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것 부터가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 하나를 존귀히 여기신다고 했다. 자기 자녀를 누군들 하찮게 여기겠는가. 설령, 밉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게 하더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사랑의 끈을 움켜쥐고 있는게 부모다.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그런데, 그렇게 알고있는 것과 그걸 믿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 나는 하나님을 썩 좋으신 분으로 생각해온것 같지는 않다. 그분의 은혜에 매달려 살고 있음에도, 준비가 안되어 있는것은 나 자신이면서도, 내가 바라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며 인색한 분으로, 혹은 관대하지 않는분으로, 편견을 갖고 있다. 엇그제, 시껍한 일은 격으면서 겸손히 엎드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신나는 일상이 좋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했다. 사실 무탈한 일상이야말로 축복이며 행운임을 다시 깨닫게 된 샘이다. 나 스스로는 이 평범하기 짝이없는 무탈이 좋은것은 맞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성장했으면 좋겠다. 꿈을 갖고 앞으로 나가길 원하는것은 당연한것 아닌가 싶다. 나는 아들이나 딸에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주지 못했던게 못내 아쉽다. 참고서도, 학원도 못 보냈다. 그냥 학교수업 만으로는 안되는게 현실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고민하는 것이 뭔지 알수는 없지만, 어쩌면 아들도 예전의 내가 고민했던 것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수도 있다. 다 지나간 뒤에 되돌아보면 후회되는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가장 한이 되는것은 부부가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협력은 당연히 혼자서 하는게 아니다. 부부가 같이 해야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가 절대불가였다. 나는 물론 남편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잘한것은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야말로 내심 남편 등뒤에 빨대를 꽂고 살고 싶어했으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등처먹고 살려고 작정했던 사람들이었는데 무슨 협력이나 배려가 있을수 있었겠는가. ㅎㅎㅎ 털어먹으려는 사람과 털리지 않으려는 사람 악다구니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는지,,, 그때는 생각도 못했지만 돌아보니 애들이 참 불쌍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잘 살아주었다고 해야할까 싶다. 그래, 어쩌면 그래서 지금 기대 이상으로 그분께서 복을 주고 계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불쌍히 여겨주신 것이다. 무탈한 하루하루를 감사하자! 어떤 불경도 더는 저지르지 말기를! 세탁기도 고장인가. 빨래가 다 되어가겠지 하고 들여다보니 여전히 1시간도 더 남아있다. 빨래를 밖에 널어놓고 교횔 가려고 나름 서둘렀는데, 틀린것 같다. 수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예정대로라면 벌써 널기를 끝내고 느긋하게 나갈 준비를 했을탠데,,, 이런 사소한 일상의 작은 일조차도 마음대로 안되고 있다. 한데 하물며 손주들을 마음대로 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망상이다. 내 책임이 재일 클수도 있다. 아이들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것도 나니까. 그럼에도 늘 며늘탓을 한다. 아마도 며늘은 날 탓하겠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맞다.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늘 함께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쩌면 아이들만 두고 내가 와버린게 잘못일까. 스마트폰에 팔려버린 아이들과 오래 함께 있는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지들 엄마가 귀가해야 한다는게 나의 소신이기도 했다. 엄마 영향력이 더 귀한가 아님 할머니겠는가. 아니, 핑개가 너무 약하다. 나는 결국 또 하나의 한을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만 오늘은 벌써 금요일이다. 내일이 주말이다. 얼마나 빠르게 스치듯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추워졌다. 바람이 들만한 곳은 열심히 가리고 있는데 그게 최선이 될지는 모르겠다. 가스값이 조금 꿈틀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는 일만 남았으니까. 그래, 그냥 다 좋다 좋다 하면서 살수는 없을까.ㅎㅎㅎ. 최선을 다한 것으로는 부족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