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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에 정착한 이후에, 바로 인근에 있는 벌교를 찾을 기회가 자주 생겼다. 벌교를 대표하는 음식이 ‘꼬막’이라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벌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하소설로 역시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지난 2007년 ‘태백산맥문학관’이 건립되고, 그 이후 벌교를 찾는 이들은 한번쯤 방문하는 장소로 통하고 있다. <태백산맥>은 해방 직후 좌익과 우익의 이념 대립을 중심축으로 설정하여,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흔히 ‘여순사건’으로 불렸던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태백산맥문학관은 작품의 주요 배경이기도 제석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고, 벌교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2층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전시실과 도서대여실 등이 있으며, 문학관의 우측으로는 작품의 주요 배경인 ‘현부자집’이 있다. 그리고 문학관이 건립되면서 현부자집 인근에 무당 ‘소화의 집’을 아담하게 지어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작품의 내용을 떠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천을 건너면 벌교 읍내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곳 역시 ‘태백산맥 문학 거리’가 조성되어 곳곳에 작품과 관련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 찾는 이들도 안내 표지를 따라 문학관과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장소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태백산맥문학관’이 조성되기 이전에 배경이 되는 장소를 돌아보며, 벌교가 태백산맥 답사지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아마도 저자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대중들의 관심이 모아졌고, 그 결과 문학관이 건립되고 ‘문학거리’가 조성되는데 기여하게 되었다고 이해된다. 저자는 가장 먼저 순천에서 벌교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진트재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지금은 2호선 국도가 가로 놓여 자동차로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지만, 원래는 좁은 옛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야만 했다고 한다.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정하섬의 발길을 따라 진트재에서 출발한 저자의 여정은 산길을 따라 소화의 집터와 현부자네 별장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문학관이 생기기 이전 소화의 집터는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던 모양인데, 저자가 ‘슬픈 사랑의 은신처’라고 명명한 소화의 집은 현부자네 별장의 우측에 ‘초가삼간’으로 새롭게 지여졌다.
각지에서 사람을 모아 거대한 뻘밭을 가로막는 사업을 벌인 일본인의 이름을 딴 ‘중도방죽’과 뭍에서 바다로 흐르는 하천을 가로지르는 철다리는 소화의 집과 읍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와 함께 작가인 조정래가 어렷을 적에 잠깐 살았던 ‘조정래 생가’와 서민영과 이지숙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야학 교회’ 그리고 일본의 연호인 소화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소화다리’ 등으로 저자의 기행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벌교 읍내를 자세히 훑으며, 율어와 낙안을 거쳐 여전히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절 ‘선암사 길’로 접어든다. 작품의 배경으로서 선암사의 풍경을 소개하고, 순천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쌍암장터’에서 저자의 기행은 마무리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태백산맥 기행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빨치산 투쟁이 이뤄졌던 지리산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 문학관이 건립되기 이전의 썼던 책이기에, 독자들이 <태백산맥>의 배경을 찾는 벌교 여행을 한다면 아마도 이 책에 소개된 내용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저자를 비롯한 작품에 대한 애정을 지녔던 사람들의 노력과 애정 덕분에, 현재의 문학관과 문학거리가 조성되었을 것이다. 만약 별교를 찾는다면 문학관의 옥상에서 벌교의 전경을 바라보며, 작품의 배경을 훑어보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제는 카페와 민박을 운영하는 곳으로 변한 보성여관은 작품에서 ‘남도여관’으로 지칭되는데, 답사를 마치고 나서 이곳에 들러 ‘보성 녹차’를 마시며 차분하게 일정을 정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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