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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박두진의 첫 시집인 <해>의 표제가 된 이 시는 일제 암흑기의 어둠을 몰아낸 8·15 광복이라는 벅찬 기쁨에 민족의 염원과 이상을 ‘해’라는 구체적 사물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해’는 새로운 탄생과 창조의 근원(평화 공존의 원동력)으로 이해될 수 있고, 시대와 관련해 볼 때, 조국의 밝고 원대한 이상으로 볼 수도 있겠다. 광복의 감격과 그 후의 격동 속에서 장차 펼쳐질 밝은 미래와 사랑과 평화로 대화합이 이루어지는 낙원의 모습을 그렸다.
희망찬 미래의 조국을 상징하는 시구를 찾아 보자.‘해가 솟는 청산’의 의미를 알아 보자.
․ 성격 : 열정적, 상징적, 예언적, 미래 지향적
․ 특징 : ① 강렬한 남성적 의지, ② 4음보의 급박한 리듬
․ 구성 : ① 새로운 세계의 염원(1연)
② 절망의 거부(2연)
③ 새로운 세계와의 친화(3연)
④ 화해와 평화의 삶.(인간과 자연과의 친화)(4,5연)
⑤ 낙원에서의 대화합을 소망(6연)
․ 제재 : 해
․ 주제 : 민족의 웅대하고 기쁨에 찬 미래상 추구
이해와 감상 1
이 시는 8·15 광복이라는 역사적 계기와 그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벅차고 원대한 민족적 이상과 소망을 노래한 작품이다. 광복이라는 무한한 자유와 기쁨 속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갈등을 빚거나 두려워할 것 없이 평화롭게 화해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달밤, 칡범, 짐승’은 악(惡)과 추(醜)의 이미지로, ‘사슴, 청산, 꽃, 새’는 선(善)과 미(美)의 이미지로 대표되나, 결국 이들의 대화합(大和合)을 추구하여 사랑과 평화의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제1연은 4음보를 기조로 하여 장중한 율동감을 주고 있으며, 광명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제2연은 ‘해’과 상반되는 ‘달밤’이 등장한다. ‘달밤’은 암흑이 가시지 않은, 고통과 비애의 시간이다. 그래서 ‘달밤이 싫여’는 어둠과 절망의 거부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제3연의 ‘해’와 짝이 되는 ‘청산’은 새롭고 밝은 놀이터다. 이는 이상향이며 에덴 동산의 표상이다. 결국 새로운 세계, 낙원의 세계와의 친화를 그린 것이다. 그의 크리스트교적 세계관과 관련해서 ‘청산’의 의미를 이해해도 좋겠다.
제4,5연에서 선의 표상인 사슴은 물론 악의 표상인 칡범과도 함께 놀겠다는 것은 이 시인이 이상으로 하고 있는 우주의 조화요, 질서다. 결국 화해와 친화의 삶을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6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자연과의 합일, 새로운 세계에서의 대화합을 소망하고 있다. 즉, 평과 공존과 통합론의 세계관이 나타나 있다.
이해와 감상 2
열대와 사막지대에 있는 나라치고 태양을 국기로 삼고 있는 경우는 없다.대개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파키스탄 알제리 튀니지같은 아랍국가들이 그 본보기다.만국 공통의 적십자기마저도 이슬람 문화권에 오면 붉은 초승달로 바뀐다.모든 것을 태워 죽이는 열사의 햇빛보다는 서늘한 달빛이 더 고마운 풍토탓이다.인도에 연원을 두고 있는 불교 역시 달의 상징성이 해를 앞지른다.그래서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신라향가에서는 해보다 달이 절대우위를 차지한다.「찬기파랑가」에서 화랑의 얼굴을 상징하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구름을 열치고 나타나는 달인 것이다.
한국문화의 뿌리는 남방적인가 북방적인가.이런 문제를 이 자리에서 다루기란 힘겨운 일이다.하지만 한국문화의 원형은 북방과 남방,그리고 유목과 농경의 양극 문화를 융합한 매개형 문화라는 것만은 밝혀둘 필요가 있다.
