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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전남 남악중 정종삼
[http://cafe.daum.net/moral-study]
고백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작년 나는 4.16 사건을 수업 중에 다루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내 스스로 이 사건이 뭐가 뭔지 정리가 안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변명으로 버티던 작년 가을 ‘눈먼 자들의 국가’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국민 모두가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시기에 작가들의 깊은 감수성과 책임감으로 힘들게 문자화된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야 세월호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그때서야 4.16으로 아이들과 만날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가다듬고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올해 3월 그렇게 세월호 수업을 멋지고 의미 있게 만들어 가야할 아이들과 마주했다. 그런데 그들은 대한민국 중학생들이 빠져 있는 증세를 심하게 앓고 있었다.
무기력증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나름 중산층이 모여 사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학력이 높은 학부모들이 대부분이고 교육열도 높다. 또한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곳이다. 3월이 되어 처음 만난 3학년 아이들은 어깨가 처져 있었다. 힘없이 앉아 있는 아이들과 첫 만남은 나를 좌절시켰다. 성적이 꽤 나오는 아이들도 수업에서 뭔가 새롭고 놀라운 것을 배워 보겠다는 의지나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중1,2학년을 자주 가르쳤었는데 모처럼 중3 학생들을 만나 무언가 수준 있고 깊이 있는 수업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중3 학생들의 굳어버린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친구의 말을 들어본 적도 별로 없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본적도 거의 없으며, 의미 있게 배움을 나누며 함께 성장해본 경험도 기억해 내질 못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자 나는 학생 한명에게 물었다.
“혹시 중학교 다니는 동안 선생님 수업처럼 토론이나 모둠 수업 해 본적 있니?”
“없는데요. 선생님이 처음인데요.”
“그런데 왜 너희들은 그렇게 발표를 안 하고 가만히 있니?”
“그래도 샘 수업 시간이 애들 발표 제일 많이 하는 건데요.”
나의 질문에 마지못해 몇 마디 하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던 수업이 그래도 가장 발표 잘한 수업이라니. 이런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우울해 해야 할지 나는 순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 애들과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는 수업이 가능할까? 세월호를 마주하고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게 되는 수업이 가능할지 걱정이 앞섰다.
돌파구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못 느끼고 있었고, 수동적으로 일러주는 내용만 체크하고 정리할 요량으로 나를 처다 보고 있었다. 한 학생에게 지문을 읽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부분 좀 읽어 줄래?”
“제가 왜 읽어야 하는데요?”
기가 막혔다. 편안하게 서로의 기운이 흐르며 가르침과 배움이 일어나야 할 교실은 기막힌 무기력만으로 채워져 있었다. 돌파구가 있어야 했다.
먼저 욕심을 버렸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아이들과 편하게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원래 계획 했던 내용은 포기하고 중1 애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면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 주제로 수업을 시작했다. 제목은 ‘악어가 사는 강’이다. 조금씩 아이들이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고 친구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인즈 딜레마, 아이히만 재판 이야기, 그리고 헉슬리의 위대한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를 먹을 것인가? 그리고 미국의 제노비스 사건을 다룬 38명의 목격자 등을 편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논쟁이 되는 부분에서 설명을 멈추고 질문을 던졌다. 대답이 없다.
“그럼 이제 모둠끼리 이야기 나눠 볼까!”라고 말한다.
먼저 모둠끼리 논의하고 나서 전체가 함께 나누는 배움의 공동체 방식의 수업을 이어 나갔다. 수업이 잘 될 때도 있고 여전히 축 처져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수업을 하고 나올 때와 뭔가 또 막힌 수업을 하고 나오는 수업이 이어졌다. 이 때 내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3월이 가고 드디어 4월이 되었다.
4.16과 마주하기, 첫 번째 시간
4월 첫 시간에 애들에게 물었다.
“애들아 4월 16일이 어떤 날인지 아니?”
“쉬는 날이에요?”
“뭔 날이지?”
한 애가 조용히 말한다.
“세월호 사고 난 날 아닌가요?”
11개 반 아이들에게 물었는데 한 반에 겨우 한두 명 정도가 기억하는 수준이었다. 아이들은 천천히 잊어가고 있었다.
