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숨을 거두시기 전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언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정진하라”는 한마디였다고 합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행무상이라, 세상에 덧없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 짓을 해도 덧없고 저 짓을 해도 덧없는 세상인데, 오히려 정성스레 나가라고 하시니 무슨 뜻일까요?
저는 이 정진(精進)이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진(進)이 아니라 정(精)이라고 생각합니다. 진(進)은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중생의 숙명이 아닐까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진(進)입니다. 아무도 피하거나 막을 수 없는 다르마(法)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이 새삼 부탁하지 않아도 누구도 다 하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이 남기신 유언의 알맹이가 정(精)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어차피 늙는 것이 우리의 길이요, 밥 먹고 똥 싸고 사람들 만나고 함께 일하고······. 그러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다면, 그걸 정성스레 하라는 그런 말씀 아닐까요?
-이 아무개의 마음공부 : 개울과 앵두나무 p169~170
오늘 하루는 이 정(精), 정성스레 살아보는 연습...
그래 그래봅시다! 하고 맘먹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알아차림 그리고 정성스럽게...
오늘 하루 일 계획은 이랬습니다.
오전은 점심 준비와(딸과 만나기로 함) 저번 주 옮겨 심은 나무들에게 물 충분히 주기.
오후는 감자 심을 밭에 풀 매고 감자 심기. 잡초로 요리하기.
걷기명상까지 깔끔히 마치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맘이 급해집니다.
속에서 두 마음이 대화를 합니다.
“시간이 벌써? 아니지, 이리 서둘지 말고 지금 내가 뭘해야하는지 잘 봐야겠어”
“그래, 그거야, 서두르는 것도 습관이야.”
“그런데 시간 안에 다 못하겠는 걸, 그냥 점심은 사가고 지금이라도 물 주러 갈까?”
“아니지.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거 하나뿐이야. 그렇지!”
“아! 아직 가져갈 것 다 싸지도 못했는데... 물주는 건 틀렸네. 이를 어째...”
“뭐 하는 거야! 한 번에 한걸음. 지금 네가 한 번에 두 개 할래?”
“알아, 안다고. 그래 물주는 건 포기해. 그럼 오후에 서둘러 해야지.”
“지금 뭐하는 지 알기는 하나?”
“아...미안~ 당근을 채치고 있지. 다시 마음 모아 정성스레!”
“당근향이 좋네. 이걸로 맛있는 당근라떼를 만들어 봅시다.”
“그런데 너무 많이 씻은 것 아냐. 5개는 너무 많았어. 아이고 팔이야.”
“팔이 아프면 잠시 쉬다 가자.”
“지금 쉴 시간이... 아니다. 그래 쉬자. 역시 물주는 건 안되겠다...”
“생각도 좀 쉬면 안 되냐? 네 속에서 이미 오후 일까지 하고 있잖아.”
“이렇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줄 몰랐지. 아! 오후에도 할 일이 많은데...”
“그럼 아예 마음을 다 내려놔. 지금 이 일도 제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
“아니 이것은 하고 그 다음을 생각하고..”
“그러면서 넌 이미 지금 일에서 마음이 떠나 오후에 마음이 가 있잖아.”
“아냐, 아... 그러긴 하네.”
“잠시 앉자. 그리고 숨쉬자.”
“그래, 숨쉬자... 아이고 힘들다...”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인생사라면 정성스레, 그런다며...”
“맘 처럼 안되네. 생각으론 그럴싸하게 했는데...”
.
.
.
이런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 했는데...
결국 작은 나보다 큰 나가 이해하고 안아주어 오전을 제법 가벼이 마쳤습니다.
물론 물을 못 준 것이나 감자 심을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자꾸 묻고 또 묻고 하니 정말 한 번에 한 걸음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성스레 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네요.
일부러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게 되네요.
정직하게도요.
알아차림이 곧 정성스러움입니다.
어렵습니다.
연습이라고 해도 이리 어렵습니다.
연습이라 어려운 것인지...
그래도 재미는 있습니다.
그러니 또 해보는 수밖에요.
정진(精進)입니다.
알아차림!
고맙고 고마운 날,
언제 어디서나 저와 함께 계셔주십시오. 언제나, 어디서나.
고맙습니다.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