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반납일을 연기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흐르는 시간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얼마나 빠르게 스치듯 지나가고 있는지,,, 곧 80이고 90도 순식간에 도래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주간은 더 정신 없었다. 아마도 어쩌면 이런 정신없는 일상이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가 병원 접수구에서 쓰러진 것도 작은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은 어쩌면 이런일 저런일이 끊임없이 반복될것이다. 아들은 출장중일테고, 며늘은 딴일에 집중하고 있을태고, 결국 아이들 스스로 중구난방이 거듭되는 일상을 봐야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아들만 멀리서 안절부절 하고 있음도 안다. 어제도 그랬다. 기침감기를 큰아이는 병원갈 정도는 아니라고, 약먹으면 될것 같다는 말에 그럼 왜 병원이 있겠느냐고 잔소리 해대는 아들의 통화를 들으면서 안타까웠다. 엄마가 있음에도 맞겨버리지 못하는 아들이나 다른 차원에 사는 듯한 며늘이나 다른듯 같은것인지, 같은듯 다른것인지, 이런 부모를 주신 그분의 뜻은 무엇인지, 애들은 과연 이런 현실을 어떻게 살아낼수 있을련지, ,,. 돌이켜보면 나는 참 평탄한 삶을 살았다. 남편과 부조화 때문에 평생을 가난했고 남루하긴 했다. 얼굴 들고 떳떳하기 보다는 늘 부끄럽고 챙피해 했지만, 몸은 건강했으니까 병원 의자에 앉아 조마조마 했던 경험은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비리 청소년으로 경찰에 불려가지 않는 것만해도 다행이고 감사 아닌가. 1등을 하고 표창을 받고, 이런 경험은 없었어도 솔직히 이정도면 족하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고 있다. 나는 손주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잘나서 역사적인 인물이 되거나 하는 것은 누구나 누리는 영광은 아니다. 평범하게 잘 사는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알고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사람으로 사는 삶이 무었보다도 귀하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날씨가 추워졌다. 바늘구멍에서 황소바람 들어온다는데, 구멍이 될만한 곳은 막고 또 막는 중이다. 실내온도가 19도를 찍고 다시 20도다. 보일라 온도를 16도로 내려놓은게 언제더라. 방 바닥이 차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여기 오래 있고 싶겠는가. 물론 거기가 어떤 곳일지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불안한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누구도 예외없이 다 가는 곳이니까 서둘러 가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고 싶다고해서 아무때나 갈수있는 곳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는 있다. 오직 그분만이 내 시간을 정하시고, 나는 부르심을 응할수 있는 것인데, 지금 대기자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아니, 그분 뜻이면 대기자가 무슨 소용인가. 하! 하나마나한 소리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하루하루가 무한 반복이라는게 어떻게 기쁘고 즐거운 일이겠는가. 내가 20시간을 자던 말던, 내가 살아서 숨을 쉬던 안쉬던, 누구에게도 아무련 영향력을 주지않는다는게 어떤 것인지 안다. 더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이란게 어떤 것인지 안다. 어쩌면 이런 막막한 슬픔과 외로움과 절망감 때문에 감히 경솔했던 것일수도 있다. 이미 내것이 없는 상태, 그나마 아이들의 평강과 즐거움이 내 모든 의미와 가치가 되어있다. 나 자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거나 같다. 내 인생, 내인생? 그게 뭔데? 후회가 아니다. 가치기준이 다르니까. 주님, 이젠 속히 부르심이 어떠하신지요. 걱정하는것과 두려워하는 것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면 어찌할까요? 허접한 화분속에는 답이 없더라구요. 아니, 찾지 못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모든 상황에서 감사드립니다. 은혜였음도 고백합니다. 아멘 아멘.