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 처리 / 안정희
웃통을 벗은 사내들이 가랑이 사이로 참치 한 마리를 고정한다 그들이 신은 장화가 닿을 때 차가웠다 부드러웠다 짙은 눈썹 아래 사내의 눈빛이 참치 등 위로 미끄러진다 이렇게 밝은 빛을 본 적이 없다 너무 많은 산소로 익사할 것 같아 양초가 여러 개 놓인 샹들리에가 하늘에 달려 삐걱삐걱 흔들린다 사내의 땀이 떨어지면 촛농처럼 뜨거웠다
뇌를 내리칠 몽둥이가 올라간다 눈꺼풀이 없어 눈을 뜬 채 눈알이 툭! 툭! 오바댜 스바냐 잘 배치되어 있던 신앙의 내장과 생식기관이 흩어진다 갈라디아 말라기 흔들리는 수만의 양초 불빛들, 무엇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개론 서적의 제목들, 여행 사진들, 소화되지 못한 푸질리어, 자바리가 갑판 위에서 뒤섞인다 샹들리에 크리스털이 쏟아진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베이는 생각들, 터지는 제목들, 버려질 피 묻은 것들이 비리다
바늘 없는 주사기를 꼽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아가미와 꼬리가 잘린다 하역을 위해 몸에 구멍을 낸다 고리에 걸려 밀려가며 마침내 환자가 될 수 있었을까 줄줄이 급속 냉동되는 판단들 싱싱한 죽음들이 냉동실에 다랑다랑 매달린다 나는 겨우 깨어난다 익힌 결론들이 칸칸이 생선살처럼 부서질 것이다 물에 빠진 물고기로 살아왔다
심벌즈 독주회
찌에 매달린 낚싯대처럼
구부정하게 휜 등
쉴 수 없는 대통령의 휴가 같고
흰색 노트에 흰색 글씨들만 쓰이고
수면에서 보일락 말락
잠이 들락 생각이 날락
엄연히 낚시 중 같은 배경이 필요했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위로가 있어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무대 가운데 앉혀진 심벌즈 연주자
양손에 무거운 심벌즈를 들고
소리 없는 연주를 한다
기다리는 한 음표가 이 곡의 악보에 있을까
이 음악회의 청중들은
쉬는 중일까 기다리는 중일까
목요일에도, 베란다에도, 너의 얼굴에도
찌들이, 음표가 움직인다
수면 아래로, 눈에 묻은 물을 훔칠 틈도 없이
수면 위로, 젖은 머리칼로 얼굴을 덮고
물 안팎의 가쁜 호흡 중에도
익사하지 않는 얼굴들
음표를 무는 입술
꽝!
온몸에 전해지는 트레몰로
비포장 트랙, 빈 트럭 안을 울리는
트레몰로 트레몰로
털털 빈털터리로
Jennifer Lopez American Vogue 2004*
하늘거리는 푸른 드레스를 입은 그녀, 시커먼 사냥개들을 몰고 간다. 아름다운 팔이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검은 모가지. 시상식 카펫처럼 늘어진 붉은 혀들. 킬힐을 신고 카펫을 밟는다. 혀 위에서 그녀는 무사할까? 아가리에서 침들이 떨어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드레스가 부풀고 그림자의 치수가 늘어난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나의 배경에서 무엇이 사라지는지 알려 주곤 했다. 토요일의 침대에서 빠져나와 사진전 티켓 창구 앞에 묶여도, 사나운 쇼핑백들에 달려 다녀도, 너를 사랑해도, 나는 사라지는 것들 앞에 길들지 않는다.
사냥개가 뛴다.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늘어나는 모가지를 더 힘주어 잡는다. 사냥개의 목에 걸린 시폰 스카프처럼 그녀는 날리고, 하이힐이 벗겨지고, 사각사각 바람이 그녀의 푸른 드레스를 베어 문다. 사냥개들은 더 길게 혀를 늘어뜨린다. 혀가 당기고 있는 여자, 수십 마리의 사냥개가 그녀를 몰고 간다.
* 사진작가 Mario Testino의 작품.
길 막히는 사막
두바이사막 사파리
디젤 지프가 나의 앞을 따라다닌다
부연 바람은 부랴부랴 흩어지지만
바로바로 바퀴 자국은 사라지지만
나는 바로 앞만 볼 수 있는 들쥐 레밍이 된다
끼어드는 차들로
빠지지 않는 차들로
앞이 점점 길어진다
최근에 쓰여진 역사처럼
원조가 있다는 골목처럼
내가 따라가지 않아도
끊임없이 앞에 나타나는 언니, 헤겔, 아브라함
내가 운전하는 대로
당신들은 계속 내 앞을 달린다
사나운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지프가 갑자기 멈춘다
연쇄 충돌로 핸들이 날아가고
범퍼가 줄줄이 찌그러진다
시동도 걸지 않고, 엔진의 열기도 없이
견인 고리에 매달려 가는 당신들
그때 깨진 앞 유리를 달고
나의 기가 막힌 사파리가 시작되었다
길 없는 사막에서
무빙워크
누워 눈을 깜빡인다 속눈썹에 쓸리는 깜깜한 날들, 눈을 감은 걸까 뜨고도 이제 볼 수 없는 걸까 들숨에 빨려 오는 검정 비닐, 날숨은 멀리 가지 못하고 요일의 배치는 흩어진다 서리태처럼 흩어진다 콩콩 목요일은 장롱 밑으로, 콩콩 월요일은 링거액 안으로, 찾을 수 없는 요일들은 찾을 수 없는 곳으로만 굴러간다 잃어버린 요일은 남은 요일들로 채울 수 없었다 비닐봉지에 담긴 두부처럼 으깨지기 쉬운 얼굴, 깜빡깜빡 속눈썹에 찔려 어둠이 찢어진다 흐르는 얼굴을 막기 위해, 봉지 위에 봉지, 봉지 밑에 봉지 가득한 봉합에 속눈썹이 안구 쪽을 향해 자란다 눈물이 자란다 보지 않고도, 걷지 않고도, 뒤돌아서서도 간다 눈물을 환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