북방적인 온돌방과 남방적인 마루방이 공존하고 있는 한국 특유의 건축양식처럼 조선조의 궁중 상징물인 오봉일월도(五峰日月圖)에서는 해와 달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한국민족의 정서와 그 시가의 주류가 달쪽에 치우쳐 온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생활문화의 기층을 이루어온 십장생도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달이 아니라 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시점에서 보면 한국시에서 해를 복권한 박두진의 시「해」는 매우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태백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는 그 시에서 처음으로 「달밤이 싫여,달밤이 싫여,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라는 달빛 부정의 선언을 듣게 된다.그리고 그 대신 애띤 것 고운 것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으로 향한 대낮의 화살표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박두진의「해」가「존재의 절정」을 추구하는 말라르메의 태양과 같은 것은 아니다.시의 첫 행만 읽어봐도 그것이 세계의 모든 그림자를 소멸시키는 정오의 태양,사물의 정수리위에서 빛나는 그 절대의 태양과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박두진이 노래하고 있는 해는「솟아 있는 해」가 아니라 「솟아라 !」고 말하고 있는 화자의 욕망속에 잠재해 있는 해인 것이다.그러니까 지금 그의 눈앞에는 해가 아니라 달이,그리고 대낮이 아니라 밤이 있다. 즉 달밤속에서 노래부르는 해라는 사실이다.
「해야 솟아라.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아 솟아라」로 시작되는 그 첫 행은「해」라는 말과「솟아라」는 말이 무려 3번씩이나 반복되어 있다. 반복은 시에 있어서 리듬을 만들어내는 소리의 층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의미론적 층위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날자 날자 날자-」라고 외치는 이상의 「날개」 의 마지막 절규가 오히려 희망의 언어가 아니라 날 수 없는 절망의 말로 들리는 것처럼 「해야 솟아라」는 반복속에서 우리는 깜깜한 밤이나 쓸쓸한 달빛을 연상하게 된다.그러므로 그 「해야 솟아라」라는 말은 바로 그 다음 시행…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란 말과 대조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해」는 「달」로,「낮」은「밤」으로,그리고「솟아라」라는 희망의 말은「싫여」라는 부정의 말로 뒤집혀 있다. 더구나 우리는「눈물같은 골짜기」와「아무도 없는 뜰」이란 말에 서 달의 공간성과 의미소를 추출해 낼 수가 있다.달의 무대는 골짜기와 빈 뜰의 폐쇄성과 공허성이며,그 의미소는 슬픔과 고립감(아무도 없는)이다. 그러나 그와 대응하는 해의 공간과 그 의미소는 바로 그 시행뒤를 잇는 「늬가사 오면,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청산이 있으면 홀로라도 좋아라」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싫여」는 「좋아라」가 되고, 눈물과 아무도 없는 쓸쓸함은 깃을 치는 춤과 신명으로 바뀌어진다. 특히 중요한 것은 「눈물같은 골짜기」와 「아무도 없는 뜰」에 대응하는 「청산」 공간의 의미소이다. 그것은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노는」 교감과 공존 그리고 열려져 있는 개방성이다.슬픔의 골짜기, 고립의 뜰과는 정반대의 공간이다.밤의 공간에서는,만남은 놀이가 아니라 도주이며 살육이다.역리로 말하자면 박두진의「해」는 음(달)과 양(해)의 두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겉으로 드러난 양의 텍스트는 해를 찬미하고 있고 속에 숨어 있는 음의 텍스트는 달밤을 혐오하고 있다.
그리고 양의 텍스트는 상상과 자연과 관념의 축을 나타내고,음의 텍스트는 현실과 사회적 상황축을 이룬다. 시제를 봐도 달의 텍스트 는「달밤이 싫여」와 같이 현재형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해의 텍스트는 「솟아라」「늬가사 오면」「누려 보리라」처럼 모두가 권유 가정 미래 추정으로 되어 있다.박두진의 「해」는 바로「달」을 뒤집은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 텍스트를 바꿔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해의 마지막 시행을 보면 시의 통사적 축은 아무 것도 발전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로 첫 행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영어의 어원을 통해서 「산문(PROSE)이 앞으로 나가는 행진이라면 시(VERSE)는 뒤로 되돌아 오는 회귀」라고 풀이했던 야콥슨의 말 그대로다. 의미론적으로 그것은 끝이 아니라 첫 머리의 언술로 회귀하고 있는 되풀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두진의 「해」를 읽는다는 것은 매일 매일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처럼 바로 그러한 반복과 그 반복이 자아내는 차이를 읽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해와 대립항을 이루는 달이라는 범열축(paradigm-aticaxis)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해의 시적 의미는 통사적 서술이 아니라 달과의 차이에서 생겨난다.아무도 없는 달밤의 그 빈뜰과「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에 앉아 애띠고 고운 날 을 누리게 하는」,「청산」의 차이… 해의 시적 의미는 그 빈 것과 채워져 있는 것,폐쇄성과 개방성의 공간적 대조를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해는 어둠이 있어야 말갛게 얼굴을 씻을 수 있고,또 그것을 살라먹고 애띤 얼굴의 활력을 되찾는 것처럼. 그래서 박두진에게 있어서 해란 청산까지도 새처럼 깃을 치게 하는 생령의 힘이며 인간과 사슴과 칡범이 한자리에서 교감하고 조응하며 살아가는 십장생도의 새로운 가상공간이다. 그리고 박두진에게 있어서 시란 눈물의 골짜기에서 해를 솟아나게 하는 주술인 것이며 꽃과 새와 짐승을 한자리에 앉히는 마법의 조련사인 것이다. <이어령 교수>