“애들아 우리가 작년에 일어났던 엄청난 사건도 이렇게 쉽게 잊어버리고 있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이 준비한 영상이 있는데 한번 같이 볼자. 제목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데 EBS에서 만든 지식채널E 영상이야. 세월호를 사건을 다루는 영상이기 때문에 좀 진지하게 보면 좋겠다.”
모든 반 학생들이 집중해서 봤다. 이제 막 잊고 있었던 아픈 사건과 마주하며 스스로 놀라는 눈치다.
“애 들아 그런데 지금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있는 학생과 어른들이 9분이 계신다고 하네. 그 분들은 유가족이 아니라 실종자 가족인데 영정 사진도 올려놓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 자기 자식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구조작업도 이루어지지 않고 인양 작업에 대해서는 돈이 얼마 들어서 어렵다는 말만 하는 상황에서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이제 우리 다른 영상 하나 더 볼까. 엄마의 200일 이라는 영상인데,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영상을 보던 몇몇 학생들이 울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마지막으로 음악 영상인데 팝페라 가수 임형주씨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영상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기념하며 만든 노래인데 작년에 많은 국민들이 듣고 공감했던 영상입니다. 함께 들어 보죠.”
한명의 학생도 빠짐없이 조용히 영상을 시청했다. 이제 아이들은 진지해 졌다.
“애 들아 선생님이 이번에 4.16 특별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노란 리본도 만들어 달아보고, 현수막도 걸고, 리본 줄에 글을 써서 묶어 보는 일을 할 건데 다음 시간에 함께 해보자.”
수업이 끝났다는 종소리가 울린다.
노랗게 물든 두 번째 시간
“애들아 친구를 떠나보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세월호 사건으로 친구를 잃은 한 학생의 편지글 낭송하는 영상인데 함께 봐볼까.”
분위기가 숙연해 진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잊지 않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아픔을 마주하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야. 그래도 우리가 이러한 일을 잊어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다시 또 겪어야 될지 모를 일이잖아. 그래서 우리가 잊지 않는 다는 의미로 노란 리본 함께 만들어 보면 좋겠다. 모둠 만들어 보자.”
모둠을 별로 가위 3개, 노란 리본 줄, 양면테이프를 나누어 줬다.
“선생님이 만드는 방법 알려 줄께. 모둠에서 한명씩 나와서 선생님이 만드는 것 보고 모둠에 돌아가서 애들한테 알려주면 좋겠다. 자 먼저 리본을 10cm 정도 자르고...”
모둠끼리 모여 만들기 시작한다. 의미와 가치를 갖는 작은 리본을 스스로 만들어 보면서 아이들 눈빛이 정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살아나는 학생회와 교사의 동료성
4.16 1주기 기념 수업에 대한 처음 계획은 내가 수업하는 3학년 학생들이 리본 만들어 후배들이랑 선생님들께 나눠주고, 현수막 걸고 그 곳에 리본 줄 묶는 수준에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4.16 기념 리본이 만들어지자 학생부장 선생님께 학생회 아이들과 아침 맞이할 때 전교생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고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학생회장단과 4월 3일(금) 점심시간에 첫 만남을 가졌다. 학생회 애들도 호의적으로 돕겠다고 나섰다. D-day 4월 6일. 야속한 봄비가 내리는 아침. 새벽에 잠을 설쳤다. 첫 아침 맞이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불안했다. 만나기로 한 7시 40분이 되자 아이들이 교무실로 왔다. 어쩔 수 없이 아침 맞이는본관 현관에서 진행되었다. 학생회 아이들이 현관에서 홍보판을 만들고 꾸몄다. 그리고 몇몇은 아이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눠 주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움직이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이 순간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맞이를 끝내고 점심시간에 다시 학생회 아이들과 만났다. 아이들 표정에 뭔가 해냈다는 자신감과 의욕이 묻어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들게 물어 봤다.
“애들아 선생님이 이번에 세월호 사업을 학생회와 함께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선생님 추모식 같은 거 하면 안 되요?”
“그래 추모 문화제를 학생회 주관으로 해 보면 좋겠다.”
