침내 성취감과 함께 위로를 얻게 한다.
한편의 수필을 쓰는 것도 일이 술술 생각대로 풀려나가면 그것은 좋은 글이 되기 어렵고 그런 것을 소재로 글을 써놓아도 무언가 물에 물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불가능이 예술을 탄생시키듯 어렵거나 일이 꼬일 때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탄생한다. 작가에게도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는 필연적으로 많이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만난다. 일상에서 새로운 발견을 형상화하면 그 글은 잠자는 독자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 것이다.
「폭염특보가 내린 날」 − 김옥선
“하필이면 폭염특보가 내린 날 에어컨이 고장 났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가장 손쉬운 AS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의 AS는 ‘수준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고장을 신청하면 친절히 접수하고 차례를 따라 언제쯤 기사를 보내겠다는 자상한 대답이 나온다. AS를 하고나서도 결과를 점검하는 전화를 해오고, 어떤 때는 며칠 후에도 손을 본 것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꼭 필요할 때 AS는 제구실을 못했다.
화자는 전화번호를 누르고 또 눌러도 “한나절 내내 허탕을 쳤”다는 것이다. 고장 난 에어컨에서는 걸레로는 해결이 안될 만큼 많은 량의 물이 방안으로 흘러나왔다. “들일 갔다가 땀범벅이 되어 돌아와 에어컨을 틀자 소파 밑으로 가구 밑으로 까지 물이 스며들어 AS는 한시가 급한데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 회사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일류전자 회사임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었다. 혼자서 항의도 하고 불평도 늘어놓았으나 오히려 고객을 더 번거롭게 할뿐 도무지 통하지 않았다.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답답할 때 ‘그 사람’ 생각이 났다. “이럴 때면 유난히 손재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잘 고치던 그 사람이 생각나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리움이 몰려들어 온 몸에 힘이 쑥 빠진다. 한숨 섞인 넋두리를 하자니 설움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그 사람’이 독자의 눈에는 먼저 간 부군처럼 보인다. 혼자서 어려움을 당하다보니 그가 더욱 그리워지고 설움이 복받쳐 오른다. 에어컨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누구든지 흔쾌히 AS기사를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이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철물점에 가서 필요한 부품과 기구를 구입하고 에어컨 덮개를 떼냈다. 땀은 팥죽같이 흐르고 모기들이 물어뜯기까지 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혼자서 어찌어찌 애를 써서 공사를 마쳤다. 에어컨을 켜니 물도 정상으로 바깥쪽으로 빠지고 시원한 것이 내 세상 같았다.” 아마 화자는 이쯤에서 굉장한 성취감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저녁때는 낮에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말을 들은 아들이 직장에서 퇴근을 하고 달려와서 말했다. “엄마, 이제 수리공으로 나서도 되겠네요.” 칭찬과 함께 어머니를 위로했다. 화자는 아들이 사온 시원한 수박을 나눠 먹으며 아마 혼자서 에어컨 호스를 수리하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웠으리라. 그리고 아들을 보는 순간 하루 종일 힘들었던 일은 한순간에 가시고 듬직한 아들 얼굴을 한 번 더 보게 되어 마음이 뿌듯했음을 토로하고 있다. 어머니는 사랑스런 아들의 모습에서 ‘그리운 그 사람’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점은 ‘그 사람’에 대한 일화가 한 토막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안하다, 경자야」 − 박선자
본의 아닌 실수나 실패의 경험은 어떤 상황에 처하면 아픈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화자는 고등학교 동기생인 친구에 대한 오해와 무지(무관심)로 뜻밖의 상처를 준 것 때문에 졸업 후 수십 년이 지나고도 마음속에 불편함을 안고 살아왔다. 얼마 전 목적지가 부여인 부산문인협회의 봄 문학기행에 참여하면서 화자는 오랜만의 봄나들이에 한껏 기분이 고조되어있었다. “부여의 백마강 강둑은 활짝 피어 눈부신 벚꽃 길이었다. 출발할 때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도착하니 날이 개었다. 부산의 벚꽃은 이미 떠나버렸는데, 백마강변의 벚꽃은 미치도록 살랑거린다. 살랑대는 환한 세상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처럼 아름다운 봄의 정취에 젖어있는 화자에게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별난 추억’이 떠올랐다.
“2학년 때 한반이었던 경자와 나는 부여로 가는 수학여행에 기차를 놓쳐 가지 못했던 별난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집은 동래 온천장이었다. 1960년이었으니 교통편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 부산역까지는 엄청 먼 거리였다. 부산역 안은 처음 들어가 보는 시골뜨기였다. 서울까지 밤기차로 12시간이 걸렸던 시절이다. 간신히 기차역에 도착하여 헐레벌떡 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가니 저만치서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며 떠나고 있었다.”
화자는 떠나가는 기차 안에서 친구들이 아쉬운 듯 손을 흔드는 것을 황당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등 뒤에서 누가 불렀다. 그는 평소 학교에서 ‘지각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친구 김경자였다. 기차를 놓친 친구가 또 한사람 더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으나 속으로는 ‘니 또 지각했네.’라면서 무시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학여행을 못가는 학생들은 등교하여 반나절 수업을 받아야 하기에 화자는 학교로 갔으나 친구 경자는 어디로 갔는지 학교에는 오지 않았다. 선생님께는 “김경자도 기차를 놓쳐서 못 갔는데 왜 등교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졸업 후 10여년 만에 대전에서 가진 1박2일 동기회에서 그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경자는 뜬금없이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던 이야기를 방안의 여러 친구들 앞에서 늘어놓았다.
