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나면 노숙해야죠"...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동자동 쪽방촌 5월 중 재개발 사업 추진 가능성 커
서울시 지원받아 정착한 노숙인들 다시 거리로 내몰리나
허름한 쪽방촌과 화려한 고층빌딩이 대비된다
서울역 앞 화려한 고층빌딩 뒤로는 좁은 골목과 함께 허름한 주택가가 나타난다. 약 1050명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곳은 동자동 쪽방촌이다. 몇몇 주민은 거리의 삶을 청산하고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서울시 지원으로 운영하는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는 노숙인이 희망할 경우 월 25만원 한도 내에서 주거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9년 880명의 노숙인에게 주거지원 서비스를 한 결과, 722명이 다시 거리에 나오지 않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분식집 앞에서 만난 안모 할아버지(67)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얼마 전 거리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했다며 바로 맞은편 건물 4층에 자신의 집이 있다고 했다. 양해를 구하고 그의 집에 갈 수 있었다.
불도 켜지지 않는 캄캄한 계단을 올라야 나오는 안모 할아버지의 집
3평 남짓한 좁은 방이지만 안모 할아버지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입구부터 퀘퀘한 냄새가 났다. 불도 켜지지 않는 캄캄한 계단은 고령의 안씨에게 매우 위험해 보였다. 안씨는 난간에 의지한 채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안씨의 보금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씨는 이 근방에서 우리 집이 제일 좋다며 냉장고, 주방, 화장실까지 다 있다고 자랑했다.
아쉬웠는지 직접 끓인 꽁치찌게를 대접하는 안모 할아버지
"소주나 한 잔 하고 가. 꽁치찌게 해놨으니까. 그거에 먹자고."
안씨는 대뜸 술을 권했다. 이웃 김모(52)씨도 자리에 함께했다. 한 잔, 두 잔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도 집이 있으니까 좋아. 따뜻한 밥에, 따뜻한 물에, 잠잘 때도 따뜻하잖아. 이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서울역에서 노숙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이제 그는 더이상 추위와 싸우며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기다리지 않는다. 서울역 화장실에서 씻는 것도 옛말이다. 따뜻한 밥을 지어 먹으며 내일을 바라본다. 3평 남짓한 좁은 방이지만 그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가 됐다.
"나도 이제 떳떳하게 살라고."
안씨는 가족이 있다. 아내와 연년생 아들 둘. 그리고 손자까지. 하지만 4년 전 집을 떠나면서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그가 어떤 이유로 나갔는 지는 모른다. 그 부분은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차마 깊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현재 중요한 건, 안씨는 마트에서 분리수거 일을 하며 떳떳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때쯤 안씨가 한숨을 푹 내쉬며 얘기를 꺼냈다.
"양동에 사는 놈 하나 있는데 쫓겨났어. 지금 서울역에서 다시 노숙해. 남일 같지 않아. 힘들게 정착했는데, 또 거리로 내몰릴까 그게 너무 무서워."
최근 재개발 문제로 친한 동생이 양동 쪽방에서 쫓겨났다며 본인도 그 상황에 닥칠까 불안에 떨고 있었다.
양동과 동자동은 도로 하나를 경계로 서로 맞대고 있다. 행정구역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동네로 두 곳 모두 재개발 지역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양동 쪽방촌 주민들은 갈 곳 없는 처지가 됐다. 아직 재개발이 더딘 동자동으로 이사하려 해도, 동자동 쪽방촌은 양동 쪽방 난민을 모두 수용할 만큼의 방이 없다. 결국 다시 거리로 나앉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
동자동 재개발도 시간 문제다.
2015년 5월 28일, 서울시는 동자동 쪽방촌을 후암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재개발 사업이 가능토록 했다. 본래 남산 인근은 건물 층고를 5층으로 제한하는데, 특계구역으로 바뀌면서 최고 18층까지 완화한 것이다. 해당일로부터 5년 이내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특계구역이 해제돼 5층 층고 제한이 다시 적용된다. 때문에 재개발조합은 수익성을 위해 5월에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든지 안씨도 거리로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재개발이 현실로 다가왔다. 동자동은 5월까지 건물주가 개발 계획안을 내야 하는데, 어떻게 진행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주거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보상을 제대로 해준 걸 본적이 없다. 쪽방 주민들을 내쫓다시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재개발되는 곳 가까이에 시유지가 있는데, 그곳에 다 같이 이주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가라고 하면 아무것도 없이 빈몸으로 나가는 거죠. 옷가지밖에 더 있겠어요?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시설이 있긴 한데 다들 안 가요. 시설에 가면 기초수급이 안 나와요. 솔직히 일거리도 없는데 기초수급까지 없으면 저희가 무슨 수로 살아요. 그냥 쫓겨나면 노숙해야죠. 뭐 어쩌겠어요."
동자동에서 만난 한 주민이 기자에게 한 얘기다. 언제라도 쫓겨날 걸 아는 사람처럼 그는 이미 체념한 상태였다.
글·사진=양희문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