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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왕 가운데 재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인물은 인종이며, 더욱이 그의 어머니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은 직후 세상을 떠나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야만 했다. 중종 재위 기간 동안 세자의 위치를 위협하는 움직임이 있는 등 왕위 승계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기도 해, 세자 시절부터 평탄하지 못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자신의 아들인 복성군을 왕위에 올리려는 경빈의 계략이 발각되어 몰락하자, 후에 명종의 생모가 되는 문정왕후에 의해 끊임없이 견제를 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세자가 자고 있던 건물에 화재가 나서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는 등의 위기는 이후에도 발생하였고, 부친인 중종이 재위 40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마침내 제12대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오랜 기간 세자 수업을 받으며 선정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결국 인종은 재위 8개월 만에 고열에 시달리며 병석에 시달리다가,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넘긴다는 뜻을 밝히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명종이 12살의 나이로 즉위하면서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인해, 명종 역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정왕후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문종은 어머니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 역시 이 시기를 ‘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라는 부제로 소개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상황에 근거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다룬 사극에서 이 시기를 흔히 ‘여인천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하겠다.
인종 시절부터 왕실의 외척인 윤씨들이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으로 나뉘어 권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명종이 즉위하면서 문정왕후의 친정인 소윤들이 서서히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대윤으로 일컬어지던 세력을 축출한 사건을 ‘을사사화’라고 하지만, 흔히 훈구파에 의해 사림파들이 축출당했던 여타의 사화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을사사화로 인해 소윤들의 권력이 공고화되면서, 기세를 탄 문정왕후는 자신의 권세를 다욱 막강하게 펼치게 된다. 문정왕후의 권세를 등에 업고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소윤들의 행위는 지탄을 받았고, 전라도 남서 해안에 왜구들이 침략해 분탕질을 일삼던 을묘왜변(1555)과 탐관오리의 수탈에 맞서 황해도에서 백정 출신인 임꺽정 세력이 들고 일어나는 등이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어머니의 그늘에 있었던 문종은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난 1565년(문종 20)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인순왕후 심씨와의 사이에서 순회세자를 낳았으나, 세자마저 1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명종마저 친정을 펼친 지 2년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조카인 하성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바로 선조이다. 또한 이 시기에 이르면 조선 초기부터 권세를 누리던 훈구파는 완전히 몰락하고, 성리학을 이념적 기반으로 삼았던 사림파(士林派)들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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