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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수많은 시들이 창작되고, 그에 못지않게 그 작품들이 시집들로 엮어져 출간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문학지에 수록된 시들이 난해하게 느껴졌고, 그로 인해 새로운 시를 찾아 읽는 일을 포기했던 것 같다. 현대시가 전공이 아닌 이상, 새롭게 쏟아지는 작품들을 찾아 읽을 의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던 중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쏟아지는 21세기의 시들의 한 경향을 접할 수 있었다. 낯익은 시인들의 이름도 등장하지만, 태반은 처음 접하는 이름달과 작품 경향이었다고 하겠다. 여전히 난해하게 다가오는 시집들을 애써 찾아 읽지는 않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경향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고자 한다.
책의 제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저자는 ‘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찾아서 읽고, 시인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을 모아 엮었다. 물론 시만이 아니라 모든 글이 ‘몸’으로 스여진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저자는 단지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통해 ‘몸’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형상화한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조금은 낯선 시각을 애써 설명하고자 저자는 서문에 해당하는 ‘책 머리에’라는 글부터 마치 장편의 평론 혹은 논문처럼 상세하게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1부의 첫 번째에 배치된 ‘그로테스크와 카니발’이라는 글에서, 나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한 시인의 작품을 그러한 관점에서 평론하고 있다.
저자는 21세기 한국 시들을 평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을 빌어 작품을 논하는 전제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상학이 자주 언급되는 논거이며, 그밖에도 들뢰즈와 바디유는 물론이고 루카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들이 저자의 글속에 소환되고 있다. 정직하게 고백하건대, 그들의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이나 그것을 통해 작품을 설명하는 내용들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들의 이론을 빌지 않고서는 평론을 할 수 없다는 자세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그러한 저자가 이론들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음을 굳이 밝히고 싶다. 낯선 경향의 작품들 만큼이나 책에 소개된 철학적 사유와 작품 해석의 준거들이 나에게는 그리 적절한 방식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고 하겠다.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언제부턴가 문학평론을 일부러 외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전체 4개의 큰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항목들은 저자가 세운 기준에 의해 배치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1부와 2부가 주로 시인의 시집 혹은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잇는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평하는 글로 묶여져 있다면, 3부 역시 그러한 연장선에서 ‘몸’이라는 기획 의도에 겆믖은 시인들의 작품이나 시집에 대해서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4부는 다양한 시인들의 작품들을 엮어서 하나의 주제로 논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평론과는 달리 각주를 단 논문 2편과 성석제의 소설에 대한 글은 책의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수록된 것처럼 이해되었다. 어쨌든 저자가 바라보는 최근 시단의 경향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책을 읽은 나름의 성과라고 여기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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