“네, 시도 낭송하고, 편지글도 낭송하고, 합창도 해보면 좋겠어요.”
정말 놀라운 회의였다. 5분 만에 학생회가 주체로 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학생회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나누었다. 추모 문화제 때 학생회 활동을 담은 자체 제작 UCC를 방영하기로 하여 찬결이와 방송반이 이를 담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도서부장 시영이는 수필이랑 편지글 맡아서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예린이는 합창반 조직과 준비를 담당하기로 하고, 정연이와 채민이는 홍보팀으로 학교 꾸미기를 나를 도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린이랑 유성이는 모금함을 만들어 이번 행사를 위한 기금과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성금을 모금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생회장인 조국희는 이번 문화제 행사의 프로그램 기획과 시나리오 그리고 사회를 맡아서 준비하기로 했다.
각각의 팀들은 스스로 움직였다. 하지만 컨트롤 타워는 필요했기에 카톡 방을 만들고 그 곳에서 함께 조율하며 수시로 의견을 나누었다. 합창반을 지도해줄 선생님이 필요했고 편지와 시를 점검해줄 국어 선생님이 필요했다. 김경은 음악 선생님은 합창반 지도 요청에 흔쾌히 승낙해주셨고, 늦은 감기로 고생하시던 국어과 김수희 선생님도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바로 방송으로 합창반 모집을 알렸다. 60명 가까운 학생들이 지원했다. 바이올린, 풀룻, 기타, 피아노 치는 아이들과 합창반으로 함께 하고 싶은 아이들이 줄줄이 지원했다. 그런데 너무나 뿌듯했던 것은 작년에 학폭으로 어려움을 겪은 아이가 합창반을 하고 싶다고 신청했다. 그리고 수업 중에 장난기 많은 남학생인 00도 친구랑 함께 합창반 한다고 교무실에 음악선생님을 기다렸다. 우리가 너무나 아이들에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는 반성과 이제라도 찾아와준 아이들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음악선생님도 악기 들고 온 친구들 보고 이 정도면 우리 학교에 상설 기악반 만들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옆에서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교감선생님도 이럴 줄 알았으면 3월에 왔던 문화 예술학교 지원 사업 신청할 걸 너무 아쉬워하신다. 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판이 만들어 졌는데 잘 해서 학생회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보자며 크게 힘을 실어 주셨다. 그리고 교장선생님께 세월호 추모 문화제를 추진해 보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잘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이미경 학생부장 선생님이시다. 학생회 예산의 전폭적인 지원과 학생과 선생도 아닌 나를 학생회 아이들과 활동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믿고 지켜봐 주셨다. 그리고 옆에서 깊은 격려와 중요한 지점과 방향을 알려 주는 큰 누님 박혜련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아마 이 일을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호에 빚진 자의 삶
우리학교 학생회가 주관하는 4.16 추모문화제는 4월 16일 오후 1시 10분 강당에서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열릴 것이다. 어떻게 마무리 될지 알 수 없다. 다만 세월호 기념 문화제 및 계기 수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같이 아파해 볼 수 있길 바란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둔감해 질 때 일상의 폭력은 제어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4.16 계기 수업은 인성교육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또한 아이들이 학교의 주체가 되길 바란다. 몇일 전에 학생회 아이들과 나눈 대화다.
“애들아 선생님도 힘드니까 4.16 행사 끝나면 우리 서로 모른 척 하자.”
“아니 왜 그래요. 그래도 이렇게 하니까 좋은데. 아 맞다. 우리 오월에 5.18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잖아.”
“그래 그거 학생회가 주도해서 진행해도 되잖아.”
기가 막혔다. 이건 대단한 아이들을 옆에 두고 그 애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아닌가? 아이들은 준비되어 있고 할 마음도 있는데 교사만 몰라본 것이다. 나는 이제 아이들과 친해져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 그 애들이 같이 놀아 줄 거 아닌가. 이번 4.16 1주기 기념식은 아이들과 선생님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 빚은 평생 값 아야 할 것 같다. 다음 주 4월 13일에 박혜련 선생님, 박한나 선생님, 김경은 선생님이랑 같이 팽목항에 다녀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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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저희 학교도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