이해와 감상 3
‘해’의 시인이요, 자연 교감의 정신을 불러 일으킨 박두진의 첫 시집 <해>의 표제가 된 이 작품은 8․15 해방이라는 벅찬 기쁨 속에서 민족의 웅대한 기대와 민족의 이상을 구가하던 시기에 씌어졌다. 이 시는 ‘해’라는 구체적 사물을 통해 광복의 기쁨을 제시하는 한편, 어둠이 걷힌 ‘청산(靑山)’에서 광명한 조국의 미래사, 민족의 낙원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시인의 뜨거운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광복이라는 무한한 자유와 기쁨 속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갈등을 빚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이 평화롭게 화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둠’․‘달밤’․‘골짜기’․‘칡범’․‘짐승’은 악(惡)과 추(醜), 강자(强者)의 이미지를, ‘해’․‘사슴’․‘청산’․‘꽃’․‘새’는 선(善)과 미(美), 약자(弱者)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으로, 시인은 이들의 대화합을 추구하며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다.
시인은 생명의 근원이며 창조의 어머니인 ‘해’가 돋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원시인(原始人)의 원초적 신앙인 태양 숭배와 같은 경이(驚異)와 복받치는 희열(喜悅)로 ‘에덴 동산’을 연상시키는 조국 광복의 신천지를 예찬하는 동시에, ‘달밤’으로 표상된 민족의 오랜 슬픔을 배척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희망찬 미래의 조국을 상징하는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라고 외치며, ‘사슴’과 ‘칡범’, ‘꽃’․‘새’와 ‘짐승’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사는 영원한 평화와 공존 공영의 ‘고운 날’을 꿈꾼다. 그 ‘고운 날’은 결국 ‘해가 솟은 청산’으로 자연과 인간이 합일되는 이상향이자, 민족의 영화로운 역사가 펼쳐질 해방된 조국 강토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이 시에서는 당시대적(當時代的) 조국 해방의 기쁨이 영시대적(永時代的) 이상향의 추구로까지 연계․발전되고 있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시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조연현은 이 작품을 가리켜 “한국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한 절정을 노래했다.”고 평하고 나서 “박두진은 이 한 편의 시로써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해와 감상 4
이 시에 대한 시인 자신의 해설을 보자. “이 시는 8․15 광복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계기에 의해서 마련되었고, 그러한 세기적인 격동과, 극적이고 풍부하고 다단하고 복잡한 배경에 의해 씌어졌다. (중략) …… 이러한 모든 시적 이념과 팽창과 충전과 연소와 그 압도적인 영감의 구상화의 대응을, 나는 저 뜨겁고 영원하고 절대하고 威熱한 우주의 한 중심체인 ‘해’이외의 그 어느 것으로 대신할 수 없었다. 이 ‘해’야말로 가장 으뜸가고 가장 적절 정확하고, 가장 훌륭하고 유일한 이미지의 시적 실체요 그 활력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나의 궁극적인 이상, 민족의 이상, 인류의 이상의 궁극상을 하나의 비원으로서, 하나의 열원으로서 최대한의 보편화, 최대한의 영원화, 최대한의 형상화를 도모해 본 것이다”. (후략)
윗 글을 참고로 이 시를 보면, 어둠과 광명(해)의 대립적 이미지로 시작된 이 시는 오둠 곧 핍박, 모해, 갈등의 세계(일제 치하의 현실로 볼 수 있음)를 거부하고 다같이 화해한 순수세계(청산)를 열렬하게 소망하고 있다. ‘해, 달밤, 청산, 사슴’ 등 상징의 표현 기법이 두드러진 이 시의 핵심은 ‘해’이다. 이 ‘해’는 조국의 광복일 수도 있고, 영원히 평화로운 이상 세계의 빛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해’의 기독교적 배경 : ‘해’는 성서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사야서 35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되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되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중략)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豺狼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중략).
위의 말에는 유토피아적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숨어 있다. 박두진의 ‘해’는 이와 같은 기독교적 유토피아를 식민지 치하의 어두움과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두진의 시세계가 기독교적 정신과 긴밀하게 상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