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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일본에 배상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며 승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양국간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한국 측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요구’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본이 ‘양국간 합의’를 내세우는 것은 지난 2015년 박근혜 정권이 집권하던 당시 피해 당사자와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련 재단을 설립하여 배상이 아닌 지원금의 형태로 일본 정부가 마련한 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뜻한다. 더욱이 이러한 밀실 합의를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이후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행한 불법적 행동에 대해 피해자들이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합의의 내용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피해자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재단의 설립과 ‘배상이 아닌’ 지원금의 지급은 더욱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정권이 교체된 이후 재단은 끝내 해체되었다. 한국에서 제기한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이 확정되었음에도, 박근혜 정권과 사법부가 시간끌기로 일관하여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남아 있다. 추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배상 판결이 내려지면서, 여전히 일본의 책임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면서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일본과의 일방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치욕적인 친일외교’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에서 열린 배상판결 이전에,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했던 소송의 과정과 결과를 담아낸 결과물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소송을 제기했던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일본인들의 활동을 토대로 하고 있다. 부산(釜山)과 시모노세키(下關)의 지명 하나씩 따서 일본의 활동가들은 이를 ‘관부(關釜) 재판’이라 부르고, 끝내 일본에서 패소판결을 받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위안부 재판을 다룬 영화 <허스토리>에서, 당시 상황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인 전체를 한국에 적대적인 입장으로 그려놓고 있다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일본에 여전히 ‘혐한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지만, 적어도 재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자들을 도왔던 일본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라도 이해된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하나후사 부부는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피해자들이 일본에 도착하면 숙식을 제공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지원하는 모임을 조직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일제의 침략 행위를 옹호하고 독립 운동가들을 비난하는 패륜적인 이들이 있는 반면, 일본에서도 과거의 군국주의에 대해 반성하고 피해자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일본인들을 일본의 입장에 동조하며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행태로 묘사하고 있기에,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던져주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것도 결국 영화에서 제대로 그려지지 못한 피해자들을 돕는 모임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가장 컸을 것이라고 하겠다.
피해자들은 전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한때 지방법원의 1심에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는 ‘일부 승소’의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 판결을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단 한 번의 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2심과 3심으로 이어지는 후속 재판에서 패소하여, 끝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일본 정부의 책임은 인정하되 법률적 미비로 인해 배상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판결이라, 이들은 재판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관련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정치인들을 찾아가 호소하고 때로는 압박하는 등의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우경화되면서 극우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이로 인해 관련 법률의 제정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현재의 한일 관계로 본다면, 이들이 희망하는 법률은 가까운 시일 안에 결코 제정되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이른바 ‘관부재판’이 제기된 지 30여 년이 흘러 이제는 소송 당사자였던 피해자들 대부분은 끝내 마음에 맺혔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웃 나라인 일본과 외교 관계는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과거의 굴욕적인 역사를 부정하고 일방적으로 일본에 굴종하는 모습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저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피해자 개개인의 존엄이 회복되’는 내용의 조치가 시급히 이뤄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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