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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다. 너무도 당연할 것만 같았던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공동체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라 풀이되어 있다. 작게는 가족으로부터 지역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왔다. 하지만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가족들은 한집에서 기거하지만,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채로 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했던 ‘이웃사촌’이라는 말조차도 차츰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이 도시에서는 1인 가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타인과의 관계가 점점 단절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딱히 공동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모임에 소속되어 살아가기도 한다. 그 가운데 자신의 의도에 걸맞은 모임에서는 지속적으로 참여를 하지만, 모임의 성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에는 언제든지 그만두기도 한다. 때로는 성원 가운데 누군가와의 갈등으로 인해서, 모임의 성격과 상관없이 참여를 꺼리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작은 모임에서도 모든 사람의 의도와 만족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종교전문기자가 쓴 공동체에 대한 탐사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취재했던 경험과 병을 치료하기 위해 체험했던 공동체 생활을 바탕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공동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 역시 몇 년 전부터 지인들과 더불어 소규모 공동체 마을을 꾸미고자 계획을 하고, 1년에 1~2차례 지인들이 소개해 준 마을들을 돌아본 경험이 있다. 처음의 의도가 지속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곳도 목격할 수 있었다. 결국 서로의 뜻이 맞지 않아 생긴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모여 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최근 예멘 난민 문제를 둘러싼 찬반논쟁이나 대학생들을 위한 임대 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 운동 등이 사회적 갈등의 한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인권이나 대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자는 당위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결국 자신의 일자리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생각에서 반대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약자일 때는 정의의 투사이지만, 개인으로 돌아와서는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고 박해에 가담해 버리는 반공동체적 삶을 살기도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하겠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1~3부는 국내의 19개 공동체를 다루고 있으며, 4부에서는 5개의 해외 공동체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함께 하니 인생이 바뀌었다’는 제목의 1부에서는 탁구대 하나로 시작된 파주 문발동의 공동체로부터 충북 보은의 ‘선애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동체의 출발과 활동 사항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사울 마포구의 ‘성미산마을’이나 광주의 ‘신흥마을’처럼 의도적 혹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품앗이나 협동조합을 통해서 공동체를 이루기도 하고, 특정 종교 혹은 공동의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 사례들도 접할 수 있었다. 이들의 생활을 통해서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의미는 상실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부의 마지막 장은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또한 돈 때문에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는 너무도 평범한 사실을 직시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종교 혹은 공동의 신념으로 뭉친 경우, 오히려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그 성격이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외국의 섬에 종교 공동체를 짓는다고 하여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쳐서 같은 쪽으로만 끌고 가면 그건 종교 집단이지 공동체라고 볼 수 없’다는 한울마을의 주형로 대표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비록 같은 종교나 신념으로 뭉친 공동체라도,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타인의 삶을 지배하려는 시도는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실낙원을 낙원으로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만든 공동체를 주로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 무능이 사회적 무능력으로 간주되고 있기에, 그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도 ‘복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양분되어 있어, 이를 ‘불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정작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은 ‘불공정’이 지배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복지 혜택’을 둘러싼 논의에서 ‘무상 불가’ 혹은 ‘불공평’을 내세우며 복지를 확대하자는 의견에 맹렬히 반대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가난한 마을’이라 여겨졌던 이들이 서로 힘을 합쳐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가 하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전과자들과 함께 ‘적게 쓰면서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직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고 살아가기를 꿈꾸지만, 정작 그 속에서 하나의 부품처럼 소모되는 삶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간의 삶을 효율성과 경제성을 기준으로 따지는 세상의 평가에 대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의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능력보다 누군가와 어울려 사는 것에 더 가치를 두는 이들도 주변에는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들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잘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1부와 2부에서 공동체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하고 그 특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면, 3부에서는 ‘혼자 살아도 행복해야 한다’는 제목 아래 싱글들이 공동체를 통해서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과 그 이유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약자와 소수자일수록 서로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같이 지내는 상대방을 통해서 자신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의 4부에서는 저자가 경험한 해외공동체 체험을 통해서, 모두 5개의 공동체 사례와 특징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병을 얻어 직장을 쉬면서, 치료의 목적으로 태국의 아속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해외의 사례들을 하나씩 경험했다고 한다. 흔히 공동체를 이상향에 비기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이상향은 장소라기보다는 가치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즉 어디에서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킹 목사가 했다는, ‘인생의 가장 지속적이고 긴급한 질문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다’라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공동체 안에서 권력 관계로 인한 부작용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점점 고립적인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현실 세계와 가상공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익명의 장막에 숨어 타인들을 비난하고,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소통의 공간인 가상공간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자신의 언어만을 일방적으로 배출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불통의 대안이 공동체를 만들어 소통의 수단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공동체는 항상 선일까? 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의 모습이나 지향,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인 의미를 띨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항상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차니)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리뷰(2025. 3. 18)
'혼자가 편하다'는 세상에서, 공동체에 속하는 용기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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