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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儒家)의 경전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시경(詩經)>은 이른바 ‘삼경(三經)’ 중의 하나이며, 동양의 정치사상과 학문을 논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헌이다. 공자(孔子)가 편찬했다고 알려진 <시경>은 민간의 다양한 가요를 모아 모두 305편으로 엮은 시집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시삼백(詩三百)’ 운운하는 기록은 모두 <시경>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그 편제에 따라 해당 지역의 역사의 흐름과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유가를 주요 이념으로 떠받들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있어, <시경>은 다른 경전과 더불어 문예 수양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저자가 ‘우공이산’이라는 제목으로 시도했던 <시경>의 강의록을 토대로, 그 내용을 그대로 풀어내고 재삼 가다듬어 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305편의 방대한 작품이 다양한 편목에 수록되어 있어, 강의 전체의 내용은 10권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강의를 담당했던 저자와 이를 풀어 글로 옮기고, 다시 교열을 거쳐 출간했기에 두 사람의 노고가 합쳐져 이루어진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 역시 강의를 했던 저자와 오래 전에 <시경> 원문을 함께 읽고 강독한 경험이 있어, 저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처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주지하듯이 <시경>은 민중들의 노래인 ‘풍(風)’과 이를 바탕으로 궁중음악으로 향유되었던 ‘아(雅)’, 그리고 제후국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음악으로서 ‘송(頌)’ 등 크게 3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국풍(國風)'이라고도 하는 ‘풍’이 <시경>의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는데, 15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각각의 제후국에서 채집한 노래들을 한시 형식으로 수록하고 있다.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책들을 불태웠던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인해서, <시경> 역시 사라질 위기에 놓엿지만 이후 학자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문헌들을 수집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현전하는 <시경>의 텍스트는 모형이라는 사람이 정리하고 주석한 판본으로 이른바 ‘모시(毛詩)’라고 불리며, 이것을 근간으로 주자가 주석한 <시집전>이 현재까지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시경 강의>의 첫 번째 기획으로서 저자는 먼저 ‘들어가며’에서 “<시경>은 어떤 책인가?‘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그것이 동양사상에서 지닌 역할과 의미 등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풍‘의 앞부분에 배치된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첫 번째 책으로 선정했음을 밝히고, 주자의 주석을 바탕으로 저자의 ’방식으로 쉽게 바꾸어 소개하겠‘다고 논하고 있다. ’국풍‘에 수록된 여타의 항목들이 지역명을 적시하고 있기에, ’주남‘과 ’소남‘ 역시 중구의 지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서안 지역에 존재했던 주나라의 남쪽 지역의 민요을 채집한 것이 ’주남‘에 수록된 작품이라고 논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남‘을 일종의 음악 스타일로 해석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주남’에는 모두 1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소남’의 14편과 함께 1권에는 모두 25편의 노래에 대한 해석과 저자의 강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주남’의 가장 첫머리에 수록된 ‘관저(關雎)’편은 군자가 좋은 짝이라는 의미의 ‘군자호구(君子好逑)’와 군자의 짝으로서 자질을 갖춘 ‘요조숙녀(窈窕淑女)’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주자는 이를 일컬어 주나라 문왕과 그의 부인인 태사의 덕을 칭손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주자의 이러한 해석을 고려하더라도, 그저 남녀가 부부로 결합하는 과정을 노래한 작품‘으로 파악하여 당시에 민중들에게 불렸던 노래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각 작품에 교화론적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는 것이 주자의 관점인데, 저자는 그러한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보다는 당시 중국 민중들이 불렀던 노래들의 진솔한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시 작품의 의미를 보다 자유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에도 저자의 이러한 관점이 도움이 된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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