“경자는 큰 소리로 그때에 설움 받았던 콩쥐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머니가 계모였고 아침에 동생들 뒷바라지며 집안일을 하고 등교를 하면 항상 지각을 하였단다. 겨우 허락을 받은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대구에 있는 결혼한 언니네로 가서 지내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에 맞추어서 집에 들어갔더니 나 때문에 다 들통이 나버렸다. 꾸지람만 아니라 매까지 맞았다 했다. 나는 경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미안하고 지각대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지만 달리 해줄게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는 아랑곳없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히고 한편으로 무시하기도 했던 경자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 친구도 ‘부여’라는 말만 들으면 기차를 놓쳐 못 갔던 수학여행을 생각하고 아직까지 나를 원망할까!” 어려운 친구를 제때 돌아보지 못한 마음은 영원한 빚으로 남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미안하다”는 말 밖에 더 할 것이 없는 친구의 아픔을 화자는 아직도 자기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이 아니었지만, 내가 쉽게 전한 말 한마디에 누군가가 오랫동안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은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알 때도 있다. 그러면 정말 안타깝고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학교로 돌아오다」 − 장원도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에 다닐 때는 방학이 기다려지고 한 번씩 돌아오는 공휴가 즐겁다. 그러나 공휴와 방학이 연중 계속된다면 좋을 리 없다. 평생을 직장에서 일하다 퇴직을 하게 되면 우선 그 자유가 반갑기 그지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마음껏 주어지는 자유는 참으로 고맙다. 화자는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새로운 의욕에 차서 도서관으로, 주민 센터로, 문화원 등으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보고 싶은 책도 많았고 배우고 싶은 강좌도 많았다. 때로는 봉사활동에 신이 나서 달려갔다. 대개 그렇게 하듯이 외국여행도 몇 차례 다녀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유가 주는 즐거움은 점차 강도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퇴직을 하고 4년이나 ‘자유’를 만끽했으니 싫증이 날 때도 되었다.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을 즈음에 퇴직 교직원을 대상으로 주어지는 교육활동 지원사업을 알게 되어 <아름다운 교정 가꾸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복습이란 허용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면 이전보다는 그 일을 더 잘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화자에게는 떠나온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꿈같은 기회가 주어졌다. 비록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직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교정을 밟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기쁨이 넘쳤다.
“지난 삼십여 년 동안 밥 먹듯이 오가던 학교를 다시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상관없었다. 그것은 시간이 가져다준 대단한 변화였다. 학교에 근무할 때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야할 대상이었다. 수업 중이나 일과 중에 딴 짓을 하거나 지도를 따르지 않는 학생이 있으면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아 혼을 내기도 했다. 문제의 해결방안을 학생 편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갈등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학교의 정원이나 화단을 눈여겨본 적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수업하고 학생지도하고 공문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만이 그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퇴직교사의 시각은 달라졌다. “이제는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어떤 나무가 심어져있는지 어떤 꽃들이 피었는지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정원의 풀도 뽑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꽃을 피우는 풀이 아닐까 내심 고민하기도 한다.······콘크리트 틈이나 벽돌 틈새 사이에 뿌리를 내려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풀을 뽑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함께 하는 일에는 경험이 많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좋은 동료를 만났다. 그분이 간식까지 싸와서 휴식시간에 나눠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소풍을 나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나 많은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를 새삼 깨닫고 있다. 향나무 전지작업을 할 때면 그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은 화단의 꽃처럼 예쁘다. 퇴직교사는 아이들을 위해 다시금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작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
화자인 퇴직교사에게는 기회가 주어지고,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게 되었고, 좁았던 시야도 크게 넓어졌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삶을 새롭게 살고 있다. 어쩌면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 주는 감동의 강도는 약한 편이다. 그것은 어려움과 좌절을 겪는 과정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퇴직 4년차 말미에 겪은 괴로움과 외로움, 무한한 자유가 주는 즐거움이 점차 줄어들 때의 고충을 형상화했더라면 더 큰 울림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으며 <아름다운 교정 가꾸기> 지원사업을 알게 된 과정이나 배경도 좀 더 확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무리
명작의 ‘고향’을 답사하거나 이름 있는 작가들의 인생 얘기를 들어보면 아무 일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찾아보기 힘 든다. 오히려 아픔과 괴로움에 시달린 사람들이 많다. “고뇌하지 않고는 영혼이 맑아질 수 없고 발견법과 명상법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먹구름 속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는 시간이 지나가야만 청명한 하늘이 나타난다. 삶의 고뇌와 뭇 사물과의 만남에 있어서 의문점과 부딪쳤을 때는 고통과 시련이 따른다. 고뇌하지 않는 삶은 훌륭한 인생일 수 없고, 고뇌하지 않고는 좋은 수필을 얻을 수 없다.” 수필가 정목일의 말이다. 고뇌는 괴로울 때 생겨나는 정신적 현상이다.
어려움은 언제나 뜻밖의 상황을 연출한다. 흐르는 개울물이 장애물을 만날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흐르듯이 꽉 막힌 자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을 할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어느 단계의 경지에 도달하면 잘 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어렵다는 호소를 할 때가 있다. 절망하거나 낙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고비가 더 새롭고 차원이 높은 단계에 오르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작가들이 때때로 당하는 어려운 일들이 좋은 글을 만들어낸다. 삶의 어려움이 작품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